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2월10일, 대한민국 현직 대통령 김대중은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공로, 그리고 남북화해와 평화에 대한 노력’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그것은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온 게 아니라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핵탄두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김대중이 전 세계를 상대로 어떻게 가짜 평화를 만들어 노벨상 사기극을 벌였는지, 어떻게 노벨평화상과 핵무기를 뒷거래했는지…. 양심 증언으로 미국에서 정치적 망명을 허락받은 유일한 한국인 김기삼 변호사와 한반도 전문 국제 저널리스트 도널드 커크가 밝히는 아찔하고도 끔찍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편집자 주]
DJ의 자기 포장… ‘학자적 문제 인식’과 ‘기업가적 현실감각’
DJ의 노벨상 공작은 어떤 면에서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했다. 그는 일생일대의 정치적 기회와 노벨상 수상이라는 목표 두 가지 모두를 이루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노벨위원회는 그의 인생 스토리에 대해 잘 알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대외적으로 김대중은 자신이 망국적 지역감정을 이용해 대통령까지 된 포퓰리스트적 정치인이라는 사실을 감추려고 노력했다. 그는 정치 입문 초기부터 자신을 학자적인 문제 인식을 하고 기업가적 현실감각을 지닌 정치인으로 보이려고 했다.
노벨위원회 위원들은 수상자 선정을 위한 심사에 들어가던 당시 DJ의 자질과 배경에 관해 거의 아는 게 없는 상태였다. 김대중이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고, 온갖 상에 대한 욕심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그들은 알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학력 콤플렉스를 세계적인 유명 상들을 닥치는 대로 받는 것으로 커버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평생 공부에 대한 열망… 대단한 독서가‧저술가로 발전
덕분에 김대중은 노벨상에도 도움이 될 만한 대여섯 개 이상의 국제적인 상을 받았다. 대표적인 것으로 1981년 브루노 크리스키상‧1999년 필라델피아 자유의 메달에 이어 노벨상 수상자 발표 직전에 수상한 2000년 라프토 인권상 등이 있다. 또한 나머지 언급하지 않은 상들도 사실 모두 노벨상 수상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로비에도 DJ는 UN 인권상은 수상하지 못했다. 그 대신 같은 국제인권연맹으로부터 인권상을 받고 뉴욕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에서 성대한 시상 기념식을 열기도 했다.
분명한 사실은 DJ 자신이 정식으로 대학을 다녀 본 적도 없고, 이런 콤플렉스 때문에 평생 공부에 대한 열망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는 대단한 독서가이자 저술가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중은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정치‧경제‧사회‧철학에 이르기까지 각 분야에 관해 23권이나 되는 책을 직접 썼다고 한다. 김대중이 평생 저술한 책의 수가 김영삼 전 대통령이 평생 읽은 책보다 많을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의아해할 수밖에 없는 것은 DJ처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정치인이 언제 그렇게 다양한 분야의 책을 직접 쓸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김대중 뒤에는 수많은 유령작가 및 자료수집 담당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썼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책은 김대중 사후 발간된 방대한 분량의 김대중 전기 단 한 권뿐이다.
‘고졸’ DJ의 학력 콤플렉스, 놀림의 대상 되기도
정식 학력이라고는 고등학교 졸업장뿐인 DJ의 학력 콤플렉스는 주변에 꽤 알려진 사실이었다. 특히 자신과 비교가 안 될 학력의 여자와 재혼하면서 그의 학력 콤플렉스는 더욱 심해졌고, 이 때문에 상을 받고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내는 것만큼이나 명예학위를 닥치는 대로 수집하는 취미를 갖게 됐다고 한다.
그는 전 세계 대학에서 12개 이상의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1983년에는 자신이 따르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고향 인근 조지아주 애틀랜타에 있는 에모리 대학에서 명예 법학박사를, 1992년에는 모스크바 대학에서 명예 정치학박사, 1998년 조지타운 대학‧2008년 말라야 대학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런 노력에도 DJ의 짧은 가방끈은 놀림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수년 전 청남대에서 공개된 김대중의 동상은 그가 의자에 앉아 독서를 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김대중이 들고 있는 책은 인문학 서적이 아니라 홍성대 씨가 쓴 수학 참고서 ‘수학의 정석’이다.
이 책은 한국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렸다고 하는 책이다. 한국의 고등학생치고 이 책으로 공부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게다가 더 우스운 것은 김대중이 그 책을 거꾸로 들고 읽고 있다는 것이다. 김대중의 최종 학력이 상업계 고등학교라는 사실을 은근히 조롱한 듯한 모습이다. 청남대 관계자는 이에 대해 “별다른 의미 없이 ‘수학의 정석’으로 책 모양을 뜬 것”이라고 해명했다고 한다. 지금은 책 표지의 ‘수학의 정석’이라는 글씨는 지워진 상태이다.
학력에 이어 출생‧신분에 대한 소문까지
김대중의 청년 시절 정치 및 사회활동은 사회적 신분‧학력 열등감에서 발전되었을 개연성이 있다. 그가 차츰 야당 정치인으로서 명성을 얻게 되고 대선 후보에까지 오르는 거물이 되자 그의 출생에 관한 소문이 불거져 나왔다. 세간에는 그가 부친의 후처 또는 첩의 소생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또한 그의 출생지가 정확히 어디인가를 놓고도 논란이 이어졌다. 세간에는 그가 1960년 첫 번째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시기를 전후해 자신의 호적을 허위로 위조 또는 변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생년월일이 정확히 언제인지를 두고도 오래도록 논란이 일었다. 당초에는 1923년 1월생이라고 알려졌지만 이후 1925년 1월이라고 정정했다가 그의 사망 후 유족들은 김대중의 생일이 1924년 1월7일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1924년 1월이라면 음력으로 계산하면 돼지해 출생이다. 김대중은 1971년 대통령 선거 유세에서 자신이 돼지띠라서 뱀띠인 박정희를 이긴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고 한다. 지난해는 바로 그 대한민국의 ‘암 덩어리’가 100년 전에 태어난 해였다.
커크 기자, 남북정상회담의 금전 거래 의혹 제기
인터내셔널 해럴드 트리뷴의 도널드 커크 기자가 남북정상회담 과정에서 금전이 거래되었을 가능성을 처음 기사로 게재한 후 정확히 2년이 지난 2003년 1월31일, 김기삼은 이와 관련한 더욱 상세한 내용을 인터넷을 통해 세상에 폭로했다.
그 전 해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김대중정부하의 현대 아산에 대한 수상한 대출금이 정치 쟁점이 되기는 했지만, 그때까지 정상회담의 뒷돈 거래에 관한 사실은 철저히 감춰져 있었다. 권력 최고위층 외에는 정상회담의 대가로 천문학적인 돈이 오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정상회담에서의 뒷돈 거래가 전 세계를 핵전쟁의 위험에 빠뜨리는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거론한 사람은 이제까지 한 명도 없었다. 당시 북한에 건네진 현금으로 북한은 급속하게 핵 개발을 할 수 있었고 2006년과 2009년, 그리고 2013년에 핵실험을 성공하게 되었다.
2002년 10월까지 미국, 그리고 어쩌면 중국 등 국가의 정보기관 외에는 북한이 고농축우라늄(high-enriched uranium‧HEU)에서 핵탄두를 만들어 내기 위해 완전히 분리된 프로그램을 가동 중이라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또한 이렇게 개발한 핵무기를 근거리 및 장거리까지 실어 날라 표적지를 타격하는 대량살상 무기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남북정상회담의 뒷돈 거래… 핵무기 개발과 노벨상으로
게다가 그 대가가 DJ의 노벨상 수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 역시 아무도 몰랐다. 이처럼 감춰져 있던 노벨상 수상을 위한 뒷거래 공작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 단초가 된 것은 한 여기자의 특종기사였다. 앞에서 설명한 대로 뉴스위크 한국판의 임도경 편집장은 2002년 10월9일자 신문의 ‘M 프로젝트’ 및 ‘블루카펫 프로젝트’라는 제목의 기사 두 건을 통해 로비스트 최규선의 사무실에서 2002년 8월 녹음된 통화 및 이메일 내용을 폭로했다.
당시 최규선은 DJ의 3남 김홍걸이 연루된 뇌물 스캔들로 구속돼 수감 중이었다. 최규선의 운전기사로부터 정보를 입수한 임도경은 그것을 바탕으로 DJ의 측근들이 노벨상 수상 공작을 벌인 정황에 체계적으로 접근해 갔다.
△김기삼 변호사의 블로그(https://niswhistleblower.tistory.com/)를 방문하면 좀 더 상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정리= 박혜수 편집위원
프로필
김기삼
△서울대 법대 졸업
△펜 스테이트 디킨슨 법대 비교법학(LLM) 석사 졸업
△국가정보원 8년 근무
△2003년 미국 망명
△2011년 망명 확정
△(현) 미국 뉴욕주 변호사
도널드 커크 Donald Kirk
△미 프린스턴 대학 졸업
△1970년대 중반 이후 현재까지 시카고 트리뷴지(Chicago Tribune)·프랑스 파리의 IHT(International Herald Tribune)지를 비롯해 50년간 한반도 문제 전문 최고령 현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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