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몸 상태가 곧 감정 상태다. 이 말은 당신의 감정 상태가 곧 몸 상태라는 의미다. 위장이 뒤틀려서 주저앉을 것 같을 때 좋은 감정을 갖거나 평화로운 상상을 하기 어렵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화’라는 감정에 휩싸여 있는데 몸이 편안하게 이완돼 있을까. 그러기 어렵다. 이는 곧 내 몸의 상태가 감정이라는 심리적 상황과 정비례함을 의미한다.
같은 논리다. 심리적 안정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명상은 성립하기 어렵다.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평화로워 보이지 않는 사람이 명상 운운하면 거부하는 게 맞다. 명상은 기본적으로 내면의 평화와 유연함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몸과 마음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명상’ 행위 중에서 몸을 고정시키고 눈을 감는 소위, 좌선이 있다. 정좌 자세는 몸과 마음의 안정을 빠르고 깊게 조성하는 활동이다.
만약 당신이 지금 여기에서 마음의 안정과 평화로움이 갖춰진 상태라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춤을 추건 대화를 하건, 심지어 싸움을 한다 하더라도 그 자체에 휩쓸리지 않는다. 지금 자신의 분노·두려움·서러움 따위의 감정에 휩쓸리지 않을 안정적 조건에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누군가 쌍욕을 하면서 싸움을 걸어온다 해도 유연하고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심리적 안정감은 거센 물살에도 흔들리지 않는 바위에 비유할 수 있다.
같은 논리로 몸의 통증도 마찬가지다. 몸의 통증과 감정은 다르다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렇다면 자신을 유심히 관찰해 볼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두개골이 빠개질 것 같은 측두엽 두통이 발생했는데 기분은 좋을 수 있을까. 단연코 없다. 기분이 날아갈 것처럼 좋은데 두개골이 빠개질 것 같은 두통이 발생할 수 있을까? 이 또한 그럴 가능성은 낮다. 두통이 없다는 게 아니다. 통증의 정도가 그렇게 힘들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몸의 감각은 곧 심리적 표현이다
야구장에서 9회말 역전 홈런 타자는 홈인하는 순간 동료들한테 얼마나 많이 얻어맞는가. 하지만 그 폭발적인 환영과 손찌검에 대고 화내는 선수를 본 적은 없다. 만약 9회 말 역전 홈런을 치고 홈으로 돌아오는 선수를 동료들이 무거운 침묵으로 맞이한다면? 홈런 타자는 아마 온 몸에서 심각한 통증을 경험할지도 모른다. 통증은 이처럼 자신의 주관적 감정 상태와 연관이 깊다.
뇌과학자이자 심리학자인 배럿은 “불안장애나 우울증·분노조절장애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환자에게는 감정 조절보다 더 중요한 방법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해법은 환자로 하여금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게 하는 것’이다. ‘감정구성 이론’이라는 그의 학설에 따르면 ‘감정은 신체의 다양한 감각 정보를 예측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심리적 현상’이다. 즉, 화가 나거나 슬픔이 북받치는 것은 몸의 내부 감각에 대한 두뇌의 예측일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서 핵심은 ‘몸의 내부 감각에 대한 예측’이다. ‘예측’은 맞을 수도 있지만 조금씩 빗나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빗나간 예측’이 반복되고 강화되는 것이 바로 만성통증이다.
김주환은 그의 저서 ‘내면소통’에서 “내부 감각은 주로 내장기관의 움직임에 의해 생긴다”고 밝힌다. 이러한 내부 감각은 허기·갈증·가려움·배변 욕구·두려움·분노·짜증·무기력·우울감 등으로 드러난다. 몸의 감각이 곧 심리적 표현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한 당신의 대응이다. 자신의 주관적 심리 현상을 잘 인지하고 조절하는 것이 결국 인간관계이기 때문이다.
명상은 자신의 내부 감각에 대한 자각 능력을 기르는 데 도움을 준다. 자신의 몸 감각을 매개로 마음의 움직임을 조율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내부 감각과의 소통 작업 또한 명상의 요체다. 이 일을 반복할수록 자신의 내부 감각을 주시하는 힘은 예리하고 튼튼해진다.
당신은 지금, 이 글을 읽은 기념으로 선물받게 된 명상법이 있다. 눈을 감거나 뜨거나 상관없이 몸을 고요히 안정시킨 상태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기관의 이름을 소리 없이 읊조려 보시라. 눈이라고 불러 보고, 귀라고 불러 보고, 입이라고 불러 보고, 심장·간장·위장 등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본다. 자, 이름을 부를 때마다 당신의 의식은 어디로 가는가. 당연히 그 기관으로 향한다. 그것을 마음의 눈으로 지켜봐 줄 때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반응한다. 이것이 자신에 대한 친절함이다. 이 친절함이 곧 당신의 지금 감정이고 세상에 대한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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