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의 생각. “사람은 쉬지 말고, 건방도 떨지 말고, 평생 배워야 한다.” 특히 과학을 알아야 한다. 과학은 인류의 고민거리를 근원적으로 해결해 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노조는 배달노동자의 가혹한 근무환경을 걱정하느라 밤잠을 설쳤지만, SSG닷컴 물류센터는 AI(인공지능)와 로봇 덕에 240만 개의 배달상품을 인권침해 없이 바로바로 처리한다. 이제 곧 군 인권센터의 고민을 덜어 주기 위해 AI가 통제하는 드론 로봇이 병사 대신 최전방 철책선 경계를 서게 된다. 고용노동부는 현장근로자의 안전사고를 고민하지만 로봇 노동자는 중대재해처벌법이 필요없는 세상을 만들고 있다. 국민은 여의도 때문에 짜증나지만 그 사이 챗GPT는 국회의원 퇴출 ‘계엄 문건’을 모의하고 있다.
이런 과학계의 발전 소식에 언론이 제일 빠를 수는 없다. 하지만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 속에 알리려고 노력은 하고 있다. 최근 그런 의무감이 들게 만든 뉴스가 ‘RE100’ 이었다.
2022년 2월3일 열린 대선후보 첫 TV토론회의 최대 화제는 RE100이었다. 국민 상당수가 ‘알200’으로 오해하기도 한 RE100(Renewable Electricity 100%)은 ‘재생에너지 100%’란 의미다. 2050년까지 기업에서 사용하는 전력을 화석연료가 아닌 태양광·풍력·수력·지열 등 재생에너지로 100% 바꾸자고 하는 글로벌 캠페인이다. 2014년 영국의 다국적 비영리기구 ‘더 클라이밋 그룹’이 이 캠페인을 주도했다. 우리나라에선 대선 후보 TV 토론에서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를 “아십니까?”라며 거듭거듭 밀어붙이면서 유명해졌다. 다만 우리나라 입장에선 RE100은 매우 불리한 캠페인이다.
첫째, 우리나라 자연조건상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생산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전체 전력 규모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율은 8%밖에 되지 않는다. 기업들이 RE100을 실천하고 싶어도 태양광·풍력만으로는 필요한 전력을 충당할 수 없는 것이다.
값도 비싸다. 미국 같은 나라야 태양광·풍력 전기가 풍부한 데다 생산비도 원전 비용보다 싸니 문제가 없다. 하지만 지난달 기준 우리나라에선 원자력 전기 생산단가가 ㎾h당 37원이었는데 태양광·풍력의 경우는 156원~157원이었다. 철강·조선·자동차·반도체 등 막대한 전력이 필요한 제조업 중심의 산업 구조를 가진 우리는 해외로 공장을 옮기지 않는 한 RE100을 실천하기 힘들다.
예를 들어 보자. 삼성전자는 2042년까지 300조 원을 들여 경기 용인에 세계 최대 시스템 반도체 단지를 짓는다. 그런데 용인 반도체 단지에 필요한 전력은 지난해 우리나라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가 만들어 낸 전체 전력량의 절반이 넘는다. 특히 24시간·365일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수인 반도체 업종의 특성상 날씨와 시간에 따라 전력 생산량이 들쑥날쑥해지는 재생에너지에 의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RE100은 강제성 없는 캠페인이라지만 이를 어길 경우 글로벌 제품 판매나 투자 유치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전문가라는 사람들도 TV에 나와 “이제 삼성·현대도 수출하긴 다 글렀다”고 신나게 떠들어 댔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이달 중순 우리나라에서도 ‘CFE(Carbon Free Energy) 포럼’이 발족됐다. RE100과 달리 태양광·풍력 이외의 다양한 무탄소 에너지원도 사용하자는 운동이다. 산업통상자원부·대한상공회의소와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국내 주요 기업이 참여했다.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에너지가 태양광·풍력만은 아니다. 원자력도 무탄소이고 화석연료 발전소도 탄소 포집(CCS) 설비를 달면 무탄소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 신재생에너지라는 명분보다 무탄소라는 실리에 초점을 맞추자는 노선이다.
대표적인 무탄소 에너지원인 원자력은 풍력·태양광 못지않은 청정에너지다. 고밀도 에너지여서 태양광 발전 시설의 200분의 1·300분의 1 면적에 발전소(원전)를 지을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국토가 좁은 국가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친환경 에너지다. EU도 미국도 원자력을 친환경 전력으로 분류했다. RE100을 주장하는 클라이밋 그룹의 헬렌 클라크슨 대표조차 재생에너지 확산을 지지하지만 원전을 반대하진 않는다.
2021년 9월 열린 유엔 에너지고위급 대화에서 유엔과 유엔에너지, 유엔 산하 지속가능성기구, 그리고 구글을 중심으로 CF100(Carbon Free 100%), 즉 원전을 중심으로 하는 무탄소 에너지 사용에 관한 논의가 본격화됐다. 산업부는 올 연말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리는 28차 기후협약 당사국총회(COP28) 때 CF100을 정식 의제로 올릴 예정이다.
유엔 에너지고위급 대화가 열린 지 5개월 뒤, 이재명 후보의 박학다식함과 RE100을 세상에 널리 알린 대선후보 TV토론회가 열렸다. 하지만 소중한 과학 공부를 게을리 하거나 과학을 ‘말 싸움’에서 이길 도구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에게 CF100은 눈에 안 들어왔던 것 같다.
라떼의 P.S.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아(學而時習之不亦說乎兒).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이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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