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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헌식의 대고구리
번조선에서 왕이 된 6명의 기자 후손
성헌식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8-23 18:22:57
 
▲ 성헌식 역사 칼럼니스트(고구리역사저널 편집인)
결론부터 한마디로 말하자면, 기자는 동쪽 조선으로 와서 왕이 된 적이 없었기에 기자조선이란 애당초 없었던 허구의 나라였다. 기자는 군인이나 정치가가 아닌 훌륭한 학자로 기자조선이란 새로운 나라를 세워 통치할만한 정치적 세력이 없었다. 어떤 역사적 사실이 기자조선으로 둔갑했는지 상세히 알아보도록 하겠다.
 
기자가 조선으로 망명한 후 약 800년의 세월이 흘러 수유(須臾) 땅에 36세 후손 기후(箕詡)가 살고 있었다. 당시 조선은 단군이 직접 다스리는 진(眞)조선과 마(馬)•번(番) 조선의 삼조선으로 나뉘어 통치되고 있었는데, 기씨 집성촌인 수유가 속하는 번조선을 다스리는 왕은 수한(水韓)이었다. 燕이 번조선에 쳐들어오자 기후는 오천의 제자들을 데리고 가서 수한 왕을 도와 연의 침략을 격퇴시켰다.
 
번조선에서 왕이 되는 기자의 후손들
46세 보을 단군 19년(B.C 323)에 번조선의 수한 왕이 후사 없이 죽자 기후가 군령을 대행하다가, 燕이 왕을 칭하고 쳐들어오니 병력을 이끌고 입궁해 자칭 번조선 왕이라 칭하고 상국인 대부여(조선)의 단군에게 사후 윤허를 받아냈다. 기자의 후손 기후가 정식으로 번조선에서 왕이 되었던 것이다.
 
‘사기’에도 위와 비슷한 내용이 있으며, ‘위략’에도 “옛날 기자 이후에 조선후가 있었는데 周나라가 쇠퇴해지자 燕이 스스로 왕을 칭하고 동쪽을 공략하자, 조선후도 스스로 왕을 칭하고 군사를 일으켜 연을 쳐서 주 왕실을 받들려고 했는데 대부 예가 간하므로 이를 중지하고 예를 파견해 연을 설득하니 연도 전쟁을 멈추고 조선을 침략하지 않았다”라는 기록이 있다.
 
정식으로 번조선의 왕이 된 기후가 죽자 아들 기욱(箕煜)이 즉위했고, 기욱이 죽자 BC 230년에 아들 기석(箕釋)이 즉위했고, 기석이 죽자 BC 191년에 아들 기윤(箕潤)이 즉위했고, 기윤이 죽자 BC 172년에 아들 기비(箕丕)가 즉위했다. 기비는 해모수가 정변으로 대부여를 무너뜨리고 북부여를 세우는데 일등공신이 된다. 기비가 죽자 아들 기준(箕準)이 즉위했고, 그의 재위 중 연에서 위만이 망명해왔다.
위와 같이 기자의 36~41대 6명의 후손들이 전체 조선의 일부였던 번조선에서 왕을 한 것이 전부였는데 이것이 천년 기자조선으로 둔갑된 것이다.
 
▲ 시조 기자에게 제사 올리는 청주 한씨 후손들 [필자 제공]
망명한 위만에게 배신당하는 기준 왕
 
‘북부여기’에 “시조 해모수 단군 45년(B.C 195, 병오) 연의 노관(盧綰)이 한나라를 배반하고 흉노로 망명하니, 그의 부장 위만은 북부여에 망명을 요구했으나 해모수께서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번조선 왕 기준(箕準)이 크게 실수해 마침내 위만을 박사로 모시고 상·하 운장을 떼어 위만에게 봉했다”라는 기록이 있다.
 
노관은 한 고조 유방의 죽마고우이며 개국공신으로 연(燕) 땅을 다스리는 왕에 봉해졌다가, 유방이 죽고 여태후가 집권하자 신변의 위협을 느낀 나머지 흉노로 망명했다. 노관의 부장 위만의 망명을 번조선 왕 기준이 받아들이자, 위만은 무리 천여 명을 이끌고 상투를 틀고 호복(胡服)을 입고 망명했다.
 
이듬해 B.C 194년에 변방에서 국경을 지키고 있던 위만은 기준 왕에게 “한나라가 쳐들어오니 도성으로 들어가 왕을 호위하겠다.”라고 거짓 보고를 올리고는 군대를 이끌고 도성으로 쳐들어가 기준 왕을 공격했다. 기습당한 기준 왕은 피신했다. 이를 흔히 기자조선이 망하고 위만조선이 들어섰다는 것인바 이는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위만은 번조선의 왕위를 빼앗은 도적으로 볼 수 있는데 이를 위만조선이라 부르며 기자조선에 이어 고조선을 계승했다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이 아닐 수 없다. ‘북부여기’에 “2세 모수리 단군 원년(B.C 194, 정미) 번조선 왕(기준)은 오랫동안 수유(須臾)에 있으면서 항상 많은 복을 심어 백성들이 매우 풍부했다.
 
뒤에 떠돌이 도적떼(위만)에게 패해 망한 뒤 해로 들어가더니(入于海) 돌아오지 않았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는 “위만이 공격하여 정권을 빼앗자 (기준은) 장수들과 그 좌우 궁인들과 海(해)로 가서 한의 땅(韓地)에 살았고 스스로 한왕(韓王)이라 칭하였다. 그 후 왕계는 끊어졌지만 지금도 한 땅의 사람들은 그를 받들어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이 있다. (衛滿所攻奪, 將其左右宮人走入海居韓地自稱韓王 其後絶滅, 今韓人猶有奉其祭祀者.)”고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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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제멋대로 그린 기자조선과 위만조선 [필자제공] 
 
<후한서 동이전>에는 “처음에 조선왕 기준이 위만에게 패해 남은 군사 수천 명을 데리고 海로 가서 마한을 공격해 깨고 자립해 한왕이 되었고 준 이후에 멸망해 마한인이 다시 진왕이 되었다. (初朝鮮王準爲衛滿所破乃將其餘衆數千人走入海攻馬韓破之自立爲韓王準後滅絶馬韓人復自立爲辰王)”는 기록이 있다.
위만에게 패한 기준 왕이 간 곳은 바로 위만에게 쫓겨난 기준이 도망간 곳이 바로 상당(上黨)으로 지금의 산서성 동남부에 있는 장치시의 장자현 일대이다. 조선왕조 때 청주 한씨를 대표하는 인물인 한명회(韓明澮)의 군호가 상당군이었고, 현재 청주시에는 대한민국 청주 한씨의 본향인 상당구라는 지명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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