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공 단(旦)은 주(周)나라의 정치가이다. 기원전 1046년 형인 주 무왕(武王)을 도와 상(商)나라를 무너뜨려 건국 일등공신이 된 인물이다. 주공 단의 위세는 하늘을 찔렀다.
무왕이 승하하자 그의 젖먹이 아들 성왕(成王)이 즉위했다. 그러자 주공 단의 형제들과 상나라 잔당 무경(武庚)은 반란을 일으켰다. 주공 단은 이를 기화로 “자격 없는 임금 탓에 천하가 어지럽다”며 어린 조카를 몰아내고 자신이 옥좌에 앉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주공 단은 정도를 택했다. 천자의 명을 받들어 반란군을 토벌한 그는 7년간 섭정한 뒤 미련 없이 조카인 성왕에게 권력을 넘겼다. 훗날 공자는 “오랫동안 꿈에서 뵙지 못했다”며 한탄할 정도로 주공 단을 가장 이상적인 성인으로 존경했다.
공백화(共伯和)는 주공 단 시대로부터 약 200년 뒤의 인물이다. 주 여왕(厲王)은 탐욕스럽고 오만하며 잔인하고 일신의 이익만을 좇았다. 민심이 들끓자 여왕은 불경스러운 낌새만 보여도 처벌했다. 백성들은 눈짓으로만 서로 인사하는 지경이 됐다.
공포 정치를 견디다 못해 폭발한 백성은 기원전 841년 봉기했다. 여왕은 물론 그의 아들 희정(姬靜)마저 달아났다. 임금이 탄핵·파면되고 후사마저 실종돼 국정이 마비되자 공백화는 섭정으로 추대됐다.
공백화에게 대권 쟁취는 마음먹기에 달렸었다. 그러나 그는 주공 단의 길을 따르기로 했다. 공백화는 정적들을 제거하고 국정을 쥐고 흔드는 대신 주요 제후들과의 협치를 통해 4년간 주나라를 다스렸다. 혼란이 수습되자 희정을 주 선왕(宣王)으로 옹립하고 미련 없이 재야로 물러났다. 이 시기는 공화(共和) 시대로, 공백화의 섭정 첫 해는 공화 원년으로 각각 명명됐다. ‘민주공화국’ 중 ‘공화’란 단어가 이 시대에서 비롯됐다.
올 한해 대한민국은 대통령 탄핵 소추로 혼돈스러웠다. 야당은 이를 기화로 자당 대선주자의 사법 리스크를 축소하고 대권을 쟁취하려는 듯 마구잡이 탄핵·특검 등에 나섰다. 대통령 권한대행마저 탄핵하고 ‘대행의 대행’을 세운 건 클라이막스였다. 이에 자당 대선주자 대권 걸림돌 제거에만 혈안이 돼 나라를 더 큰 혼란으로 몰고 갔다는 의혹·비판이 각계에서 쏟아지고 있다.
주공 단·공백화가 존경받는 이유는 공복(公僕)으로서의 본분을 자각하고 권력욕이 아닌 혼란 수습·민생 안정을 우선시했기 때문이다. 반면 동서고금 무수한 난신적자(亂臣賊子)들은 만인의 손가락질을 면치 못했다. 새해에는 야당의 고삐가 한층 더 풀어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현명한 국민이 어찌 판단할지는 자명하다.
오주한 정치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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