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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정원 직원의 양심 증언
김대중과 대한민국을 말한다 [14] ‘007’ 꿈꿨는데… 논산훈련소에 다시 온 듯
김기삼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2-25 06:30:50
 
 
▲ 김기삼 전 국정원 내부고발자
 
 
잠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본다. 머리에 핵을 이고 살며 밖으로는 자국 중심주의의 물결이 살벌한 칼춤을 추는 가운데 국가안보와 경제에 집중해야 할 이때 난장판이 된 정치 상황에 모두가 넋을 놓고 있지 않은가. 
북한보다도 가난했던 시절을 이기고 전 세계 국력 순위 6위의 부강한 나라를 만든 우리가 지금 왜 이러고 있는 것일까. 이 혼란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를 살피다 보면 그 꼭짓점에 김대중이라는 인물이 나타난다. 
좌파 세력의 득세와 한반도와 세계의 안위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는 북한 핵 개발의 출발점이 김대중 정권임을 고발한 전 국정원 직원의 기록… 이 절박한 시점에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편집자 주]
 
 
 
 
양지관 입주 후 정보학교 정규과정 교육
 
양지관은 우리 기수가 최초로 입주한 신축 건물이었다. 그렇다 보니 건물의 유지관리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했다. 매일 청소 때면 바닥을 쓸고 닦았다. 난간에는 손때가 묻지 않도록 기름칠도 했다. 양지관은 겉은 번지르르했으나 사실은 부실투성이 건축물이었다. 몇 년 지나지 않아 외벽이 떨어져 나가고 칠이 벗겨져 금세 흉물로 변했다. 당시에 엄삼○ 기조실장이 건축 과정에서 ‘많이 해 먹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정보학교의 생활 정규과정 교육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피교육생 신분이란 게 다 그렇지만 머리가 굳어진 후 통제된 생활을 강요당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도 하루이틀도 아니고 1년간이나 하다 보면 지치고 진이 빠진다. 처음 몇 달간은 한겨울의 훈련이라 더 고통스러웠는지도 모르겠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생활이었지만 그렇다고 지옥 훈련 같은 것은 아니었다.
 
 
제임스 본드를 꿈꿨는데… 논산훈련소에 재입소한 듯
 
처음 몇 주가 지나자 “퇴사하겠다”고 나서는 친구들이 생겼다. 제임스 본드를 꿈꾸고 들어왔는데 막상 겪어 보니 논산훈련소에 재입소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퇴사하는 요원이 생겨 결원이 되면 금방 차순위 입소자가 그 자리를 메웠다. 나도 처음 석 달은 무척 견디기가 힘들었다. 전혀 새로운 세계에 내 자신을 적응시켜야 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래도 그럭저럭 그런대로 잘 참고 넘겼다.
 
우리는 평상시에는 모두 곤색 유니폼 양복을 입고 다녔다. 이동할 때는 언제나 줄을 맞춰 걸었다. 다행히 발까지 맞출 필요는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청사 내에서 선배 직원들을 마주치기라도 하면 저 멀리서도 “안녕하십니까” 하고 큰 소리로 인사해야 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단지 선배라는 이유로 소리 높여 인사하는 게 고역이었다.
 
6시에 일어나 아침점호 후 빽빽한 일과
 
하루 일과는 대개 아침 6시에 시작되었다. 한겨울의 아침 6시는 캄캄한 새벽이다. 기상나팔은 없지만, 방송실에서 보내 주는 기상 음악 소리에 잠을 깼다. 노래 선정은 학생회장이 했는데, 대개 경쾌한 곡조로 골라 틀었다. 학생회장은 한두 달마다 돌아가면서 선출했다. 한번은 짓궂은 동기 녀석이 운동권 노래인 ‘철의 노동자’를 트는 바람에 모두가 혼비백산하기도 했다.
 
 
우리는 일어나자마자 양지관 앞에서 아침점호부터 했다. 점호가 끝나면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고 청사 내에서 2km 정도 아침 구보를 했다. 대개 4열 종대로 줄을 맞추어 군가나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구보했다. 군대 제대하고 나서 다시 군가를 부르는 게 왠지 좀 어색할 때가 있었다. 구보가 끝나면 씻고, 방 정리하고, 수업 준비를 한 후 아침 식사를 했다.
 
 
▲ 양지관 생활 중에서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 중의 하나가 취침 점호였다. 논산훈련소에서나 하던 취침 점호를 양지관에서 다시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양지관의 취침 점호는 논산훈련소에서보다 더 까다롭게 진행되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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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관은 숙소라기보다 내무반
 
수업은 보통 9시에 시작해서 하루 6시간 정도 진행되었다. 수업이 끝나면 대개 한 시간 정도 합기도를 배웠다. 이렇게 해서 하루 일과가 끝나면 좋겠지만 그런 날은 거의 없었다. 정식 교과과정이 끝나는 시간부터 정작 어려운 시간이 시작되었다. 군대에서 내무반 생활이 더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양지관으로 돌아오고 난 후에도 여러 가지 통제된 생활이 이어졌다.
 
저녁을 먹고 나서 또다시 단체 구보를 했다. 2km 정도 하고 간단히 끝나면 그날은 아주 운이 좋은 날이었다. 대개는 운동장에 남아서 더 달리거나 체육관으로 옮겨가서 여러 가지 구기 종목을 했다. 운동시간이 끝난 후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거의 매일 집합이 걸렸다. 집합이 걸리면 또다시 양지관 계단을 뛰어 오르내리거나 운동장을 돌아야 했다.
 
비록 통제된 생활이긴 했지만 양지관 생활 중에 그나마 여유가 있는 시간은 저녁 시간이었다. 물론 이때에도 완전히 자기만의 시간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대개 강당에 모일 일이 생겼다. 입소 초기에는 거의 매일 모였다. 그러고 나면 또다시 청소하고 정리하고 취침 점호에 들어갔다. 이 모든 절차가 순조롭게 끝나야 비로소 하루 일과가 마무리되었다.
 
양지관에는 다목적실이라고 불리는 강당이 있었다. 이 강당은 그야말로 다목적으로 사용되었다. 강당에선 매일 밤 여러 가지 다양한 주제의 행사가 열렸다. 가끔은 영화를 보여줄 때도 있었다. 시중에 개봉되기도 전에 우리가 먼저 검열(?)하는 영화도 있었다. 훈육관이 어디에선가 필름을 구해 왔다. 시중에 공개되지도 않은 영화를 입수하는 것은 아마도 정보기관이 잘나가던 시절의 유산이 아니었는가 싶다. 가장 먼저 봤던 영화는 스나이퍼(저격수)라는 영화였는데 내용은 별로인 시시한 영화였다.
 
어떤 때에는 선배들이 위문하러 와서 자신들의 경험을 들려주기도 했다. 바로 위의 기수 선배들이 오기도 했고, 훈육관 기수가 온 날도 있었다. 대개 그런 날이면 푸짐한 음식도 같이 준비해 오곤 했다.
 
낮에 정식으로 받기 어려운 교육을 밤에 보충하는 경우가 많았다. 교육 내용도 가지가지였다. 강사를 초빙하여 사교댄스를 배우기도 했고, 사교모임에서의 에티켓 같은 것을 강의할 때도 있었다. 차력사나 기(氣) 치료사를 초청해 오기도 했다.
 
논산훈련소보다 더 까다로웠던 취침 점호
 
양지관 생활 중에서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 중의 하나가 취침 점호였다. 논산훈련소에서나 하던 취침 점호를 양지관에서 다시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양지관의 취침 점호는 논산훈련소에서보다 더 까다롭게 진행되었다.
 
점호가 시작되면 훈육관은 각 방의 청소 상태나 사물 정돈 상태부터 철저히 점검했다. 점호 시 번호와 성명을 복창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그 복창 소리를 장난이 아니게 크게 질러야 했다. 양지관이 아주 떠나갈 듯이 요란스러웠다. 나는 15년이 지난 지금도 저 멀리 복도 끝에서 “51번 이영○입니다!”고 소리치던 친구의 고함소리가 귓전에 울리는 듯하다.
 
점호를 하다 갑자기 집합이 걸리는 수도 종종 있었다. 옛날 선배들은 추운 겨울날에도 팬티 바람으로 양지 못에 뛰어들었다고 하는데 우리는 다행히 그 정도로 험악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여자 동기들 덕택이었을 것이다. 훈육관이 아무리 악독해도 한겨울에 여자들을 얼음물 속에 집어넣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꽤나 시달렸다. 그나마 구타나 가혹행위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그것도 여자 동기들 덕분이었을 것이다.
 
전반기‧후반기로 나뉜 정규과정 교육
 
 
정규과정 교육은 크게 전반기 과정과 후반기 과정으로 나뉘었다. 전반기 과정은 정보요원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 품성을 기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주로 기본 교양과목을 배웠다. 물론 건전한 국가관을 함양하기 위한 정신교육에 주안점이 주어졌다. 영어와 일어도 100시간씩 배우고, 정보원이 알아야 할 다양한 주제의 교과목들을 배웠다. 국내정세와 국제정세‧북한 정세에 대한 교육도 받았다.
 
국정원 교육이라고 해서 뭔가 기상천외한 것을 가르치는 것은 아니었다. 여담이지만, 예전에 모 신문이 국정원의 정규과정 교육에 대해 자세하게 소개하는 기사를 실은 적이 있다.(중앙일보 2006년 5월29일자 ‘국정원 교육 현장 언론 첫 공개’라는 제하의 기사 참조). 그 기사를 보니 교육 분위기는 그다지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그 기사에서는 정규과정 학생들이 기억술이나 독심술 등을 배우는 것으로 소개되었는데, 조금 과장된 느낌이 들었다.
 
정규과정 교육을 받는 중에 가끔은 희귀한 자료를 접할 기회도 있었다. 우리는 김정일의 비밀파티에서 기쁨조가 캉캉춤을 추고 있는 영상물을 본 적도 있고, 한총련의 비밀 대의원 회의를 찍은 비디오를 본 적도 있다. 이런 것들은 아마 실무 부서에서 입수한 자료들일 것이다.
 
△김기삼 변호사의 블로그(https://niswhistleblower.tistory.com/)를 방문하면 좀 더 상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정리= 박혜수 편집위원
 
 
프로필
 
김기삼
 
△서울대 법대 졸업
△펜 스테이트 디킨슨 법대 비교법학(LLM) 석사 졸업
△국가정보원 8년 근무
△2003년 미국 망명
△2011년 망명 확정
△(현) 미국 뉴욕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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