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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대의 사기, 반역의 메달
김대중의 노벨상 프로젝트 [69] 노무현 정권 ‘대북 송금’ 날림특검… 면죄부만 줬다
처음부터 “남북 관계 손상 우려 있는 조사 않겠다” 노골적 감싸기
송두환 특검법, DJ는커녕 김한정조차 부르지 않아… 예고된 부실
김기삼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1-14 06:30:56
2000년 12월10일, 대한민국 현직 대통령 김대중은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공로, 그리고 남북화해와 평화에 대한 노력’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그것은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온 게 아니라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핵탄두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김대중이 전 세계를 상대로 어떻게 가짜 평화를 만들어 노벨상 사기극을 벌였는지, 어떻게 노벨평화상과 핵무기를 뒷거래했는지…. 양심 증언으로 미국에서 정치적 망명을 허락받은 유일한 한국인 김기삼 변호사와 한반도 전문 국제 저널리스트 도널드 커크가 밝히는 아찔하고도 끔찍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편집자 주]
 
 
▲ 김기삼 전 국정원 내부고발자
▲ 도널드 커크(Donald Kirk) 국제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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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진의 변명… “직무에 충실한 관료였을 뿐”
 
노벨상 수상 과정에서의 역할에 대해 남궁진 전 문화부 장관은 자신은 보스를 위해 직무에 충실한 관료였을 뿐이라고 밝혔다.
 
“내가 김대중 대통령을 노벨상위원회에 수상 후보로 추천했다. 그리고 추천서가 제대로 노벨상위원회로 전달됐는지 체크했고, 문제가 있는 경우 다시 보냈다. (…) 대부분의 자료는 방송 테이프처럼 김 대통령의 평화 및 인권운동 관련 활동을 담은 홍보 자료, 관련 신문 및 잡지 기사 등이었다.”
 
남궁진의 발언은 나름 사실일 수 있다. 도널드 커크 기자는 여러 해 동안 한국의 야당 지도자 김대중(DJ)에 대한 인터뷰를 요청하며 남궁진과 관계를 이어 왔다. 커크는 자신이 DJ를 처음 취재한 것이 1972년 시카고 트리뷴 일본 특파원으로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동교동 DJ 자택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후 1973년 ‘김대중 납치음모사건’ 당시 인터뷰를 했다. 1987년 6월 항쟁 당시에도 DJ 취재를 위한 채널은 남궁진이었다.
 
남궁진, DJ가 가장 신임한 최측근
 
DJ가 민주헌법 쟁취를 주장하며 가택연금 상태에 있을 때,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첫 직선제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했을 때, 다음 대통령 선거인 1992년 평생의 라이벌 김영삼(YS)에게 패한 후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한국을 떠날 때, 그리고 정계에 복귀한 DJ가 199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이 모든 중요한 시기에 남궁진은 DJ가 가장 신임하는 측근으로 옆을 지켰다. 따라서 그는 인터뷰에서 밝힌 것과 달리 노벨상 공작을 주도한 김한정 다음으로 그 과정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노벨상 공작 의혹을 폭로한 김기삼이 이미 미국으로 떠나 망명을 모색하던2003년 3월 월간조선은 ‘김대중 노벨평화상 국제로비의 진상’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그 기사에서 월간조선은 “로비 의혹을 둘러싼 진실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러면서 DJ 정부의 관리들이 이 로비에 관여한 것이 분명하며 몇몇 정부 관리의 지원을 받아 그것을 주도한 인물은 김한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NP 프로젝트’라 불리는 이 공작엔 극소수의 인원만 참여했기 때문에 그 전모를 알아내기는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월간조선, 김한정을 노벨상 공작 책임자로 지목
 
월간조선 기사에서 노벨상 공작 책임자로 지목된 김한정은 예상대로 수년간 국정원 요원으로서 노벨상 공작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김기삼의 주장에 대해 “그런 부도덕한 사람의 주장은 반박할 가치도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자신의 입장을 묻는 월간조선의 질문에 김한정은 자신이 이 문제에 직접 대응하는 것보다 국정원 차원에서 책임을 물을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비윤리적인 사람의 발언에 대해 묻고 답할 필요가 없다”며 불쾌감을 나타냈다. 이어서 국정원과 이후 아시아태평양민주지도자회의(FDL-AP)에서 어떤 일을 했느냐는 질문에 대해 김한정은 “당신 원하는 대로 쓰세요, 난 어떤 대답도 하지 않겠습니다”며 더 이상의 답변을 거부했다.
 
 
▲ 김대중(왼쪽) 대통령이 2001년 9월19일 청와대에서 남궁진 신임 문화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홍준, 김정남에게서 남북 간의 뒷돈 거래 사실 들어
 
김기삼은 자신의 저서에서 북한과의 돈거래가 이루어진 상황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2002년 10월 그는 워싱턴에서 재미교포 사업가 윤홍준을 만나 그로부터 관련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언제였는지 확실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2000년 초 날씨가 제법 쌀쌀했던 날 동경에서 김정남을 만났는데 그때 김정남과 그의 수행원인 황 대장이라는 친구로부터 남북 간의 뒷거래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김기삼이 그의 패스포드를 확인해 보았더니 2000년 2월과 4월 초에 일본에 다녀온 기록이 남아 있었다.
 
윤홍준의 설명에 의하면 “남과 북은 1999년 12월 말, 국정원의 파우치(외교행낭)를 이용하여 남측이 북측에 15억 달러 상당의 돈을 유로화로 송금하기로 합의했다”는 것이었다. 당시 윤홍준은 김정남 일행으로부터 그 이야기를 그저 지나가는 이야기로 듣고 흘려 버렸는데 “지금에야 그것이 남북정상회담의 뒷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김기삼은 윤홍준의 설명을 들으면서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었지만 결국 그가 거짓말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윤홍준의 얘기를 들으니 김한정의 행적과 윤홍준이 말해 준 김정남의 이야기가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김기삼의 노벨상 공작 폭로 후 임동원과 박지원의 해명
 
김기삼의 폭로 후 2주가 지나 청와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임동원과 박지원이 직접 해명에 나섰다. 청와대는 5억 달러를 북한에 전달한 사실은 시인하면서도 그 돈은 정상회담의 대가가 아니라 현대아산과 북한 사이의 사업자금으로 이미 정해진 지불 일정에 따라 송금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이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해 임동원은 자신은 국익을 위해서만 일을 했다며 면책특권에 따라 국익에 관련된 질문에 답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또한 그는 “그 돈은 남북정상회담의 대가가 아니며 정상회담 개최 합의 당시 북한의 어려운 경제 사정을 고려해 정부가 지원을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권이 바뀌고 3월로 접어들면서 대선에 패배해 주눅이 들어 있던 한나라당이 서서히 반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한나라당은 대북 송금 문제를 조사하기 위한 특별검사법(특검)을 발의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사건이 일어났다. 신임 노무현 대통령이 특검법을 승인한 것이다. 노 대통령은 특검이란 승부수를 던져 DJ로부터 독립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노무현 대통령, DJ 대북 송금 특검 승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후 발간된 그의 자서전에는 당시 특검을 받아들이게 된 사연이 비교적 상세히 소개돼 있다. 그 책의 설명에 따르면 DJ가 송금 사실을 인정하면 통치 행위로 무마해 넘어갈 수 있었는데 끝내 송금 사실을 몰랐다고 우기는 바람에 통치 행위론을 주장할 근거가 없었다고 한다. 박지원이라도 총대를 멨더라면 특검 없이 갈 수가 있었는데 그것도 안 됐기 때문에 할 수 없이 특검으로 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애초부터 특검을 하더라도 남북관계에 손상을 줄 염려가 있는 조사는 하지 않겠다고 선을 긋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출발은 했지만 당초에 송두환 특검팀에는 큰 기대를 걸 수 없는 상황이었다. 특검에 참여한 인물들의 면면을 보아서도, 자세를 보아서도 초유의 반역 사건을 엄정하게 다루려는 의지가 묻어나지 않았다. 그들은 DJ는 물론이고 김한정도 조사하지 않았다. 특검의 단초를 제공한 김기삼에게도 아무런 수사 협조 요청을 하지 않았다.
 
예상했던 대로 특검의 결과는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이었다. 몇 달간의 조사를 통해 송두환 특검팀은 “북한으로 송금된 돈의 액수는 총 5억 달러이며 이 중 5000만 달러는 현물로 보내졌다”고 발표했다.
 
특검의 수사는 “5억 달러 중에 남북정상회담의 대가로 김대중정부가 북측에 건네기로 약속한 1억 달러가 포함되어 있다”고 밝히는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특검 이전에 이미 확인된 내용 이외에 특검을 통해 새롭게 밝혀진 것은 전혀 없었다.
 
△김기삼 변호사의 블로그(https://niswhistleblower.tistory.com/)를 방문하면 좀 더 상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정리= 박혜수 편집위원
 
 
프로필
 
김기삼
 
△서울대 법대 졸업
△펜 스테이트 디킨슨 법대 비교법학(LLM) 석사 졸업
△국가정보원 8년 근무
△2003년 미국 망명
△2011년 망명 확정
△(현) 미국 뉴욕주 변호사
 
도널드 커크 Donald Kirk
 
△미 프린스턴 대학 졸업
△1970년대 중반 이후 현재까지 시카고 트리뷴지(Chicago Tribune)·프랑스 파리의 IHT(International Herald Tribune)지를 비롯해 50년간 한반도 문제 전문 최고령 현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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