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도쿄의 서점 앞을 지나다 보니 아직도 중심 공간을 차지한 노벨상 작가 한강의 책들이 눈에 들어온다. 일본 생활 30년에 K팝·K드라마 등 대중예술의 인기는 새롭지 않으나 우리의 지적 자산을 드러낼 기회가 없었기에 반가운 마음이 없지 않다. 약 10년 전 신경숙 작가의 미시마 유키오 작품 표절 사건 등 낯뜨거운 기억을 다소나마 상쇄해 주려나 싶기도 하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수상을 놓친 데 대한 일본인들의 아쉬움도 느껴진다. 일본은 세계적 독서 강국인 만큼 연간 독서량 면에서 늘 한국을 압도해 왔다. 에도막부 시대부터 서민도 마음대로 책을 빌릴 수 있는 대여점이 약 600곳나 됐던 나라답다. 같은 시기 조선에서 책 대여가 상업적으로 성립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보지 못했다. 이렇게 쌓인 식자층의 비율과 지식의 공유 시스템이 19세기 후반 개항 이후 일본이 조선과 다른 길을 가게 된 결정적인 배경일 것이다.
이런 일본에서 1968년 첫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왔다. ‘설국’으로 유명한 가와바타 야스나리(1899~1972)다. 그는 일본 특유의 미의식을 유려한 문장으로 담아내 명성을 얻었고, 서구 독자들에게 각별한 감명을 줬다고 한다. 태평양전쟁 말기 가미카제 특공대나 오키나와 상륙 작전 등으로 각인된 광기 어린 일본인의 천황 중심 세계관에 식겁했던 서구인들에겐 가와바타의 문학 세계가 너무나도 아름다운 반전(反轉)의 매력으로 다가간 것이다. 다만 가와바타는 노벨상 수상 후 오히려 압박감 속에 집필에 고전하다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1994년 일본에 두 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왔다. 1935년생인 오에 겐자부로는 일본 전후 문학을 이끈 작가의 한 사람이며, 노벨상 수상 직후 당시 아키히토 천황이 수여하는 문화훈장 및 문화공로상을 사양해 다시 한번 화제가 됐다. 천황 중심의 일본식 사고에 비판적이며 반핵과 아시아 평화 및 민주주의를 위해 발언해 온 인물이었기에 그의 태도는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이렇게 비서구권 국가 중 이례적으로 두 번이나 노벨문학상을 탄 일본에서 세 번째 수상을 기대하는 작가가 있다.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다.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비로소 세계적 유명세를 얻은 역대 두 수상자와 달리 그는 이미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매년 일본에 단풍이 들 무렵이면 일본인들은 세 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의 희망에 부풀곤 한다.
해마다 노벨문학상 발표날 여기저기 하루키의 연고지에 팬들이 몰린다. 그의 고향 효고현(縣) 모교, 소설 속에 등장하는 레스토랑, 도쿄에서 그가 젊은 시절 처음 글을 쓰며 재즈카페를 운영했던 시부야구(區) 세타가야의 서점 ‘유’와 스기나미구의 ‘6차원’ 등이다. 이곳에 모여드는 사람들을 언론에선 ‘하루키스트’라 부른다. 한 손에 샴페인을 들고 작은 폭죽까지 준비한 채 시간을 카운트하는 모습이 매스컴을 타곤 한다.
일본의 많은 서점들이 발표 전부터 하루키의 책을 전면 배치하는 등 전국민적 분위기 몰이도 한다. 일본 국내뿐만이 아니다. 최근엔 순위가 다소 밀리고 있으나 2010년을 전후해 영국의 유명 서점들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점치기 시작한 이래 하루키는 5번 연속 1위를 차지했다. 따라서 2024년 10월 역시 일본 팬들에겐 탄식과 실망의 순간이었으나 그들은 준비한 샴페인과 폭죽을 터뜨리고 “내년을 또 기대해 보겠다”며 건배를 외쳤다.
하루키는 한국의 전통적 문학 팬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의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다. 1990년대부터는 한국에서도 독자를 늘려 왔다. 하루키의 출세작인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가 히트할 당시 조사에 의하면 이 작품 하나의 판매 부수가 한국에서 나온 다른 모든 일본 작가의 책 판매 부수보다 많다고 보도됐을 정도다. 하루키의 세계적 인기는 여전하며 주요국 문학상도 여러 개 받았다. 최근의 해외 수상 경력으로는 2023년 스페인 최고의 문학상이라는 황태자상이 있다.
일본의 지인들로부터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받을 때마다 착잡함을 피할 길 없다. 그녀의 삼촌인 한충원 목사의 공개 편지에서 보듯 분단된 한반도의 슬픈 현실이다. 새삼 문학이란 무엇인가 고민스러워지며 첨예하게 대립된 입장의 역사적 사건에 대해 그토록 일방적인 선악 이분법, 대한민국 자체를 부정하는 역사 해석이 문학의 외피를 걸치고 칭송받는 게 과연 온당한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문학만이라도 어떤 여지, 대상으로부터의 거리감이 필요한 것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어찌 됐든 간만에 일본에서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사실인 듯하다. 2018년 말부터 15만 부 스테디셀러가 된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을 제치는 새로운 기록이 예상된다. 일본 평론가들은 2011년 신경숙·2016년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 등의 씨앗이 키워 낸 결과로 본다.
내년엔 누가 노벨문학상을 탈까. 노벨문학상이 여러 가지 정치적 고려를 하게 돼 회의론도 강해졌으나 그 지명도와 위상은 부인할 수 없다. 이를 계기로 일본 독자들이 또 다른 한국 작가들을 발견하는 기회가 생기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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