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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헌의 스포츠 세상] 프로야구 LG 우승엔 구본무 선대 회장 유산 있었다
아와모리 소주와 롤렉스 시계는 신화의 증명
선수단, 투혼 가다듬어 29년 만의 우승 이뤄
박병헌 필진페이지 + 입력 2023-11-29 06:31:10
 
▲ 박병헌 디지털뉴스국장
정사 삼국지에 살을 붙여 만든 작품이 소설 ‘삼국지연의’다. 우리나라나 중국이나 독자들이 말하는 ‘삼국지’는 흔히 삼국지연의를 칭한다. “죽은 제갈공명이 산 사마중달을 물리치다(死諸葛走生仲達)”는 삼국지연의의 대표적인 성어처럼 되었다. 삼국지연의에서 제갈공명의 평생 맞수는 위나라의 책사 사마중달이었다.
 
프로야구 LG 트윈스가 무려 한 세대인 29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쥐는 것을 보면서 ‘죽은 제갈공명이 산 중달을 도망치게 했다’는 소설 삼국지연의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촉나라의 유비가 삼고초려 끝에 영입한 재상 제갈공명은 눈물을 머금고 아끼는 장수 마속의 목을 벤 ‘읍참마속’의 당사자로 1700여 년의 시간을 넘어 현재까지 우리에게 역사이자 신화 속 인물처럼 살아 있다.
 
마지막 지략 싸움이 벌어진 그 유명한 오장원 전투에서 사마중달은 제갈공명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후퇴하는 촉군을 추격한다. 그러다 제갈공명의 깃발과 마차에 탄 제갈공명의 모습을 보고 크게 놀라 달아난다. 사실 그것은 이미 죽은 제갈공명이 비책으로 마련해 둔 목상이었다.
 
LG가 이번에 우승을 차지한 데는 5년 전 세상을 떠난 고 구본무 선대 LG그룹 회장의 ‘야구 사랑’과 유산이 큰 역할을 했다. 마치 죽은 제갈공명의 얘기처럼 말이다. 구 선대 회장의 몸은 떠났지만 생전에 준비했던 일본 오키나와산 명주 아와모리 소주와 롤렉스 시계가 바로 그것이다.
 
구 선대회장은 럭키금성 시절이던 1990년 3월 MBC 청룡을 인수해 LG 트윈스를 창단, 그해 첫 한국시리즈 우승과 1994년 두 번째 우승을 이끌었던 초대 구단주였다. 평소 잠실 야구장을 즐겨 찾는 등 야구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각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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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994년 우승 이후 성적이 부진하자 구 선대 회장은 해외 출장길에 아와모리 소주와 함께 ‘우승하면 수훈 선수에게 주겠다’며 당시 8000만 원 상당의 롤렉스 시계를 정성스레 준비했다. 하지만 끝내 세 번째 우승을 지켜보지 못하고 2018년 5월 눈을 감았다.
 
▲ 서울 종로구의 한 건물 외벽에 LG 트윈스 한국시리즈 우승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LG 선수들은 올 시즌 전례 없이 좋은 성적을 올리면서 늘 구 선대 회장이 남긴 유산을 생각하며 몸과 마음을 가다듬었음은 물론이다. 그것은 그들이 분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정규시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21년 만에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뒤 통산 세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쥐기 위해 선수단은 구회장을 그리며 혼연일체가 됐다. 하늘에 계신 선대 구회장에게 우승 선물을 바치기 위해서였다.
 
시리즈 전적 4승1패로 우승을 확정지은 순간 두 팔을 치켜들며 환호한 선대회장의 아들이자 LG 트윈스 3대 구단주인 구광모 회장은 그라운드로 내려와 염경엽 감독과 최우수선수(MVP) 오지환 등과 포옹하며 우승의 기쁨을 나눴다. 오지환은 구 회장에게 우승 메달을 걸어 줬고 선수들은 구 회장을 헹가래 치며 기쁨을 만끽했다.
 
그동안 아와모리 소주 세 통은 잠실야구장에 있는 LG 구단 사무실에 보관해 두었다가 몇 년 전 경기도 이천의 LG 챔피언스파크 숙소 사료실로 옮겨졌으며, 롤렉스 시계는 20년 넘도록 금고에만 보관됐던 터라 결국 수리센터에서 수리를 받았다고 한다.
 
얼마 전 LG는 프로야구 통합우승 기념 축승회를 열었다. 구 선대 회장이 한국시리즈 우승을 학수고대하며 묵혀 두었던 아와모리 소주와 롤렉스 시계가 29년 만에 햇빛을 볼 수 있었다. LG전자를 비롯한 계열사들이 앞다퉈 우승 잔치에 동참하니 LG로서는 최고의 한해를 만든 셈이다.
 
구 선대 회장은 세상을 떠났지만 소주와 롤렉스 시계는 그가 남긴 유산으로 LG선수들의 가슴속에서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었다. 소주는 마셔서 없어졌지만 이제 롤렉스 시계만이 신화의 증명으로 남았다. 시계를 상으로 받은 오지환 선수도 이를 구단에 기증했다. 또 다른 신화의 재료를 위해서였다.
 
프로야구 10개 구단 가운데 가장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서울 연고의 LG 야구단에서 ‘영원한 구단주’로 추앙받고 있는 구 선대 회장은 ‘야구 유산’을 남겨 마치 삼국지에서 죽어서도 영향력을 발휘한 제갈공명과 흡사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선수단에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끼친 셈이다. 야구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 “구본무 회장님이 하늘에서 정말 기뻐하시겠다” “우승을 보고 돌아가셨으면 좋았겠다”는 글이 쏟아진 것은 구 선대회장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의 표현이었다.
 
구 선대회장은 생전에 숲과 새를 좋아해 조류도감을 펴냈고, 서울 여의도 집무실에 밤섬의 새들을 탐조하기 위해 망원경을 설치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호인 ‘화담(和談)’을 따서 이름 붙일 정도로 애정을 갖고 경기도 곤지암에 화담 숲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자연공간을 제공하기도 했다. 수목장으로 자연 속에 영원히 잠든 구 선대 회장의 LG 야구단 사랑은 그가 남긴 야구 유산으로 지금도 이어지고 있음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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