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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안토니 디쉴드의 한국영국 두 나라 이야기
영국의 11월 ‘모닥불 밤’에 얽힌 한국인 이야기
불을 보고 급히 양동이를 찾아 수돗물로 하나 가득 채워
기차역·공항 안내방송 ‘수상한 물건 보면 신고하십시오’
이진 필진페이지 + 입력 2022-11-16 09:26:56
 
▲ 이진·안토니 디쉴드 작가·화가
 11월에 들어서면 영국의 방송 매체에서 ‘모닥불 밤(Bonfire Night)’을 언급하기 시작하고 상점에서 폭죽 판매를 시작한다. 마을에서는 벌써 누군가 폭죽을 터뜨려 캄캄한 밤공기를 울려대고 고요한 밤하늘을 형형색색으로 수놓고 있다. 이맘때는 한 한국인에게 맨 처음 영국에서 ‘모닥불 밤’을 맞던 날에 일어났던 웃지못할 사건이 떠오르는 시간이기도 하다.
 
모닥불 밤의 역사적 배경은 1605년 영국에서 박해를 받던 로마 가톨릭 신자들과 관련이 있다. 그들은 은밀히 모여 당시 국왕 제임스 1세와 국회의원들을 일순간에 처치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이를 위해 영국 국회 건물 지하에 다량의 화약통을 설치해 건물과 함께 왕과 국회의원들을 폭발로 날려 버릴 작정이었다. 그러나 계획은 사건 발생 하루 전날 발각되었고 가이 포크스(Guy Fawkes)라는 로마 가톨릭 신자가 체포됐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지만 발상이 담대했던 만큼 4세기가 지난 오늘날도 각 가정에서는 친지와 친구들이 모이고 정원에 모닥불을 피우고 이날을 기억하고자 한다. 젊은이들은 이날을 위해 폭죽을 준비해두고 어머니들은 모닥불을 피우는 동안 몸을 녹여 줄 사탕(Toffee)을 만들어 둔다. 마을에서 모닥불 밤 행사를 벌이는 경우, 가이 포크스의 인형을 만들고 이를 태워 국회 건물의 화약 폭발 미수사건을 상징적으로 기념하기도 한다. 마을 사람들은 모닥불 재료를 기부하고 소방대원들은 행사 당일 모닥불 밤 행사가 안전하게 마무리될 때까지 혹시 모를 비상사태에 대비한다.
 
▲ 영국은 매년 11월5일에 모닥불 밤 행사를 갖는다.  [사진=뉴시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알지 못한 채 한 한국인이 영국의 모닥불 밤을 처음으로 맞이하게 된 날이었다. 셋집에 함께 거주하던 학생들이 다 모이는 늦은 저녁 모닥불 밤 파티를 벌이기로 광고가 되어 있었다. 이른 저녁 집에 돌아와 보니 옆집에서는 이미 정원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나무가 우거진 정원 한가운데에는 모닥불의 불똥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공중으로 치솟고 있었다. 거기다 바람까지 불고 있어 저러다가 불똥이 우리 마당의 나무 울타리로 튀어 오는 게 아닐까 염려스러웠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거센 바람 속에 모닥불이 옆집 정원의 나무로 번져가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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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걸스카우트에서 모닥불을 끄듯 번개같이 주방으로 뛰어 들어가 양동이에 물을 가득 채워 나왔다. 옆집으로 가지고 가려고 앞문으로 뛰어가니 영국 친구는 소방서에 출동요청을 마치며 전화를 끊고 있었다. 물이 가득 찬 양동이를 든 모양을 본 영국 친구는 웃음을 참느라 애쓰며 간신히 말을 이었다. 이건 소방대원에게 맡길 일이고 우리는 안전을 위해 대피해야 할 상황이라고 했다. 곧 소방차가 도착했고 불은 금세 진화됐다.
 
천만다행으로 옆집 모닥불은 큰 화재로 번지지 않았으나 그날 모닥불 밤 계획은 꼬이고 말았다. 모닥불을 피우는 대신 ‘스파클러(Sparklers·검은색의 가는 나무 꼬챙이처럼 생긴 폭죽으로 손에 들고 꼭대기에 불을 붙이면 불똥이 별처럼 터져 나옴)’로 대체된 것이었다. 
 
이에 몹시 실망한 영국 남학생은 밤새 불평을 멈추지 않았다.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사건 당시 양동이를 들고 가 옆집 불을 끄려 했던 한국 유학생의 무의식적 행동이 영국인들에게 상상 이외의 놀랍고 신선한 충격을 던져 준 것 같았다. 다음 날 한국인의 물 양동이 이야기는 영국인들 사이에서 제법 널리 소문이 났고 듣는 이 모두에게 코미디 한 장면을 연출해 낸 듯 한바탕 웃음거리를 제공하게 됐다.
 
당시 사건으로 한국인이 영국의 ‘안전’ 지침 원리를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게 된 내용은 이렇다. 발생한 긴급 사태는 개인의 정의감으로 처리할 일이 아니라 전문가의 손에 달려 있으니 그들에게 맡기고 개인은 안전 대피하는 것이 상황을 돕는 것이란 논리였다. 비행기 탑승 시 안내하는 비상사태 대처 요령에도 같은 안전지침 원리가 담겨 있다. 승무원이 ‘비상 배포된 산소마스크를 먼저 어른부터 착용한 후 어린 자녀를 챙겨 주십시오’라고 당부한다. 보통 생각으로는 ‘어린이 먼저’가 당연할 듯한데 생각해 보면 ‘어른 먼저’가 과연 전문가 차원의 바른 순서인 것 같다.
 
영국의 기차역과 공항에서 듣는 ‘Safety Announcement(안전 안내방송)’
 
기차역에서 들리는 안내 방송이다. “If you see something suspicious, text to British Transport Police. You text it, we fix it.” (수상한 물건을 보시면 브리티시 수송 담당 경찰에 문자를 보내 주십시오. 여러분이 문자 주시면 저희가 처리해드리겠습니다.)
 
공항에서는 이런 내용이 방송된다. “Do not leave your baggages unattended, it will be removed by the Security staff.” (여러분의 짐가방을 방치된 채로 내버려 두지 마십시오. 보안 요원이 이를 치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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