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론
세계가 균열을 드러낼 때가 있다. 도덕적 당위와 비도덕적 현실이 괴리되면서도 세계의 두 얼굴로 엄연히 존재한다는 진실. 이 양면의 진실은 사람의 얼굴을 자못 의미심장하게 보이도록 만든다. 사람의 얼굴이 타자에 대해 요청되는 도덕의 특성을 숙고하게 하는 현실적 이미지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타인들의 얼굴을 직면하면서 자기 얼굴을 통해 타인들의 신성한 절대 불가침적 얼굴과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소통하는 장이 도덕적 사회를 이룬다고 보면, 틀리지는 않을 듯하다. 요점은 타자의 얼굴을 향한 평등한 존대다.
다소 길게 얼굴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바우텔 살레스 감독의 영화 ‘아임 스틸 히어’를 한층 깊고 새롭게 볼 수 있는 영감을 얻기 위함에 있다. ‘아임 스틸 히어’는 타인의 얼굴에 관한 철학에 집중해 분석되고 이해될 때, 영화 속의 얼굴 이미지와 주된 문제의식이 어떤 양상으로 연결되는지 유의미하게 포착될 수 있다.
영화는 독재 정부의 부당한 반인권적 행태로 가장 루벤스를 잃어 짙은 그리움과 쓰라린 아픔을 겪는 아내 마리아와 자식들의 수십 년을 담고 있다. 영화는 퍽 인상적으로 시작한다. 1970년의 브라질 정부가 군사 독재를 일삼는 상황이 자막으로 제시된 후, 마리아가 바닷물에 잠긴 장면에 이어 그녀가 군용 헬리콥터를 올려보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영화의 포인트들을 압축한 장면으로 여겨진다. 자세히 보면, 그녀의 온몸은 바닷물에 잠겼으나 얼굴만 수면 위로 드러난 상태임을 볼 수 있다. 이 상태는 바닷가의 기억을 온몸으로 잊지 못하되, 세상에 얼굴을 드러내 군부 독재의 죄악을 향한 정의로운 견해를 표하려는 마리아와 영화(감독)의 의지가 축약된 상징적 포즈로 새겨진다.
바닷가의 기억은 깨져버린 행복으로 요약된다. 집이 해변에 자리해 모래사장에서 이웃 친구들과 여가를 즐기던 평온했던 일상이 루벤스가 독재 정부 관계자들에게 강제 연행돼 깨져버린다. 심지어 그를 데려간 관계자들은 무장한 데다가, 그를 연행하는 합리적 맥락도 제대로 고지하지 않는다. 그가 사회당 소속 전직 국회의원이고 반정부 인사와 모호하게 연루된 정황이 내비쳐지는 정도가 강제 연행의 명분으로 겨우 추정된다. 연행 이유를 정당한 절차에 따라 설명하지 않는 것은 불법적일뿐더러, 독재 권력으로 타자를 억압하는 비도덕성도 강하게 띤다.
마리아도 비도덕적 처우를 겪는다. 그녀는 남편을 찾으려고 그가 갇혔다는 감금 시설로 간다. 정부 관계자가 그녀를 차에 태우고 가면서 머리에 검은 두건을 쓰게 한다. 이 장면은 문제적이다. 복면을 쓰게 하는 것이 극도의 공포를 유발하는 반인권성을 지니고, 그 과정에서 타당한 설명이나 당사자의 양해를 간청하는 도덕적 언사도 생략돼서 그렇다. 그녀가 두건을 쓰는 순간, 영화는 블랙아웃처럼 검은 화면이 잠시 뜨는 단절적 비약을 거친다. 그 비약 후에 취조실에 와 두건을 벗는 마리아의 얼굴이 다시 나타난다. 이 연출은 얼굴이 세상과 차단되는 환경에서 생이 정상적으로 영위될 수 없고 개인의 존재가 사라짐을 뜻한다.
마리아의 고난은 계속된다. 남편의 안전과 생사가 궁금해서 감금 시설로 왔던 그녀는 졸지에 독방에 일정 기간 유폐되는 처지에 놓인다. 어둠이 짙게 깔린 시설은 수감자들의 얼굴과 온몸에 거대한 두건을 씌우는 억압자가 공간화된 것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비명이 끔찍이 울리는 죽음의 수용소에서도 배려의 희망은 조금이나마 있는지, 마리아를 관리하는 군인이 의외로 그 희망의 맹아로 포착된다. 그는 그녀와 단둘이 있을 때 그녀의 얼굴을 보면서 자신도 군부 정권의 행태에 동의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이 남군은 장훈 감독의 영화 ‘택시운전사(2017)’를 떠올리게 한다. 계엄이 선포된 80년 5월 광주의 참극을 취재하고자 입국한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와 택시기사 김만섭의 사투를 담은 이 영화에는 놀라운 장면이 있다. 군의 검문에 걸린 만섭의 택시 트렁크에서 기자와 만섭의 신원을 확증하는 증거를 발견하나 못 본 척하고 검문에서 무사 통과시키는 한 계엄군이 그 장면의 핵심이다. 이는 불복의 고유한 비판적 사유로써 악에 물들지 않을 수 있는 지적 도덕의 가능성을 알려준다.
이 가능성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마리아의 대사로 명료히 발화된다. 기자는 브라질이 민주화된 현재에 과거 독재를 문제 삼는 일의 무의미함을 그녀에게 질문한다. 이 질문은 독재 군부의 잘못을 문제시하지 않으려는 강경 보수파의 견해를 대변하는 것이리라. 이 질문에 차분하게 명확히 답하는 마리아의 얼굴은 의연하다. 독재 군부의 불법 납치가 남겨진 가족을 끝없이 아프게 하는 범죄이고 비극의 재발을 막으려면 과거 독재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마리아의 주장은 타당하다. 영화가 관객의 판단보다 자기 견해를 먼저 말한다는 한계를 고려해도 말이다.
불복하는 도덕적 주체의 힘은 엔딩의 흑백사진들을 통해 더 선연히 살아난다. 실화 기반의 영화는 엔딩에서 피해자 가족의 웃는 얼굴이 찍힌 실제 사진들을 보여준다. 취재하러 온 이들이 마리아 가족에게 덜 행복한 분위기를 위해 웃지는 말라고 청했을 때, 마리아는 거부하고 미소 짓는 얼굴로 답한다. 가족을 잃은 절망 속에서도 미소 지을 수 있는 희망과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노년에도 남편의 사진을 보고 표정이 미세하게 일그러지는 괴로움. 이 두 진실 모두 마리아의 얼굴에 스며 있다.
영화 ‘아임 스틸 히어’ 줄거리
군부가 독재하는 1970년 브라질, 루벤스와 마리아는 자녀들과 바닷가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정부 관계자들은 돌연 쳐들어와 루벤스를 불법 연행한다. 그것이 영원한 이별이었다. 25년 후, 마리아는 루벤스의 사망 증명서를 받고, 비극의 반복을 막기 위해 과거 군부 독재의 죄악을 기억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2014년, 노년의 마리아는 브라질 정부가 독재 군부의 살인을 밝히고 인정했다는 텔레비전 보도 화면에 나온 루벤스의 사진을 보고, 얼굴이 미세하게 동요한다.
바우텔 살레스 감독 소개
바우텔 살레스가 연출한 다른 작품으로 초기작 ‘이방인의 땅(1995)’은 브라질 대통령이 금융법 개혁으로 모든 예금 계좌를 동결시켜 국가 경제가 혼돈에 빠지고 브라질 청년들이 해외로 떠나는 현실에서 프란치스코 이자기르가 경험하는 아픔과 사랑을 진중히 다룬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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