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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뉴욕타임스(NYT)를 향해 사과를 요구했다. NYT에서 차기 행정부 인선 과정의 매관매직 의혹을 보도한 것 때문이다. 26일(현지시간) 새벽 트럼프가 본인 소유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서 “망할(failing) NYT가 트럼프를 잘못 보도해 왔다. 독자들께 사과하려나?” “오류를 충분히 알면서 오로지 비하하고자 그런 가짜 쓰레기를 써 낸다”고 말했다.
해당 게시물은 트럼프 당선인 최측근 참모인 보리스 엡스타인이 차기 내각 장관 물망에 오른 인사에게 거액을 요구했으며, 트럼프 지시로 이 사태를 조사한 법률팀에 의해 혐의 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발견됐다는 NYT 기사 공개 직후 올라왔다. 이것이 오보임을 확인한 트럼프의 즉각적인 반격이었다.
트럼프는 해당 기사를 쓴 NYT 정치부 선임기자 매기 하버맨(Maggie Haberman)을 “매거트(Magot·상아나 도자기로 된 괴상한 모양의 인물상) 하거맨”으로 비틀어 부르며 “3류 작가이자 4류 지성”이라고 혹평했다. 이어 “팩트 확인들을 안 한다. 그게 그들에겐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NYT에서 (나에 관한) 정당한 좋은 기사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난 수십 년 이래 가장 중요한 대선에서 기록적인 승리를 거뒀다. ‘사과’는 어디 갔나?” 구절로 글을 마무리했다.
2024 대선을 한 달여 앞둔 9월30일 NYT는 트럼프가 차기 대통령에 매우 부적합한 인물임을 강조하며 민주당 대선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유일한 애국적 후보”로 띄웠다. 막판에 여러 친민주당 매체 및 노동조합들이 이례적으로 ‘대선 후보 지지 표명’ 관행을 생략했으며 워싱턴포스트(WP) 사주인 제프 베이조스마저 편집국 반발을 외면한 채 이런 흐름에 동참했으나 NYT는 끝까지 ‘해리스 지지’를 천명했다.
NYT가 오랜 명성과 영향력을 향후 잘 유지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창간 173주년, 전 세계 언론에 인용돼 온 NYT가 이번 대선 결과로 공신력을 크게 잃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NYT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일간지다. 2024년 2월 기준 디지털 전용 구독자 970만은 세계 최고이며 종이신문 구독자 66만 등 발행부수 기준 미국 내 2위로 월스트리트저널·USA투데이와 함께 미국의 빅3에 속한다. 137개 퓰리처상에 빛날 만큼 취재력 탐사보도로도 유명하다.
뉴욕 태생인 트럼프와 뉴욕 지방신문이면서 미 전역 및 전 세계 유력지인 NYT의 악연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트럼프가 2015년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래 사업가·방송인 ‘셀럽’ 트럼프는 돌연 주류 언론의 공적이 됐고 NYT가 특히 극렬했다. 스트레이트 기사, 해설·칼럼 등을 통해 그에게 온갖 경멸과 조롱을 퍼부었다.
2016년 5월 NYT 일요판에 신설된 ‘트럼프의 모든 게 나쁜 것은 아니다’의 경우 사실상 트럼프 놀리기를 위한 코너에 가까웠다. 첫 번째 칼럼에선 트럼프의 빈번한 트위터(현 엑스) 이용을 ‘SNS 집착증’으로 몰아 갔다. 주류 언론의 전방위적 공격 대상이 된 트럼프가 대중과의 직접 소통 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배경을 무시한 일방적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의 전기 작가인 마이클 댄토니오에 따르면 “트럼프는 NYT 인정을 못 받아 괴로워한다. 이 신문의 비난을 받을 때마다 심한 고통을 느낀다.” CNN·MSNBC 등 일부 방송의 시청을 끊었으나 NYT 구독을 끊진 못했다고 전해지기도 했다. 트럼프가 2015년 대선를 향한 공화당 내 경선에 나서자 NYT는 “도널드 트럼프라는 수다쟁이 부동산업자가 공화당 후보 자리를 노린다”고 보도했다.
이후 양측 관계는 험악 일로를 걸었다. 트럼프는 NYT를 거론할 때 꼭 수식어 ‘망할’을 붙이며 가짜뉴스 대명사로 이 신문을 지칭하기 시작했고 2016년 5월엔 NYT 비판에 하루 9번 트위터를 날린 날도 있다. NYT 역시 트럼프 때리기로 톡톡히 재미를 봤으며 부정적인 트럼프 이미지의 전 세계 전파에 큰 힘을 발휘했다.
트럼프가 취임한 2017년 1분기 NYT 온라인 구독자가 30만8000명 늘어 역대 최대 증가율을 기록했다고 당시 마크 톰슨 최고경영자(CEO)가 밝힌 바 있다. 딘 베케이 편집국장도 그해 2월 방송 프로그램에서 마치 약올리듯 “트럼프 대통령이 (뉴욕타임스를 공격하는) 트윗을 할 때마다 구독자가 급증한다”고 말했다.
2016년 대선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8월 트럼프는 NYT의 취재자격 박탈을 거론하기까지 했다. 그는 그달 13일(현지시간) 코네티컷주 페어필드 유세장 소식을 다룬 NYT 보도를 맹비난하면서 “내가 맞붙은 게 부정직한 힐러리 클린턴이 아니라 부정직한 언론인 것 같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NYT 또한 사설에서 트럼프를 향해 “현대 주요 정당에서 배출한 대선 후보 중 가장 논란 많고 준비가 덜 된 사람” “역겨운 인간”으로 응수한다.
2016년 대선 때 공화당 내부에서도 말이 많았다. 훗날 이른바 라이노(RINO·이름만 공화당)로 불리게 된 인사들, 군산복합체와 이해관계가 밀접한 사람들이 여전히 공화당 주류이던 시절이었다. 조지 W.부시 전 대통령의 보좌관을 지낸 세라 페이건은 “트럼프가 이길 가능성이 없다. 되찾지 못할 사람들을 잃어 간다”고 개탄했다. 그러나 그해 11월 승자는 트럼프였다.
이를 전 세계가 의외 내지 충격으로 받아들인 것은 NYT 등 미 주류 언론과 정계·학계 전반의 시각이 서민·중산층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었는지 보여준다. 트럼프는 첫 임기 내내 굴러온 돌처럼 뜻을 펼치지 못했으며 쫓기듯 백악관을 떠났다. 그런 그가 약 4년 만에 공화당을 자신의 텃밭으로 재편한 후 돌아왔다. 2020년 조 바이든의 득표수(약 8만1300만 표) 공정성에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이 늘어난 가운데 트럼프는 미 역사상 세 번 대선에서 승리한 인물로 자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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