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를 거치면서 우리는 의외의 학습 효과를 한 가지 얻은 바 있다. ‘바이오 클러스터’ ‘사이언스 파크’ 같은 과학기술 용어에 대한 지식이다. 계기는 코로나 백신 때문이었다. 그래도 신뢰도가 높았던 화이자·모더나·얀센 백신은 미국 보스턴의 바이오 클러스터에서 탄생한 것이다. 코로나 초기에 버팀목이 됐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영국 케임브리지의 사이언스 파크와 연결되어 있다.
‘클러스터’나 ‘파크’라는 명칭은 기업과 대학, 연구소가 같은 곳에 모여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들이 코로나 발생 직후 발빠르게 백신을 개발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것을 보고 우리는 각각 떨어져 있는 것보다는 함께 모여 있는 게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미국 보스턴의 바이오 클러스터에는 MIT· 하버드대와 크고 작은 기업·연구소·병원들이 모여 있다. 대학은 생명공학 분야의 연구 성과를 내놓고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공급한다. 1000개가 넘는 이곳 기업들은 대기업부터 스타트업까지 다양하다. 지자체는 제도 지원과 조세 혜택 등으로 든든한 후원자가 된다.
우리에게도 한 때 이런 시도가 있었다. 2010년 세종시를 ‘행정수도’에서 ‘교육과학 중심 경제도시’로 변경하자는 이른바 세종시 수정안이 그것이다. 당시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방안은 결국 국회에서 부결됐으나 내용은 파격적이었다.
서울대·고려대·카이스트 등 대학들이 세종시에 캠퍼스를 조성하겠다고 나섰고 삼성·한화·롯데가 2차전지 바이오 등으로 입주 계획을 밝혔다. 굵직한 연구기관들도 가세했다. 창출되는 일자리가 24만6000개에 달했다. 현재의 세종시 인구는 38만 명 정도로 이제는 성장세가 멈췄다. 다 지나간 얘기이지만 이후 전개된 시대 흐름을 보면 ‘교육·과학 중심 경제도시’ 쪽을 선택하는 것이 특히 균형 발전 측면에서 훨씬 나은 결과로 이어졌을 게 분명하다.
이 모델의 원조는 미국이다. 미국 대학들은 대략 두 번의 변혁기를 거친다. 남북전쟁 이후인 1860년대에 미국 정부가 모릴법을 통해 대학들에게 무상으로 드넓은 토지를 제공하면서 여러 공립대들이 설립된 게 첫 번째다. 신생 대학들은 공업과 농업 분야에 집중했고 크게 늘어난 대졸 인력들은 산업 현장으로 진출했다. 1890년대가 되면 미국은 세계 최대의 공업국가 자리에 오른다. 록펠러·스탠포드·밴더빌트 등 자본가들이 사립대학을 세우는 데 앞장선 것도 이때다.
두 번째 변혁기는 소련이 1957년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발사한 뒤 미국이 큰 충격을 받고 교육의 재정비에 나선 때다. 이 시기에 미국 대학들은 외국의 고급인력에게 문호를 대폭 개방한다. 소련을 넘어서려면 미국 내 인재만으로는 힘들다는 위기감의 발로였다. ‘이민자들의 나라’로서 초창기의 교육열과 실용주의 전통이 대학 교육에 작동한 것이다.
사실 미국 자체의 학업성취도는 탁월한 편이 아니다. 가장 최근 실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8년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미국 15세 학생(중학교 3학년생)의 실력은 읽기 과목에서 OECD 37개국 가운데 11위, 수학에서 30위, 과학에서 16위에 그쳤다. 이 성적 역시 미국 정부가 교육 현장을 닦달해 가면서 끌어낸 결과다. 이전에도 미국 학생들의 평균 학력은 이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대학 단계로 올라가면 놀랍게 달라진다. 세계 대학 랭킹의 최상위에 미국 대학들이 있다. 대학 스스로 경쟁력도 있지만 외국의 우수한 인력이 그 간극을 메워주는 덕분이기도 하다.
미국 대학은 2020년 기준으로 전 세계 유학생 가운데 15%를 불러들어 가장 선호도가 높았다. 특히 대학원생에게 전액 장학금과 생활비 보조 등의 지원정책은 어느 국가보다도 매력적이다. 이들 졸업생 다수는 미국에 그대로 남는다. 강력한 인재 풀을 기반으로 명문대 주변에는 여러 산학협력 모델들이 가동된다. 대학을 연결고리로 해서 각국 인재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며 국력을 극대화하고 있다. 이 ‘공든 탑’의 대표 사례가 정보기술(IT)산업의 실리콘밸리일 것이다.
한국은 뒤늦게 산학연 모델에 눈을 뜨고 막 레이스에 뛰어든 모양새다. 지자체들이 ‘클러스터’ ‘사이언스 파크’ 등의 단어를 입에 올리는 일이 늘어났다. 최근 한국에 오는 외국인 유학생을 2027년까지 30만 명으로 늘리겠다는 ‘유학생 교육경쟁력 제고 방안’을 교육부가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극단적인 저출산 속에서 유학생들을 유치해 지역 활성화와 인재 부족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는 의도다. 문제는 대학과 지자체에 그만한 역량이 있느냐다. 그간의 지역 침체에 대한 책임을 따진다면 둘 중에서 대학 쪽이 더 크다.
미국에서 가장 부럽고 탐나는 것은 역시 뛰어난 대학들이다. 유럽 경제가 좀처럼 미국을 따라잡지 못하는 것도 평준화 체제인 유럽 대학들의 수준 저하 탓이 적지 않다. 한국도 대학 경쟁력을 키우지 못하는 한 어떤 클러스터도 힘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