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사고가 터진 뒤 나오는 조직의 해명은 늘 비슷하다. “여러 단계의 검토를 거쳤다” “내부 승인 절차에 따랐다” “담당 부서의 확인이 있었다” 모두가 봤다고 믿는 순간, 실제로는 아무도 보지 못한다.
대리, 과장, 팀장, 임원, 대표이사로 이어지는 수직적 의사결정은 실수를 줄이기 위해 고안된 구조다. 원래는 단계가 많아질수록 시야도 넓어지고 판단도 다양해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역설적이다. 사인이 늘어날수록 조직은 안도감을 느끼고, 리스크를 걸러내는 그물망은 오히려 더 헐거워진다. “윗선에서 알아서 걸러 주시겠지”와 “실무진이 충분히 검토했겠지”라는 기대가 맞물리기 때문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믿음의 관성’과 ‘단계의 관성’이 작동한다. 이때 결재 라인은 검증의 밀도를 높이기보다 눈을 가리는 가림막을 더하는 것이 된다. 시선은 분산되고 책임은 모호해지며 긴장감도 떨어진다.
최근 스타벅스코리아의 텀블러 이벤트 논란은 이러한 다단계 결정의 함정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다. 스타벅스는 5월18일 ‘책상에 탁’ ‘탱크데이’라는 홍보물을 공개했고, 5·18과 박종철 열사 사건을 연상시킨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후 그룹 총수가 공식 사과를 했지만, 정작 이 이벤트가 기획자에서 팀장, 담당 임원, 본부장, 대표이사까지 5단계 거대 결재 시스템을 너무나 ‘평범하게' 통과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왜 이렇게 밀도 있는 검증 과정에서 그 누구도 이 문구의 파괴적 위험성을 감지하지 못했을까?
흥미로운 점은 이처럼 내부에서는 무감각하게 통과된 사안이, 조직 외부에서는 반대로 거대한 서사로 확장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부에서는 이벤트 시간과 할인율, 텀블러 용량 같은 숫자들까지 특정 정치적 암호로 해석하고 있다.
움베르토 에코는 소설 <푸코의 진자>에서 인간이 우연한 기호와 숫자 속에서도 거대한 서사를 만들어 내는 욕망을 풍자했다. 사람은 우연보다 의도를 먼저 상상하고, 무관한 조각이 연결되면 하나의 음모론이 만들어진다.
이런 식이면 세상에 의심받지 않을 숫자나 문구는 없다. 사태의 본질은 숫자 몇 개의 숨은 암호가 아니라, 여러 단계를 거치는 동안 누구도 ‘그 표현’의 위험성을 짚어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결재 라인이 길어지면 책임은 파편화되고 서명은 ‘책임의 증명’이 아니라 ‘무책임의 면죄부’가 될 수 있다. 리스크관리는 결재 단계에 비례하지 않는다. 복잡한 관료적 결재는 대중의 사회적 감수성을 따라잡지 못하는 '조직적 둔감함'을 초래한다. 지금 소비자들은 기술을 넘어 사회적 가치와 역사적 맥락까지 평가한다.
리스크를 방어력은 중앙이 아니라 현장의 실질적인 ‘책임과 감각’에서 나온다. 형식적 결재보다는 각 단계가 실질적 ‘검문소’이자 다른 관점이 더해지는 관문이 되도록 의사결정 구조를 재설계해야 한다.
모두의 책임은 그 누구의 책임도 아니다. 결재 도장의 개수로 안전을 담보하던 시대는 끝났다. 결재 라인이 길다는 것은 오히려 아무도 제대로 보지 않는 컨베이어 벨트가 될 수 있다. 지금 당신 조직의 결재 라인은 방파제인가, 아니면 책임을 미루는 무책임의 벨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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