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으로 넘어가는 축복받은 계절은 새의 날들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오색딱따구리가 신나게 나무 둥지를 파서 집을 짓고, 검고 기름진 깃털을 자랑하는 대륙지빠귀는 새끼 양육에 한창이다. 분주한 숲에 메아리처럼 우아한 소리가 울린다. 뻐꾸기다. 몸집도 크고 울림통도 큰 이 새의 노랫소리는 오케스트라의 첼로 소리를 연상하게 한다.
뻐꾸기는 아주 신중하게 알 낳을 곳을 염탐한다. 자기보다 덩치가 작은 새의 둥지이다. 곧 부모가 될 오목눈이(뱁새) 부부가 안간힘을 다해 엮어놓은 탄탄하고 안락한 둥지를 둘러본다. 뻐꾸기는 이 일을 하려고 1만 킬로미터 이상을 날아왔다. 알의 숫자가 3~4개 정도 되는 둥지를 찾아 몰래 알을 낳으면 뻐꾸기의 번식 및 양육 소임은 모두 끝난다. 애써 둥지를 지을 필요도, 알을 품을 수고도, 하루에도 백번씩 먹이를 나르고 배설물을 치워줄 고생도 필요 없다.
어떤 경우에는 어미 뻐꾸기가 오목눈이 알을 떨어뜨리고 자기 알을 낳기도 한다. 새끼의 경쟁자를 미리 줄여놓는 것이다. 오목눈이는 수상한 알이 있는 걸 알아챘는지 갸우뚱하다가는 이내 알을 품는다. 어미 새는 폭우가 내려도 꿈쩍하지 않는다. 각고의 인내 끝에 새끼가 알에서 깨어난다. 뻐꾸기 새끼다. 기생자인 놈의 유전자는 숙주보다 일찍 알에서 깨어나도록 진화되었다.
오목눈이 어미는 남의 새끼를 먹이느라 바빠진다. 뻐꾸기 새끼는 태어나자마자 오목눈이 알 하나를 밖으로 밀쳐낸다. 다음 날쯤 오목눈이 맏이가 태어나는데 작고 여린 이 아이는 덩치 큰 뻐꾸기 새끼에게 밀려서 둥지 밖으로 떨구어진다. 태어난 지 하루 만에 기생자인 침입자에게 무참히 살해당한 것이다. 이 모든 일이 어미가 먹을 것을 사냥하러 간 사이에 벌어진다.
결국 오목눈이 둥지에는 뻐꾸기 새끼만 남는다. 오목눈이 부부는 살해자인 침입자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자기보다 덩치가 커진 뻐꾸기 새끼의 오렌지빛 입안으로 쉴 새 없이 먹을 것을 대령한다. 심지어는 뱀이나 맹금류가 새끼를 노리면 자신들이 희생하면서까지 ‘남의 새끼’를 살린다. 이러한 뻐꾸기의 ‘탁란’ 행위는 참으로 끔찍하다. 남의 둥지에 자기 새끼를 몰래 맡기는 것도 모자라 숙주의 적자들을 모두 해치운다.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슨은 이러한 뻐꾸기의 행위를 ‘확장된 표현형’이라고 점잖게 이름 지어 주었다. 인간사회에도 이런 일이 가능할 것이다. 만약 인간에게 최고의 불명예가 있다면 그것은 ‘이 뻐꾸기 같은 놈!’이란 욕을 듣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게 찾아온 이 기생자는 나와 나의 후대를 철저히 파괴한다. 나의 ‘뻐꾸기’는 누구, 혹은 무엇일까? 인생길에서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외부에서 나를 해치는 실질적 위협일 수도 내 안에서 자라난 끔찍한 기생자일 수도 있다.
어떤 오목눈이 엄마는 뻐꾸기의 탁란을 눈치챈다. 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기생자의 알, 불행의 씨앗을 먹어 치운다. 뻐꾸기 탁란의 성공률은 생각보다 높지 않다고 한다. 오목눈이가 모두 바보는 아니므로. 내 인생의 기생자를 알아내고 숙주 노릇을 멈추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조류보다 똑똑한 인간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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