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무서운 추위로 약속을 연기하자는 내용이다. 이번 주는 맹렬한 한파가 온다고 한다. 창밖에 차가운 바람이 불면 우리의 몸은 본능적으로 움츠러들고 발걸음은 저절로 빨라진다. 겨울은 우리를 안으로, 자신 속으로 밀어 넣는다. 겨울은 휴식과 함께 스스로를 돌보는 계절이다. 겨울이라는 강요된 고독 속에서 우리는 자신과 마주한다.
혹한 속에서는 따뜻함과 풍요와 편안함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추위 속에서 인간은 불을 피우고, 옷을 지어 입고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공동체를 이루었다. 인간의 문화는 추위에 대한 오래된 해답이다. 현생 인류의 선조들이 살아남은 것은 빙하기를 견뎌낸 덕분이다. 그들은 늑대를 길들인 개를 안고 자면서 추위를 버텼다. 식물도 인간처럼 겨울을 나는 법을 안다.
식물에게 겨울은 죽음의 계절처럼 보인다. 잎이 떨어지고 줄기가 마르고 땅 위의 움직임은 고요해진다. 겨울은 식물에게도 쉼을 허락한다. 식물은 성장과 확장을 멈추고 뿌리와 씨앗 속에 에너지를 가둔다. 쉼이 없는 생명은 오래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식물은 한랭한 기간을 거쳐야만 봄에 꽃을 피운다. 겨울을 통과하지 않으면 씨앗과 꽃눈이 깨어나지 않는다. 겨울은 식물을 단련한다. 추위 없이 자란 식물은 연약하고 쉽게 병든다. 낮은 온도는 조직을 치밀하게 만들고 혹독한 추위는 생명의 밀도를 높인다.
겨울에는 식물을 괴롭히는 해충과 곰팡이, 미생물과의 전투도 느슨해진다. 추위 속에서는 과도한 경쟁이 정리된다. 그래서 식물은 항상성을 지킬 수 있다. 눈과 서리는 식물의 보호막이 되어 준다. 눈과 서리는 땅을 덮어주는 이불 역할을 해낸다. 갑작스러운 기온 변화로부터 뿌리를 보호하고, 천천히 저장된 수분은 봄의 자원이 된다. 인간에게나 식물에게나 겨울은 단순한 상실의 계절이 아니다. 겨울의 차가운 공기는 욕망과 상념을 가라앉힌다. 넘쳐나던 쾌락이 사라진 자리에서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걸 알게 된다. 범람했던 거추장스러운 것이 사라지고 본질만 남는다.
추사(秋史)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는 겨울을 잘 드러낸 작품이다. 세한은 ‘논어’에서 비롯된 말인데 ‘혹독한 겨울을 지나고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끝내 시들지 않음을 알 수 있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가장 힘든 때를 버티는 짱짱한 절개를 말한다. 김정희가 제주 유배라는 인생의 겨울에 그린 그림인 세한도에는 눈 덮인 들판, 앙상한 소나무와 잣나무, 그리고 외딴 초가 한 채가 전부이다. 세한도의 겨울은 시련의 시간이며 여백은 견뎌야 하는 길고 긴 외로움을 나타낸다.
잎을 지닌 채 겨울을 나는 것은 나무에게 위험하고 힘든 일이다. 잎과 가지에 눈이 쌓이면 꺾이고 부러질 수 있다. 잎을 지닌 나무의 겨울은 생명을 건 사투의 시간이다. 세한도는 겨울을 견디는 법을 그렸다. 시련은 우리의 선택과 무관하다.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내던지고 겨울을 나지 못하는 소나무와 잣나무의 막중한 책임감을 우리는 이 겨울에 공감할 수 있다. 나무에게나 인간에게나 겨울 추위는 많은 것을 일깨운다. 우리는 어떻게 겨울을 지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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