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본다. 머리에 핵을 이고 살며 밖으로는 자국 중심주의의 물결이 살벌한 칼춤을 추는 가운데 국가안보와 경제에 집중해야 할 이때 난장판이 된 정치 상황에 모두가 넋을 놓고 있지 않은가.
북한보다도 가난했던 시절을 이기고 전 세계 국력 순위 6위의 부강한 나라를 만든 우리가 지금 왜 이러고 있는 것일까. 이 혼란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를 살피다 보면 그 꼭짓점에 김대중이라는 인물이 나타난다.
좌파 세력의 득세와 한반도와 세계의 안위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는 북한 핵 개발의 출발점이 김대중 정권임을 고발한 전 국정원 직원의 기록… 이 절박한 시점에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편집자 주]
오 실장 덕에 비례대표 국회의원 된 김철 부장
오정소 실장은 원래 해외공작국 출신이었다. 노태우 정권 말기, 그는 해외공작국 행정과장을 하다가 대공정책실 협력단장으로 부임했다. 당시 언론 여건이 취약해지자 언론을 조정 통제하기 위해 대정실 내에 협력단이라는 조직을 신설했는데, 그가 초대 협력단장이었다. 해외 부서의 간부가 국내 부서로 옮기는 일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다. 아마 언론계와의 개인적인 친분이나 인연이 고려되었던 것 같다.
그의 친형은 모 언론사 간부 출신이고, 그 자신 젊은 시절부터 한국일보 사주였던 장강재 회장 등 언론계 인사들과 친분이 있었다. 조선일보 국제부장을 하던 김철 씨는 오 실장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아마 고교 동창이었던 것 같다. 오 실장과 김 부장은 서로 “소야!” “철아” 하면서 끝까지 “부어라” “마셔라” 하는 사이였다.
그 후 김철 부장은 조선일보를 그만두고 당시에 이미 차장으로 승진해 있던 오 실장의 후원으로 집권 여당의 비례대표로 국회에 들어갔다. 그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당의 대변인까지 되었다.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쉰’ TK와 ‘신’ TK
보좌관과 보좌원 간의 업무 분장이 명확한 것은 아니었다. 실장과 부실장의 개인적인 심부름이나 비공식적인 잡무도 모두 내 차지였다. 이 보좌관은 주로 오 실장을 챙긴 반면 보좌원인 나는 세 명의 부실장을 챙겼다. 제 1부실장은 임경○ 단장이었는데 그는 정치‧학원‧종교 분야를 담당했다. 임 단장은 김기섭 기조실장의 대구 영남고등학교 후배였다. 그 후 그는 오 실장이 차장으로 승진하자 대공정책실장 자리를 이어받았다.
당시 우스갯소리로 “TK도 여러 가지”라는 말이 돌았다. 이른바 ‘신(新) TK’와‘쉰 TK’가 있다는 것이었다. 구정권에서 잘 나가던 TK 인사들은 ‘쉰 TK’라고 불렀고, 신정권에서 새로 부상한 TK 인사들을 ‘신 TK’라고 불렀다. 안기부 내에서는 영남고 출신들이 대표적인 ‘신 TK’로 분류되었다. 김기섭 실장과 임 단장이 영남고 출신이었다.
핵심 보직인 감찰과장을 지냈던 이순○ 과장도 영남고 출신이었다. 그는 김대중 정권에서 해임되자 ‘국강투(국정원 강제퇴직자 투쟁위원회)’라는 조직을 결성했다.
영남고 출신 홍준표 특보… 소신이 너무 강해 ‘튀는 존재’
검찰에서 홍준표 특보가 파견되어 왔는데, 그도 영남고 출신이었다. 홍 검사는 박철언 씨와 이건개 씨를 조사한 탓에 검찰 내에서는 배신자라는 소리를 들었다. 안기부로 파견되어 나온 것도 김기섭 기조실장과의 인연 때문이라는 말이 돌았다. 정형근 씨가 영입해 왔다는 말도 있었다.
홍 검사는 안기부 재직 시절 여러 가지 튀는 행동을 많이 했다. 그는 체질적으로 조직 생활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 같아 보였다. 소신이 너무 강해 보였다. 팀워크보다는 단독플레이에 능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노태우 정권의 ‘황태자’ 박철언도 ‘쉰 TK’
반면에 당시 ‘쉰 TK’의 대표적인 인사는 박철언 씨나 박준규 씨 같은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문민정부가 들어선 후 대부분 감옥에 갔거나 집에서 쉬었다.
박철언 씨는 노태우 정권에서 소위 황태자라 불리면서 월계수회를 조직하는 등, 정권의 2인자로서 한창 잘 나갔던 사람이다. 박철언 씨는 ‘LP’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LP가 ‘Little Prince’인지 ‘Little Park’인지 아니면 ‘Little President’인지 몰라도 어쨌든 그는 그렇게 불렸다.
나는 우연히 이 ‘LP’ 보고서를 읽은 적이 있다. 아마 홍준표 검사가 작성한 수사 보고서였던 것 같다. 그 보고서에는 박철언 씨가 파친코 업자로부터 뇌물을 수수했던 정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여담이지만, 당시 박철언 씨의 비리 혐의를 찾고 있던 때여서 그랬는지 그에 대한 첩보가 심심찮게 올라왔다. 대부분 난잡한 사생활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런 첩보들 가운데 이러한 것도 있었다.
“LP는 꽃값에 인색하여 여대생들로부터 째째하다고 욕을 먹는다.”
어느 첩보에서는 “감옥에서 나가면 두 사람은 반드시 손을 볼 것이다”고 한 내용도 있었다. 그 두 사람이란 강모 씨와 이모 씨라고 했다. 강모 씨는 그 후 한나라당의 최고 중진이 된 사람이고, 이모 씨는 문민정부에서 국정원 고위직을 지낸 인사이다. 아마 그들 간에는 우리 범인(凡人)들이 알지 못하는 무슨 사연과 곡절이 있었던 모양이다.
우스운 얘기지만 박철언 씨의 아내인 현모 씨에 관한 첩보도 심심찮게 보고되었다. 후에 그녀는 남편을 대신해 대구에서 출마하여 국회의원이 되기도 했다. 현모 씨에 대해서는 “맞바람을 피운다”는 등의 3류 첩보가 주를 이루었다. 수영강사와 테니스 코치가 등장하는 등, 믿거나 말거나 식의 양아치 정보들이었다.
이러한 첩보들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음해인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러한 첩보를 소개하는 것은 이러한 첩보의 내용들을 사실이라고 믿어서가 아니다. 다만, 정보기관이 수집하는 첩보의 범위와 성격이 어떤 것인지를 소개하기 위해서일 뿐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국정원이 이런 양아치 첩보를 더 이상 수집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김기섭 기조실장… YS의 아마추어 측근 중 한 사람
부속실에서 나는 주로 임 단장의 보좌관 역할을 했다. 그의 사소한 개인 심부름도 자주 했다. 좀 짜증 나는 일이긴 했지만, 가끔 은행에 가서 미국에 유학 중인 그의 아들에게 생활비를 부치는 심부름도 했다.
임 단장의 심부름 중에서 가장 중요했던 일은, 김현철에 관련된 첩보를 친전(親展) 봉투에 넣어 김기섭 기조실장에게 전달해 주는 일이었다. 문민정부 초기에는 김현철 씨의 신상 관련 첩보는 김기섭 실장이 직접 관장했기 때문이다.
김기섭 실장은 신라호텔 상무 출신이라고 했다. 그는 정보에 대한 감각이 있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상도동이 정권을 잡고 난 후 김영삼 대통령(YS)의 아마추어 측근들이 어떻게 하든지 청와대에 들어가려고 박 터지게 다툴 때 그는 “안기부 기조실장 자리를 자원해 경쟁 없이 무혈 입성했다”고 한다.
김 실장은 무척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매일 새벽 5시경 출근하여 청사를 한 바퀴 돈 후 하루 업무를 시작하곤 했다. 그는 나름대로 “안기부가 더 이상 정치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나중에 김현철의 최측근으로 행세하면서 물의를 빚었지만 어찌 보면 동정심이 가기도 한다.
능력도 소신도 없는 제2 부실장
제2 부실장은 이근○ 단장으로, 그는 경제와 사회 분야를 담당했다. 이분은 어떻게 단장이 됐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능력도 소신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랫사람으로서 그를 성심껏 모셨다. 한참 후에 이 단장이 입원했을 때 병문안을 갔더니 “다른 사람들은 날 아무렇게나 대하는데 너는 좀 다르구나” 하고 말했다. 나의 성의에 고마움을 표시한 말이었다.
이 단장의 방에는 진○○‧최○○ 같은 고참 직원들이 하루 종일 죽치며 노닥거리기 일쑤였다. 진씨는 별명이 ‘진도깨비’였는데 아마도 젊은 시절엔 국내외 부서를 오가며 한가락 했던 것 같았다. 그는 오 실장의 경복고등학교 선배였기 때문에 아무리 땡땡이를 쳐도 오 실장도 어쩌지 못했다.
△김기삼 변호사의 블로그(https://niswhistleblower.tistory.com/)를 방문하면 좀 더 상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정리= 박혜수 편집위원
프로필
김기삼
△서울대 법대 졸업
△펜 스테이트 디킨슨 법대 비교법학(LLM) 석사 졸업
△국가정보원 8년 근무
△2003년 미국 망명
△2011년 망명 확정
△(현) 미국 뉴욕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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