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6-09-28 19:55
뉴스 > 연재기획
전 국정원 직원의 양심 증언
김대중과 대한민국을 말한다 [26] ‘끼리끼리’ 말아먹은 문민정부… 그 중심에 김현철의 K2
김기삼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3-17 06:25:20
 
 
▲ 김기삼 전 국정원 내부고발자
    
 
잠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본다. 머리에 핵을 이고 살며 밖으로는 자국 중심주의의 물결이 살벌한 칼춤을 추는 가운데 국가안보와 경제에 집중해야 할 이때 난장판이 된 정치 상황에 모두가 넋을 놓고 있지 않은가. 
북한보다도 가난했던 시절을 이기고 전 세계 국력 순위 6위의 부강한 나라를 만든 우리가 지금 왜 이러고 있는 것일까. 이 혼란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를 살피다 보면 그 꼭짓점에 김대중이라는 인물이 나타난다. 
좌파 세력의 득세와 한반도와 세계의 안위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는 북한 핵 개발의 출발점이 김대중 정권임을 고발한 전 국정원 직원의 기록… 이 절박한 시점에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편집자 주]
 
 
 
 
김현철의 과도한 국정 개입
 
내가 대정실에 근무할 당시 김현철 씨의 국정 개입은 이미 지나친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일개 사인에 불과한 30대 젊은이가 한 국가의 모든 인사를 주무르다시피 했다. 개각 때마다 기판국에서 5배수의 추천 명단을 올렸는데 이와 별도로 대정실에서도 따로 5배수를 올렸다.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이런 보고서는 당연히 김현철에게 가는 것으로 여겨졌다.
 
김현철 씨에게 비판적인 태도를 보인 사람은 가차 없이 잘려 나갔다. 청와대 비서실장이나 경호실장도 그런 이유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김덕룡 의원도 “현철을 유학 보내라”고 건의했다가 권력 핵심에서 밀려났다. 모든 게 이런 식이었다. 청와대에서 거의 유일하게 김현철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던 민병환 비서관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결국 안기부로 자리를 옮겼다.
 
 
게다가 문민정부는 권력 주변에 기생하는 잡쓰레기 인물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정권 초기부터 “박태중을 비롯한 김현철의 측근들이 발호하고 있다”는 첩보가 끊임없이 올라왔다. 장학로 청와대 제1 부속실장이 “주는 대로 먹는다”는 소문도 일찍부터 나돌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뇌물 사건으로 구속되었다. 그의 구속으로 문민정부의 개혁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구인지 백일하에 드러났다. 아무리 대통령 혼자 청와대에서 칼국수 먹어 봐야 소용없는 일이었다.
 
문민정부 개혁 밑그림 그린 전병민… 김현철의 핵심 측근
 
오정소 실장에게는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방객이 찾아오면 주로 내가 정문으로 나가 에스코트를 했다. 문민정부의 초대 청와대 정책수석으로 내정됐다가 낙마한 전병민이란 사람도 오 실장을 자주 찾아오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소위 ‘동숭동’팀의 팀장으로 김현철 씨의 최고 핵심 측근이었다. 문민정부 개혁의 밑그림을 그린 게 전병민이란 사람이었다. 그가 자주 내방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오 실장과 권력 내부의 문제를 서로 의논하는 것 같았다.
 
나는 김현철 씨의 전화도 여러 번 받을 기회가 있었다. 그는 전화할 때마다 “여의도 김 소장입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처음에 그의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여의도에 무슨 군인이 있어 여기로 전화를 하나?’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게 ‘여의도 사무소의 김현철 소장’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는 전화 매너는 괜찮은 사람이었다. 말도 자분자분 신사적으로 했고, 나 같은 하급 직원에게도 항상 존댓말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한참 후 그가 ‘한보(韓寶)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는 것을 보면서 나는 그가 ‘어쩌면 억울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는 구속되면서도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아마 아직 모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옥에도 지부가 있다는 대한민국 3대 패밀리
 
당시 시중에 나돌던 우스갯소리 가운데 “우리나라에는 지옥에까지 지부(支部)가 설치되어 있는 3대 패밀리가 있다”는 얘기가 있었다. 바로 해병대 전우회와 고대 동문회 그리고 호남 향우회가 그 주인공들이었다.
 
이 중에서 문민정부 시절에는 고대 동문회가 힘을 썼다. 그중에서도 특히 경복고등학교를 나온 고대 출신이 성골(聖骨)이었다. 경복고 출신들은 ‘케이투(K2)’라고 불렸다. 일제 때 경기고등학교가 경성 제1고보(K1)였고 경복고가 경성 제2고보(K2)였던 데서 연유한 것 같다.
 
김영삼 정권을 PK 정권이라 하는 건 조금 잘못 본 것이다. 물론 숫자상으로는 부산‧경남 출신이 많이 중용되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은 대개 육두품(六頭品), 기껏해야 진골(眞骨)이었다. 문민정부의 핵심 실권은 모두 경복고와 고대 출신들이 좌지우지했다.
 
이에 비해 김대중 정권 때는 호남 향우회가 모든 것을 독차지했다. 양 정권의 차이점이라면, 김영삼 정권 때는 ‘눈치껏’ 지역 안배를 하는 시늉이라도 했지만 김대중 정권에서는 그나마 ‘눈치껏’ 하는 것조차 과감하게 내던져 버렸다는 정도일 것이다.
 
경복고‧고대 세력과 부산‧경남고 세력의 알력
 
문민정부에 대해 좀 아는 사람들은 “김영삼 정권은 김현철을 중심으로 한 경복고‧고대 세력과 부산‧경남고 세력 간의 알력 때문에 무너졌다”고 말한다. 이는 설득력 있는 분석이다.
 
당시 청와대 안에서는 이원종 정무수석과 김광일 실장이 사사건건 부딪혔다. 초대 비서실장이었던 박관용 실장도 김현철 일파에 의해 단칼에 밀려났다. 내가 이미 언론에 밝혔듯이 박관용 실장은 고등학교 동창과 저녁을 먹으면서 대화한 내용이 미림의 도청에 걸려 전격 경질되었다(2005년 8월2일자 주간동아 ‘대통령 비서실장‧경호실장도 도청했다’는 제하의 기사 참조).
 
김영삼 대통령은 1997년 초, 김현철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될 즈음에 가서야 여론에 밀려 경복고‧고대 세력의 중심이던 이원종 수석을 잘랐다. 이 수석은 ‘핏대’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정권을 방어하기 위해 핏대를 올린 장본인이었다. 기자들은 그를 ‘혈죽(血竹) 선생’이라고 조롱했다.
 
이원종 수석‧오정소 차장 경질… 문민 정권 몰락의 전주곡
 
사실은 이원종 수석이 잘리기 전에 오정소 차장이 먼저 갈렸다. 오 차장은 1996년 12월 중순, 연합통신에 기사가 나기 10분 전에 “전격적으로 경질을 통보받았다”고 한다. 후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YS의 친구였던 고(故) 김윤도 변호사가 청와대에 들어가서 “오정소를 잘라야 한다”고 강력하게 건의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한다. 아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오정소 차장은 퇴임 인사차 부내를 순시하면서 고대 후배인 박성도 정보비서관에게 “성도야, 새로 오는 ○○하고 잘해 봐라”고 말했다고 한다. 당시 박성도 비서관은 권영해 부장의 최측근으로 근무하면서 국정원의 국내외 정보를 총괄하고 있었다.
 
오정소 차장이 말한 ‘새로 오는 ○○’은 박일룡 경찰청장을 두고 한 말이었다. 당시 박일룡 차장은 부산 세력의 대표 중의 한 명이었다. 그는 ‘초원복집 사건’에서 영도다리를 언급했던 주인공이다. ‘초원복집 사건’은 대선 직전 정주영 후보 측에서 김영삼 후보 측근들을 도청한 사건이다.
 
오 차장과 박 청장은 “현직에 있을 때부터 견원지간이었다”고 한다. 오 차장과 이 수석의 전격 경질은 문민 정권 몰락의 전주곡이 되었다.
 
국가부도 사태로 식물 정권 된 문민정부
 
1997년 1월, 여당인 신한국당은 안기부법 개정안과 금융개혁법을 날치기 통과시키려다 여론에 밀려 실패했다. 이 와중에 한보 사태와 기아 사태가 터져 나왔다.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던 나라의 경제가 서서히 기울어지고 있었다. 국가부도 사태가 전개되고 있는데도 김영삼 정권은 정국에 대한 통제력을 점점 잃어 가고 있었다. 레임덕 정도가 아니라 아예 식물 정권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김현철의 국정 농단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언론은 확인되지 않은 기사를 양산하고 야당은 부채질을 했다. 급기야 검찰이 김현철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정권을 방어하려고 총대를 메지 않았다.
 
새로 부임한 박일룡 차장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김현철을 난타하던 언론이 “예전 같으면 안기부가 보도 수위를 적절히 조절해 줬는데…”라며 의아해할 정도였다. 김영삼 정권의 마지막 해에는 정권이 통제 불능의 상태에 빠지면서 나라 경제는 외환위기로 치닫게 되었다. 정권 말기 권력의 공백이 가져온 비극이었다.
 
△김기삼 변호사의 블로그(https://niswhistleblower.tistory.com/)를 방문하면 좀 더 상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정리= 박혜수 편집위원
 
 
프로필
 
김기삼
 
△서울대 법대 졸업
△펜 스테이트 디킨슨 법대 비교법학(LLM) 석사 졸업
△국가정보원 8년 근무
△2003년 미국 망명
△2011년 망명 확정
△(현) 미국 뉴욕주 변호사
 
광고
후원하기
  • 정기 후원
  • 일반 후원
  • 무통장입금: 하나은행 158-910019-39504 스카이데일리
  • 스카이데일리는 공공성에 기반해 독자가 만들어 가는 언론을 지향합니다. 정기 또는 일반 후원시 맞춤형 뉴스, 독자에게 할당하는 지면 서비스, 동행하는 홍보, 유상증자시 참여기회 제공(법인에 한함)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1
좋아요
0
감동이에요
0
화나요
0
슬퍼요
0
댓글 : 0
방문수(PC&모바일)
오늘(실시간) 125,073 ▶
어제 140,329 ▶
최근 7일 ▶
대한민국 명사들
대면 기회를 가져보세요.
팬클럽 가기
오늘자 스카이데일리



주요 섹션 기사
주소 : 서울시 서초구 방배천로2안길 82(방배동 463-18) 청송빌딩 3,4층 | 전화 : 02-522-6595~6 | 팩스 : 02-522-6597
종합일간지 등록번호 : 서울시 가50131,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시 아01703, 등록일 : 2011년 7월 18일
발행·편집인: 민경두, 편집국장 : 주경준, 사업자 번호 : 214-88-81099 후원계좌 : 158-910019-39504(하나은행)
copyrightⓒ2011, All rights reserved. Contact : skyedaily@skyedaily.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진강
본지는 한국신문윤리위원회의 서약사로서 신문윤리강령을 준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