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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路 동서고금 <59> 팔레스타인
임명신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7-21 00:02:40
‘팔레스타인’이란 단어는 서기 135년 등장한 라틴어 이름에서 유래했다. 로마제국 시절 행정 구역상 유대·갈릴리·사마리아였던 이곳이 유대민족 반란 진압 후 관련 역사를 지우기 위해 ‘시리아 팔레스티나’로 개칭된 것이다. 그보다 1000년 앞서 거기 살던 사람들은 자칭 ‘펠레셋’(히브리어 ‘팔리스팀’)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게 한글판 구약 성서 속의 ‘블레셋’이다. 
 
괴력 영웅 삼손을 미인계로 무너뜨린 데릴라, 소년 다윗이 돌팔매로 쓰러뜨렸다는 골리앗이 블레셋인들이었다. 17~18세기 독일에서 ‘무식·무교양’을 흉볼 때 쓰기 시작한 ‘필리스터(Philister)’라는 표현의 어원 역시 블레셋사람으로, 고급 문인들도 썼을 만큼 일반적 어휘가 됐다. 생업밖에 모르는 채 살아가는 소시민을 한심하게 여기며 생겨난 이 단어는 영적·문화적 존재를 자처하던 독일 지식인들이 다신교 이방 민족인 블레셋인을 상대화시켜 만들어 낸 개념이다. 나중에 나온 영어 단어 ‘필리스틴(philistine·속물)’ 또한 같은 맥락에서 생겨났다.
 
먼 훗날 팔레스타인으로 불리게 된 땅은 636년 아랍에 정복됐고 11세기 십자군 왕국이 들어서기도 했으나 16세기 이래 오스만 제국 시절엔 여기서 다민족이 어울려 살았다. 
 
팔레스타인의 독자적 정체성을 형성시킨 것은 20세기 중반 이래의 불행한 역사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이 아랍 부족들에게 독립국가 수립을 약속하며 대(對)오스만 반란을 고무시켜 놓고, 전쟁 종료 후엔 벨푸어 선언(1917)을 통해 ‘유대 민족의 고향 재건’을 지지했다. 역사가 본격적으로 꼬이기 시작한 것이다.
 
유럽의 반유대주의에 시달리던 유대인들이 고토 귀환을 꿈꾸며 팔레스타인 내의 토지 매입을 추진했는데 대다수 땅 주인들은 아랍 상류층 부재(不在)지주들이어서 졸지에 일자리를 빼앗긴 아랍계 소작인들이 곤경에 처했다. 1947년 당시 팔레스타인 인구 약 197만 명 중 선주민과 신규 정착민 비율은 2:1 정도였다. 각자 나라를 세우고 유대교·이슬람 공통의 성지인 예루살렘을 국제도시로 하자는 유엔의 해법이 선주민들에게 거부된 반면 나라 없는 설움에 사무친 약 61만 명 유대인들은 건국을 강행했다. 1948년 5월14일 이스라엘이 건국을 선언한 이튿날부터 아랍 5개국(이집트·요르단·시리아·레바논·이라크)이 군사 개입했을 때 아랍계 선주민들은 체계적 조직 없이 우왕좌왕하다가 난민으로 전락한다. 
 
각각 요르단과 이집트 땅이었던 서안·가자 지구가 3차 중동전쟁(1967)으로 이스라엘 지배 아래 들어가면서 ‘국가 내 비국가’라는 기막힌 상황이 만들어졌고 1964년 탄생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와 이스라엘은 테러와 보복을 주고받았다.1972년 뮌헨올림픽 이스라엘 선수단 몰살과 이후 모사드가 20여 년간 관련자 전원을 암살한 게 대표적이다. 이스라엘 제거를 목표로 탄생한 PLO지만 1988년 이후엔 ‘1967년 이전 국경선 복원’으로 타협한 상태다. PLO 창설 시 지정된 깃발의 범아랍색(흑·백·녹·적)은 과거 그곳에 존재했던 아랍 왕조들과 1916년 반란의 피를 상징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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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들어 ‘두 국가 해법’이 세계인의 희망을 모았지만 극렬 시온주의자가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를 암살(1995)하면서 무산됐다. 오슬로 협정(1994)으로 팔레스타인은 제한적 자치 상태인데, 2007년 이후 가자지구를 접수한 무장정파 하마스와 서안지구의 자치정부 간에도 대립이 이어졌다. 
 
이제 기대할 것은 도널드 트럼프 1기 때부터 추진된 아브라함 협정밖에 없지 않나 싶다. 이 평화 구상이 큰 진전을 이룰 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 국교정상화 목전에 이를 저지하고자 한 게 2023년 10월7일, 이란을 등에 업은 하마스의 기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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