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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프랑스명소산책] 디드로와 백과사전 탄생지 카페 프로코프
계몽주의 시대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문학 카페
300년 지난 지금도 파리의 지적·정치적 요람
최인숙 필진페이지 + 입력 2024-11-05 06:30:37
▲ 최인숙 문화칼럼니스트·정치학박사
계몽주의 철학자 하면 볼테르와 루소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나서야 백과사전의 아버지인 디드로를 기억해 낼 것이다. 그러나 디드로 역시 앞의 두 철학자 못지않게 위대하기 때문에 프랑스 위인의 성전 팡테옹에 모셔져야 한다는 주장이 자주 제기된다.
 
만능 재주꾼인 디드로의 가장 큰 업적은 계몽주의의 상징인 백과사전을 편찬한 것이다. 1745년 파리 서점상 앙드레 르 브르통은 디드로에게 영국인 챔버스의 ‘사이클로피디아’를 번역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때 디드로는 번역이 아니라 인간 정신의 노력에 대한 일반적인 그림을 구성하는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과학·예술 및 기술에 관한 백과사전 프로젝트였다.
 
18세기 프랑스에는 연구 목적의 사전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큰 과제였다. 고대와 중세 유럽의 지식, 그리고 인문주의 르네상스의 지식에 해박한 디드로는 이 세 가지 유산을 기반으로 백과사전 사업을 구축하고 수학자 달랑베르에게 협조를 구했다.
 
하지만 검열이 너무 심해 작업을 이끌어 가기는 쉽지 않았다. 백과사전 편찬의 일환으로 디드로는 먼저 자신이 쓴 ‘맹인에 대한 편지’를 익명으로 출판했지만 결국 정체가 탄로나서 벵센 감옥에 투옥되었다. 혹독한 형무소 생활을 마친 그는 정부나 종교를 거역하는 글은 더 이상 쓰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러나 백과사전 편찬의 책임자가 된 이상 그건 쉽지 않았다.
 
1752년 2월 백과사전의 두 번째 책이 출판되었을 때도 또다시 당국의 살벌한 규제를 받아야 했다. 프라드(Prades) 신부의 영성과 예수의 신성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하는 논문이 실리자 교황청과 파리 의회는 발끈했다. 이 스캔들로 백과사전의 판매는 물론 보유조차 금지당하는 시련을 겪어야 했다. 다행히 루이 15세의 애첩 퐁파두르 부인과 왕실 검열 책임자 말제르브(Malesherbes)의 보호 덕에 이듬해 11월 금지가 해제되고 출판이 재개됐다.
 
▲ 파리 6구에 있는 카페 프로코프의 현재 모습.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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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7년 후 또 위기가 찾아왔다. 1759년 엘베티우스의 철학적 에세이 ‘영혼’이 문제가 됐다. 이 에세이는 교회의 심기를 건드렸고 그로 인해 백과사전에 부여된 특권이 박탈되고 또다시 출판이 금지되는 불운을 맞았다. 말제르브가 개입해 금지를 풀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어림도 없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초판은 4000부가 판매되고 당시로서는 전례가 없던 복각본과 해적판까지 나와 총 2만 부가 판매됐다. 달랑베르는 이때 백과사전에서 손을 떼고 떠나 버렸다. 디드로는 혼자 남아 마지막 10권을 묵묵히 준비하며 작업해 나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출판사의 배신으로 갖은 고생과 여러 차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던가. 1772년 20년에 걸친 편찬 사업이 드디어 마무리됐다. 160명의 공동 작업자와 1000명의 노동자가 약 7만2000개의 기사를 집필한 방대한 출판 사업은 17권의 본문과 11권의 판화책으로 결실을 보았다. 디드로는 백과사전을 출간하는 안내서에서 편집자들에 대해 언급하며 그들의 노력 덕분에 백과사전이 탄생할 수 있었다고 공로를 치하했다. 음악에 관한 글을 쓴 루소·문학과 역사에 관한 글을 쓴 볼테르·모든 종류의 주제에 관한 글을 쓴 기사 조쿠르·광물학 및 야금학에 관한 글을 쓴 올바흐 남작 등이 여기에 포함됐다. 마르몽텔 같은 학자·생 랑베르 같은 귀족들·튀르고와 같은 고위 공무원·조각가 코솅 같은 예술가도 기여했다.
이 위대한 작업을 위한 회의는 카페 프로코프(Café Procope)에서 열렸다. 파리 6구 앙시엔-코메디 거리 13번지 있는 이 카페는 18세기 위대한 지식인들의 만남의 장소이자 인근 코메디 프랑세즈 회원들이 즐겨 찾는 곳이었다. 여기서 디드로는 달랑베르와 함께 백과사전 프로젝트라는 거대한 작품을 탄생시켰다.
 
▲ 카페 프로코프: 팔을 든 사람이 볼테르, 그 옆이 디드로(장 위베르의 작품)
 
센 강 좌안에 있는 프로코프는 1670년 파리에 도착해 카페 웨이터로 열심히 일하며 돈을 모은 시칠리아인 프로코피오(Procopio)가 부유한 고객들을 끌어모을 욕심으로 만든 화려한 카페였다. 이곳은 곧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문학 카페로 부상해 디드로·볼테르·루소·몽테스키외·달랑베르 등이 단골손님이 되었다. 특히 디드로는 이 카페에서 백과사전 편찬을 주도하며 일부 기사를 집필했다. 프랑스 혁명 기간 동안 프로코프는 혁명가들의 진정한 본거지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1900년 경매에 넘어간 후 여러 주인의 손을 거쳐 몇 년 동안 문을 닫은 채로 있다가 1957년 미셸 데루상(Michel Deroussent)이 인수했다. 그는 이곳을 부활시키기 위해 레스토랑으로 단장하고 디드로 요리로 체리를 곁들인 오리 애귀엣과 포도와 닭 육수로 부드럽게 요리한 메추라기 등 훌륭한 메뉴를 개발해 손님을 유인하기 시작했다.
현재 프로코프는 꽃과 연철 발코니, 매력적인 푸른색으로 아름답게 장식된 외관을 멋들어지게 자랑하고 있다. 1층에는 나폴레옹이 남긴 모자·혁명가들의 메달 등 과거의 명성을 기념하는 기념품으로 가득 채워져 있고 볼테르가 남긴 책상도 남아 있다. 무엇보다 살롱 디드로가 있어 거기 앉아 디드로 요리를 맛볼 수 있다. 3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프로코프는 파리 지성의 지적·정치적 태동을 상징하는 강력한 장소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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