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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헌식의 대고구리]
장충단에 말살된 민족정신 세우는 대신 체육시설·영빈관 들어서
성헌식 필진페이지 + 입력 2022-12-23 08:49:11
 
▲ 성헌식 역사칼럼니스트·고구려역사저널 편집인
일본제국주의는 조선인의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대한제국의 현충원인 장충단을 놀이공원으로 바꾸었고, 안중근 장군에 의해 사살된 조선 침략의 원흉 이등박문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박문사(博文寺)를 지었고, 그곳에서 친일파들의 장례식이 치뤄지기도 했다.
  
해방 후 박문사는 동국대학교의 기숙사로 잠시 쓰이다가 1945년 11월 26일자 경성일보에 의하면 화재로 전소되었다고 한다. 이후 장충단은 원래의 설립 취지대로 국립묘지로 재탄생된다. 1946년 군이 창설되어 북한군과의 국지적 교전과 제주 4.3사건 및 여수·순천 사건 등 전국에서 전사한 장병들이 서울 장충사(獎忠祠)에 안치되었다.
그러다가 전사자가 점차 증가함에 따라 육군에서 새로운 국립묘지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1949년 말 서울 근교에 후보지를 물색하던 중 6.25 전쟁으로 중단되었다. 그러다가 1952년 국방부에서 육해공 3군 종합묘지를 조성하기로 하여 1956년 동작동 국립묘지가 완공되었다. 그때까지 장충단은 대한민국의 국립묘지로 활용되었다.
 
▲박문사 본당 터에 세워진 영빈관. [필자 제공]
 
이승만 정부에 의한 장충단 파괴
동작동 국립묘지가 생겨나면서 장충사는 그 본래의 기능을 잃게 되었는데, 이때가 장충단을 복원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1959년 1월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장충단에 있던 박문사 본당 터에 국빈 접대를 위한 영빈관을 짓게 되었으나 4·19 혁명과 5·16 군사쿠데타로 공사가 중단되었다.
아울러 1957년 장충단 정문 입구에는 육군체육관이 들어섰다가, 서울시가 이를 인수해 약 1만1000㎡ 부지 위에 증축공사를 해서 1963년 2월 장충체육관이 개관되었다. 운동시설과 영빈관을 짓는 것이 말살된 민족정신과 국가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보다 더 소중했는지 묻고 싶은 대목이 아닐 수 없다.
3공과 삼성의 정경유착
더욱 기막힌 것은 장충단의 본격적인 파괴는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권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사실이다. 장충단공원 내에 자유센터, 타워호텔, 국립극장 등 여러 건축물이 세워졌는데 당시 정부에서 이를 이리저리 불하해 1955년에 69만9500㎡였던 면적이 1984년에는 29만7000㎡로 반 이하로 축소되었다.
1961년 관광진흥법이 제정되고 이듬해 교통부 산하에 국영호텔을 관리하는 국제관광공사가 발족되어 1962년 ‘영빈관 건축 추진위원회’가 구성되자 중단되었던 공사가 재개되어 1967년 2월 말 영빈관이 준공되고 국제관광공사가 72년까지 관리했다.
1960년대 후반에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약 2만8000평(92,000㎡) 부지의 영빈관을 삼성그룹의 계열사인 (주)임페리얼에 헐값인 28억4420만 원에 불하했다. 이후 (주)임페리얼이 바로 없어진 것으로 보아 삼성그룹의 영빈관 불하용 유령회사였을 가능성이 크며 뭔가 정경유착의 비리가 있었을 것이다.
삼성그룹은 장충단에 세워졌던 박문사 터에 지을 대규모 호텔의 설계와 시공을 일본의 다이세이(大成)건설(주)에 맡겼는데 이 회사는 바로 장충단을 부수고 그 자리에 박문사를 시공했던 바로 그 업체였다. 즉 신라호텔은 제2의 박문사였던 것이다. 1973년 11월1일 기공식에 이어 5년간의 공사 끝에 1979년 3월8일 지하 3층 지상 22층 연면적 6만6525㎡ 규모의 대형호텔이 탄생하게 된다.
 
 
▲ 장충단을 파괴하고 세워졌던 박문사 터에 건축된 신라호텔. [필자 제공]
 
게다가 신라호텔 건설로 자금이 부족해진 삼성은 해외에서 자본을 끌어들이는데, 문제는 그 자본이 바로 일본 자본이었다는 사실이다. 일제에 의해 파괴된 장충단 터에 위락시설인 호텔을 지으면서 그것도 다른 나라가 아닌 일본의 자금을 끌어들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아래는 당시 신문 기사이다.
1) 매일경제 1974년 1월30일 / ‘호텔신라’ 건설에 일본 7개 회사 참여
【도쿄 30일=합동】 삼성물산이 서울의 영빈관에 세우려는 대규모 호텔 신라의 건설에 일본의 니쇼이와이(日商岩井), 다이세이(大成)건설, 고이즈미(小泉)그룹 등 1그룹 7개 회사가 참가할 것으로 30일 알려졌다. 삼성물산은 이들 일본 자본과 호텔 건설을 위해 자본금 600만 달러의 합자회사 ‘호텔신라’ 회사를 설립했다.
2) 매일경제 1977년 2월1일 / 신라호텔 재착공 일본회사와 합작 78년 준공
호텔신라(주)는 74년 5월부터 중단되어온 동 호텔을 이달부터 재착공한다. 1일 동사에 의하면, 일본의 니쇼이와이, 다이세이건설 등 6개 사에서 4백만 달러, 국내에서 8백만 달러 등 도합 1천2백만 달러가 전액 자본금으로 불입됨으로써 재착공에 들어가는 이 합작호텔은 73년 11월에 착공, 15%의 공사 진척도를 보인 채 중단되어왔다.
일부 설계를 변경, 오는 78년 11월에 준공 예정인 이 호텔은 오는 7월까지 골조 공사, 12월까지 콘크리트 공사를 각각 끝마칠 계획이다. 대지 8천3백50평 위에 지하 3층, 지상 22층 규모로 각종 객실 676개를 갖출 신라호텔은 1,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420평 규모의 국제회의실을 비롯해 2개의 대소연회장과 500평의 로비를 갖추게 되며 기존 영빈관과의 연결부분을 기와로 덮는 등 신구(新舊)의 조화를 최대한 살릴 계획이다. (이상)
 
 
▲ 2004년 신라호텔에서 열린 자위대 창설 50주년 기념행사. [필자제공]
 
일제의 만행 때문에 생겨났고 일제에 의해 철저히 유린된 원조 국립현충원인 장충단 터에 위락시설인 호텔을 세우면서 일본의 기술과 자본을 도입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현재 신라호텔의 주 고객은 일본인이며, 2004년 일본의 자위대 창설 50주년 행사를 개최했으며, 2011년에는 한복을 입은 한국인의 출입을 금지시켜 물의를 빚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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