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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수의 전지적 시점
어리석은 자가 남을 꾸짖는 데는 밝다고 하더라
박혜수 필진페이지 + 입력 2022-11-21 09:37:27
 
▲박혜수 시인·번역작가
“그녀의 아름다움엔 우아함과 기품·위엄·단아함·매혹의 힘·고고함·로맨티시즘…, 이런 모든 말들을 다 합해서도 형용할 수 없는 특별한 존재감이 있었다.”
 
 
일본의 저널리스트 츠카모토 테츠야(塚本哲也)가 자신의 책 ‘내 젊은 날의 합스부르크’에서 오스트리아의 마지막 황후 엘리자베스의 미모에 대해 언급한 글이다.
 
프란츠 요제프 1세와 결혼해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황후가 된 엘리자베스는 비텔스바흐 가문 출신이다. 유럽의 전통 왕가 중 하나인 독일의 비텔스바흐 가문은 신성로마제국에 이어 바이에른 왕국을 통치했고 무엇보다 미남미녀가 많기로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미녀로는 오스트리아 황후 엘리자베스, 미남으로는 바이에른의 ‘광인(狂人) 왕’ 루트비히 2세가 첫 손에 꼽힌다. 이탈리아의 명장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루트비히, 신들의 황혼’(1973)이라는 영화로 만들기도 했는데 실제로는 5촌 간인 두 사람을 이 영화에서는 사촌 간으로, 게다가 루트비히가 엘리자베스를 연모해서 결혼을 하지 않고 지냈다는 스토리로 각색해 놓았다.
 
요제프 1세와 엘리자베스는 아들 하나와 딸 셋을 두었다. 나중에 ‘마이어링 사건’이라 불리는 동반자살 사건을 일으킨 황태자 루돌프가 바로 엘리자베스의 아들이다. 이 사건은 유부남인 루돌프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비관해 일으킨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루돌프는 그 이전부터 자살을 생각하고 있었다 한다. 우울증을 앓고 있던 데다 유럽연합(EU)을 창안하는 등의 개혁 성향으로 보수적인 아버지 요제프 1세와 갈등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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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가 세상을 떠나자 후계자가 없어진 오스트리아 황실에선 루돌프의 사촌인 프란츠 페르디난트를 황태자로 삼았다. 그런데 페르디난트 또한 황실에서 허락할 리 없는 사랑을 하고 있었다. 상대가 백작의 딸이긴 해도 궁정의 시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루돌프처럼 자살이라도 할까 두려웠는지 황실에선 두 사람의 결혼을 승낙했다. 그후 약혼 기념여행을 떠났던 두 사람이 사라예보에서 총격을 당해 숨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일은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엄청난 사건으로 이어졌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 황후 엘리자베스 폰 비텔스바흐.
  
 
1차 대전은 표면상으로는 페르디난트 암살사건이 발단이 되었지만 사실은 이미 여기저기서 전쟁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었다. 고착된 질서의 틈을 뚫고 자신들 중심의 새 질서를 만들고자 하는 세력들이 세계대전이라는 사건을 통해 뜻을 이루는 방향으로 역사가 전개된 것이다. 1차 대전이 끝나자 합스부르크 가문은 몰락했다. 이 큰 전쟁을 경계로 유럽 각국은 왕정의 틀에서 벗어나 공화정이라는 새로운 질서 속에 편입되었다.
 
큰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는 반드시 조짐이 있다. 그 첫 번째 신호는 혼돈·무질서다. 주목해야 할 점은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이 바로 그렇다는 사실이다. 안으로는 지난 5년간 나라의 경제 곳곳에 구멍이 뚫려서 제갈공명이 나선다 해도 묘책이 나오기 힘들 상황이다. 그뿐인가. 북쪽에선 작심하고 위협과 도발을 거듭하고 있다. 밖으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고 있고 미국은 “다 죽어도 좋으니 나만 살겠다”는 태도로 금리를 팍팍 올리고 있다.
 
여러 가지로 어수선하고 나라 안팎의 조짐 또한 좋지 않은 와중에 이번엔 서양 축제인 핼러윈을 계기로 이태원 압사 사고가 일어났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진상 규명과 책임 공방으로 나날이 시끄럽다. 보수 쪽에선 ‘민노총이 관여한 고의 사고’라는 음모론과 영상이 돌고, 좌파 쪽에선 모든 게 정부 탓이라며 대통령 퇴진을 외치는 대규모 집회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허리띠 졸라매고 머리에 띠라도 두르고 힘을 합해야 할 상황에 우리는 또 둘로 갈라져 싸우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한 번이라도 내 탓을 해 봤는가 하는 것이다. 사람이 너무 몰리는 것 같으면 그 장소에서는 비켜나는 게 정상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의 행동이다. 정부가 잘못했느니 누가 잘못 했느니 따지기에 앞서 우리가 너무 쉽게 들뜨는 성향을 갖게 된 건 아닐까, 개개인이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중국 송나라 때의 선비 범순인(范純仁)이 바로 지금 우리에게 들으라고 한 게 아닌가 하는 말을 남겼다. 주자가 엮은 송명신언행록(宋名臣言行錄)에 실린 글로, 옛날 어린이들이 공부하던 명심보감에도 실렸는데 어른인 우리가 다시 읽고 새겨야 할 판이다.
 
“어리석은 사람이 남을 꾸짖는 데는 훤하고, 총명한 사람도 자신의 잘못에는 눈이 어둡다. 남을 꾸짖듯 자신을 꾸짖고, 자신을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용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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