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면 처마 끝에 제비가 돌아온다. 지난해 떠났던 그 자리에 흙과 짚을 물어 나르며 새로운 둥지를 짓는다. 몇 주 뒤 새끼들이 날아오르면 부모 새는 미련 없이 둥지를 떠난다. 빈 둥지를 지키고 있는 새는 없다.
새들은 인간처럼 ‘빈둥지증후군’을 앓지 않는다. 둥지 짓기는 본능에 충실한 결과이다. 까치는 나뭇가지로 공들여 집을 짓지만 번식기가 끝나면 그 집에 집착하지 않는다. 황제펭귄 수컷은 영하 60도의 혹한에서 두 달을 꼬박 알을 품지만, 새끼가 무리에 합류하는 순간 부자 관계는 자연스럽게 해체된다. 소유도 집착도 외로움도 없다.
한국의 부모들은 어떤가. 수십 년을 자녀 양육에 바치고 막상 자녀가 떠나면 공허함을 호소한다. 감정 자체는 자연스러울 수 있다. 문제는 공허함의 정체다. 긍정심리학의 창시자 마틴 셀리그만은 인간의 진정한 행복을 PERMA 모델로 설명한다. 긍정적 감정(positive emotion), 몰입(engagement), 관계(relationship), 의미(meaning), 성취(achievement)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관계'와 '의미'다.
빈둥지증후군은 PERMA의 다섯 요소를 오직 '부모 역할'에만 걸어둔 탓이다. 최근 한국 사회엔 전혀 다른 풍경도 등장했다. '전업 자녀'의 출현이다.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성인 자녀를 일컫는 이 신조어는, 빈둥지증후군과 정반대 현상으로 보이지만 뿌리가 같다. 둥지를 떠나지 못하는 새끼와 떠나보내지 못하는 어미의 공생이다.
긍정심리학자 에드워드 데시와 리처드 라이언의 자기결정이론은 인간의 동기를 그 뿌리부터 해부한다. 핵심은 세 가지 기본 심리 욕구다. 첫째, 자율성이다. 내 삶의 선택이 외부 압력이 아닌 나의 의지에서 비롯된다는 감각이다. 부모가 진로, 교우관계, 일상의 결정까지 개입하는 환경에서 자란 자녀는 이 감각이 만성적으로 결핍된다. 둘째, 유능감이다. 내가 스스로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다. 부모가 실패를 미리 막아주고 모든 것을 대신 해결해 주면, 자녀는 이 유능감을 경험할 기회를 잃는다. 셋째, 관계성이다. 타인과 진정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으로서, 이것이 순종이나 기대 충족과 엮일 때 관계는 왜곡된다. 그러므로 전업 자녀는 잘못 설계된 둥지의 산물이다.
가족은 운명공동체라는 믿음, 자녀의 성공이 곧 부모의 성취라는 희한한 등식, 희생을 사랑으로 포장해 온 문화. 이 구조 안에서 부모는 자녀가 떠나는 것을 자아의 상실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를 무의식적으로 감지한 자녀는 날개를 펴 날아오르지 못한다.
셀리그만은 ‘번영된 삶(flourishing life)’, 즉 충만한 삶은 부족한 것에 집중하기보다는 강점의 발견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둥지 속 자녀는 스스로 날아오르는 날갯짓을 해야 하고, 빈 둥지에 남겨진 부모는 지속적으로 자기 자신을 재발견해야 한다. 건강한 관계는 서로의 성장을 지지하는 것이고 의미 있는 삶은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다. 제비는 해마다 새 둥지를 짓는다. 당신의 다음 둥지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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