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증권사의 경쟁력을 눈앞의 수익률이라는 숫자로만 평가하는 시대는 지났다. 고객의 신뢰를 지키는 내부통제와 탄탄한 기본기, 여기에 인공지능(AI)과 디지털 기술을 결합하는 혁신 역량이 더 중요한 밸류로 인식되고 있다.
지난해 신한투자증권의 구원투수로 등판한 이선훈 대표는 취임 후 빠른 성장보다 ‘정직하고 단단한 회사’를 만드는 데 힘을 쏟았다. 금융사고 후 흔들린 조직 기강을 바로잡고 내부통제 체계를 강화하는 동시에 수익성을 회복하면서 신한투자증권의 체질을 바꿔놓고 있다.
실적은 그 변화를 보여준다. 신한투자증권은 2026년 상반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 7484억 원, 당기순이익 5777억 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영업이익은 135.0%, 순이익은 123.1% 증가했다. 상반기 수수료수익도 9354억 원으로 138.6% 늘었고 위탁수수료와 금융상품 수수료가 각각 6779억 원, 857억 원을 기록하며 실적 개선을 이끌었다.
환부작신 경영
1968년생인 이선훈 대표는 서울 동작구 대방동에 있는 성남고등학교를 거쳐 호주 멜버른에 위치한 공립대 스윈번대학교(Swinburne University)에서 경영정보시스템(MIS) & 비즈니스모델링(Business Modeling)을 전공했다. 1999년 10월 신한투자증권에 입사한 이래 20여 년간 리테일 및 전략기획 분야 전문가로 명성을 쌓았다. 이러한 역량을 인정받아 외부 증권사인 SI증권 CEO를 거쳐 복귀한 뒤 2025년 1월 신한투자증권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했다. 리스크 관리와 조직 쇄신의 책무를 맡은 이 대표의 취임 첫해 보수 총액은 5억1200만 원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가 이끄는 신한투자증권의 변화는 숫자에만 머물지 않는다. 조직을 정상화한 뒤 AI를 업무의 중심에 놓는 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국내 금융사 최초로 AI 에이전트만으로 구성된 독립부서인 ‘AI 에이전트부’를 신설했다. 팀장 역할을 하는 에이전트와 3개의 담당 에이전트 등 총 4개의 AI가 하나의 조직처럼 업무를 나눠 수행하는 구조다. 첫 시범 업무는 법인 고객 및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홀세일 부문으로 미팅 자료와 제안서 작성, 시장정보 조사, 이슈 분석 등을 맡는다. 최종 결과는 사람이 검토하도록 해 AI의 실행력과 인간의 판단을 결합했다.
최근에는 고객 자산관리에도 AI를 적용했다. 8월31일 출시한 ‘신한 SOL 로보 연금’은 개인형퇴직연금(IRP) 고객을 대상으로 투자성향을 선택하면 AI가 ETF 자산배분과 종목 선정, 리밸런싱까지 자동으로 수행하는 서비스다. 자체 개발한 AI 퀀트 모델을 활용해 시장 데이터를 바탕으로 자산 배분을 지원한다. AI를 업무 자동화 도구에 그치지 않고 고객의 실제 투자와 자산관리 영역까지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대표의 경영 키워드는 ‘정상화’에서 ‘질적 성장’으로 옮겨가고 있다. 그 출발점에는 환부작신(換腐作新·부패하고 썩은 부분을 도려내 새롭게 만든다)의 각오로 단행한 신뢰 회복 조치가 있었다. 2024년 10월 ETF(상장지수펀드) 운용 과정에서 발생한 1300억 원대 유동성공급자(LP) 손실 사태 후 조직 정상화를 이끌 구원투수로 투입된 이 대표는 취임 직후부터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걷어내는 데 집중했다.
내부통제를 경영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 준법감시 인력을 추가 배치하고 내부통제 문제가 발생하면 임원 성과급을 일괄 차감하는 파격적인 제도를 도입했다. 감사정보 분석팀을 신설해 리스크 관리와 미들·백오피스 부서의 모니터링 결과를 다시 점검하고 내부통제 책임도 임원에서 부서장까지 확대했다.
그가 강조한 것은 속도보다 기본이었다. 이 대표는 “고객이 믿고 자산을 맡기는 이유는 우리가 가장 빨리 달리기 때문이 아니라 가장 정직하고 견고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내부통제를 비용이나 규제 대응이 아니라 회사의 문화로 정착시키겠다는 의미다.
성과도 뒤따랐다. 지난해 9월26일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신한투자증권의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에서 ‘안정적’으로 상향 조정했다. 레버리지 비율 개선과 수익성 회복, 전사적인 내부통제 강화 등이 긍정적으로 평가된 결과다. 이후 지난해 12월 신한투자증권은 발행어음업 인가를 획득하고 올해 2월 첫 상품을 출시하면서 초대형 IB 도약을 위한 자금조달 기반도 마련했다. 발행어음 조달자금의 35%를 벤처·중소기업 등 모험자본에 투자한다는 계획은 생산적 금융 강화라는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올해 상반기 실적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순이익 규모가 커졌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자산관리(WM), 브로커리지(위탁매매), IB(투자은행) 등 핵심 사업의 경쟁력이 동시에 개선되면서 수익 기반이 넓어졌다. 신한투자증권은 1분기 당기순이익 2884억 원을 기록한 데 이어 2분기에도 2893억 원의 호실적을 연이어 달성하며 상반기 누적 순이익 5777억 원을 완성했다. 자기자본이익률(ROE) 역시 20% 수준(19.7%)까지 끌어올렸다.
특히 상반기 금융상품 수수료 수익이 전년 동기 대비 158%나 증가하는 등 WM 부문의 질적 성장이 두드러졌다. 부진했던 IB 부문 역시 순영업수익 1787억 원을 기록 전년 동기 대비 248% 급증하며 좋은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다만 시장 변동성에 민감한 브로커리지와 상품운용 수입의 비중이 여전히 높은 만큼 앞으로 과제는 이 기세를 이어가 발행어음 신사업과 구조화 금융 등을 더 끈끈하게 연결해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안정적인 성장 구조를 다지는 데 있다.
이 과정서 AI는 새로운 성장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신한투자증권은 이미 AI 기반 투자정보 서비스 ‘AI PB’를 통해 고객 맞춤형 자산관리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IB 부문에서는 AI 기반 증권신고서 작성 시스템도 도입했다. 이제 AI 에이전트부와 로보 연금까지 더해지면서 AI는 특정 서비스가 아니라 조직과 업무 방식 자체를 바꾸는 단계로 진입 중이다.
특히 AI 에이전트부의 의미는 남다르다. 기존 금융사의 AI가 사람의 업무를 보조하는 수준이었다면 신한투자증권은 AI를 하나의 동료로 정의하고 실제 업무를 맡겼다. 팀장 에이전트가 업무를 배분하고 담당 에이전트들이 조사·작성·분석을 수행한 뒤 결과를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회사는 향후 리서치와 WM, IB, 디지털 플랫폼 등으로 AI 협업 영역을 확대할 계획이다.
‘부동산 정상도시’ 일산에 둥지
이선훈 대표가 선택한 주거지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일산동 후곡마을 14단지 청구아파트다. 이 대표는 이곳 전용면적 101㎡(30.55평) 한 호실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주택은 2009년 6월 4억9750만 원에 매입됐으며 2026년 7월에 같은 면적이 6억4500만 원에 거래됐다. 현재 전세가는 5억 원대 초반 수준으로 형성돼 있다.
후곡마을 14단지 청구아파트는 1994년 5월 준공된 일산신도시 초창기 단지로 8개동, 446세대 규모다. 용적률은 183%, 건폐율은 17%로 여유 있는 단지 배치와 세대당 약 1.56대의 주차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최고층은 19층이며 30평형 214세대와 40평형 232세대로 구성돼 중대형 실거주 수요에 맞춰져 있다.
이 단지의 강점은 생활 인프라다. 신일초등학교와 신일중학교가 단지와 맞닿아 있어 어린 자녀의 통학 부담이 적고 후곡마을 학원가도 도보권에 자리 잡고 있다. 일산역 역시 도보로 10분 거리에 위치해 경의중앙선과 서해선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2023년 8월 서해선 연장으로 김포공항과 부천 등 경기 서남부권 접근성도 좋아졌고 단지에서 약 2km 떨어진 2024년 12월 개통된 킨텍스역의 GTX-A 노선 운정중앙~서울역 구간을 연계하면 서울 도심까지 20분대에 진입할 수 있다.
이런 특징 때문에 후곡마을 14단지는 유행을 타는 집보다는 살기 때문에 가치가 유지되는 집에 가깝다. 준공 후 30년이 넘었지만 학교와 학원가, 역세권, 넉넉한 주차공간과 녹지, 중대형 평형이라는 실거주 요소가 가격을 지탱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일산은 서울 강남권의 초고가 주거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특정 지역에 대한 진입 욕망과 투자 심리가 가격을 끌어올리는 방식보다 실제 거주자가 필요로 하는 교통·교육·생활 인프라가 주택의 가치를 받쳐주는 구조다. 일산을 ‘부동산 정상도시’라고 평가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격이 오르더라도 과열된 기대만으로 치솟기보다 실제 생활의 가치가 가격에 반영되고 있다.
이선훈 대표의 주거 선택에서도 비슷한 색깔이 읽힌다. 최고급 주거지라는 화려한 이미지보다 오랫동안 생활의 기본을 충족할 수 있는 곳을 선택했다는 점에서다. 이는 신한투자증권을 이끄는 그의 경영 방식과도 묘하게 닮았다. 명성을 쌓는 데는 20년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데는 5분도 걸리지 않는다는 기본과 신뢰를 강조해 온 워런 버핏의 말처럼 이 대표 역시 눈앞의 현란하고 빠른 성장보다 고객이 믿고 맡길 수 있는 정직하고 단단한 토대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내부통제 강화를 통해 시장의 신뢰라는 주춧돌을 먼저 세운 뒤 그 위에 AI라는 미래형 무기를 차분히 얹고 있다.
기본을 중시하는 리더가 선택한 일산 후곡마을의 집처럼 신한투자증권 역시 단단한 토대 위에서 새로운 미래 기술을 접목하는 방식으로 다음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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