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6-09-28 20:30
뉴스 > 연재기획
유교, 화합보다 수직주의 앞세운 강압적 질서
박찬희의 홍익인간(弘益人間) 강론…기독교·불교·유교에 대한 비판 <3>유학
박찬희 필진페이지 + 입력 2015-01-17 18:38:31
 ▲ 박찬희 칼럼니스트 ⓒ스카이데일리
[전 칼럼에 이어] ◉ 儒學(유학)은 무엇인가.
 
儒學(유학)은 修身齊家治國平天下(수신제가치국평천하)가 궁극의 목표이고 완성이다. 그러나 유학은 앞에서 탐구한 왕권전제주의를 바탕으로 확립한 학문이다. 즉, 垂直的(수직적)인 사회질서를 세운 것이다.
 
필자는 2대 장남으로 할아버지의 교육을 20대 중반까지 받았고 같이 살았으니까 유교적 사회 질서의 환경에서 자랐다.
 
할아버지 또는 할아버지 세대의 어르신들로부터 배우기를 자식은 부모의 명령에 절대 복종만이 허용되고, 부모가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해야 된다는 교육과 선생님의 그림자도 밝아서는 안 된다는 교육을 철저하게 받으며 성인이 됐다.
 
어르신들로부터 배우기를 甲과 乙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하루는 두 친구가 ‘누가 자식교육을 잘 시켰는가’ 평가를 해 보자고 약속하고 먼저 甲의 집에 가서 甲이 친구가 보는 앞에서 그 자식에게 “아무개야 지붕에 사다리를 갖다 걸쳐라”고 하니까 자식은 “예 분부대로 하겠습니다”사다리를 지붕에 걸쳐놓으니까 이번에는 “외양간에 가서 소를 몰고 지붕으로 올라가거라”고 하니까 자식은 “예 분부대로 하겠습니다”라면서 소를 몰고 나서는 것이었다.
 
그래서 甲이 “애야 이제 됐다. 그만 거두 거라” 했고 이를 지켜보던 乙은 甲에게 “자네 자식교육 잘 시켰네”라고 칭찬을 했고 이번에는 乙의 집에 가서 앞의 甲과 마찬가지로 乙도 그 아들에게 사다리를 지붕에 걸치라고 하니까 시키는 대로 사다리를 지붕에 걸쳤는데, 소를 몰고 지붕으로 올라가라고 하니까 “아버지 갑자기 어떻게 되셨습니까? 소가 어떻게 지붕으로 올라간단 말입니까?” 라고 대꾸하니 이를 지켜보던 甲은 乙에게 “자네는 자식 교육을 잘못 시켰네”했다는 것이다.
 
광고
필자는 甲과 같은 교육을 받았고, 그 시대까지는 그 것이 사회의 통념이었으며 질서였다.
 
※ 독자여러분 이 두 친구 중에 甲과 乙의 자식교육이 누가 옳습니까? 또한 갑의 자식과 을의 자식 중에 누가 더 똑똑합니까? 또는 누가 더 효자입니까? 판단은 독자들의 몫입니다.
 
우리의 홍익인간사상에서는 弘益人間 在世理化다. 在世理化는 이치대로 다스린다는 뜻이다. 즉, 소를 지붕으로 몰고 올라가라는 명령이 이치에 맞는가를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삼국지의 한 대목을 소개하자면.
 
유비에게는 아들 유선이 있었다. 삼국지의 주인공인 유비의 아들이지만 유선은 그의 인물이 아버지에 못 미쳐 유비가 죽으면서 제갈공명에게 당부하기를 “군사 내 아들 유선은 촉을 지킬 그릇이 못되니 군사께서 촉을 접수하시어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루어 주시오”라고 유언을 하고 죽었고 그 지혜롭고 현명했던 제갈공명은 君臣(군신)의 義理(의리)를 져버릴 수 없다고 유선을 군주로 모시고 충성을 다했다.
 
공명이 군사를 이끌고 위나라와의 전투를 하는데 전세는 촉이 이기고 있어서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 위나라가 공작을 하기를 촉나라에 유언비어를 퍼트린다. “공명이 이번 전투에서 승리를 하면 유선을 몰아내고 촉의 군주가 되려고 한다”고 퍼트려 놓으니까 유선의 귀에도 그 말이 전해진다. 유선은 당황해 아무런 명분과 이유도 없이 공명에게 회군명령을 하달한다.
 
전장에서는 공명의 참모들이 이제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우리의 승리로 전쟁을 끝낼 수 있으니까 회군을 잠시 뒤로 미루고 전쟁을 승리로 끝 낸 후에 회군을 하자고 간언을 하나 공명은 군주의 명령은 곧 법이므로 이를 거역 할 수 없다면서, 다 이겨가던 전쟁을 중단하고 회군을 한다.
 
그 결과로 촉은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루지 못하고 공명의 사후에 위나라가 삼국통일을 한다.
 
이 대목을 분석해보면 그 지혜롭고 현명한 제갈공명이었지만 그 시대상황이 전후좌우가 모두 왕권전제주의의 환경이기 때문에 아무리 유비가 공명에게 촉을 접수해 군주가 되어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루어 달라고 부탁했어도 어떻게 평화적으로 대를 이은 유선을 군주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고 공명자신이 군주자리에 오를 방법을 찾지 못하였던 것이다.
 
즉, 우리의 한웅시대 배달과 단군시대 고조선의 홍익화백주의로서 임금을 선출 추대로 모시는 정치제도는 꿈도 꿀 수 없었기에 공명이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루지 못한 것이다.
 
필자가 왜 이런 일화를 소개하느냐 하면 공자가 儒學(유학)을 정립해 세울 당시의 사회 환경과 풍토가 제갈공명처럼 전후좌우가 모두 왕권전제주의로서 공자도 그 이상의 정치제도는 전혀 알 수도, 상상할 수도 없었다.
 
이때의 시회는 왕권 전제주의로서 왕은 나라의 주인이고 백성의 충성은 오로지 임금에게 바치는 것이 충성이며, 효는 자식이 어버이에게 바치는 것이 효였다.
 
그러나 우리의 홍익인간사상에서는 九誓(구서)에서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이는 孝于家(효우가)라고 한다. 가족식구 모두가 가정을 위해 孝(효) 하여야 한다는 뜻으로 부모가 자식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고 서로 어울리는 協助者(협조자)인 것이다.
 
또 忠于國(충우국)이 있다. 영도자도 나라에 忠誠(충성)을 한다는 뜻으로 임금은 나라의 주인이 아니라 백성들에게 봉사하는 奉仕者(봉사자)인 것이다.
 
無怨逆之患 親疎無別 上下無等 男女平權
무원역지환 친소무별 상하무등 남녀평권
老少分役... 自成和樂...一無憾且怫異者
노소분역 자성화락 일무감차불이자
 
남에게 원한 사는 일을 하지 않아 보복을 당하는 우환이 없었고, 친하고 친하지 않음이 없고, 위와 아래로 나누는 등급-계급도 없었다. 남녀는 평등하고, 노인과 젊은이는 그에 맞는 일을 하고, 스스로 성취해 즐거움이 있으며, 한 사람도 섭섭하고 답답하지 않았다.
 
이에 반해 우리의 역사에서도 보면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 것을 충신이라고 했다. 그래서 고려의 충신은 근세조성에서는 임금을 섬길 수도 없으며 섬기지도 않았다. 근세조선의 악습들을 보자.
 
소학에 나오는 ◆ 七去之惡(칠거지악)- 不順舅姑(불순구고), 無子(무자), 淫行(음행), 嫉妬(질투), 惡嫉(악질), 口舌(구설), 盜竊(도절) 등 일곱 가지 일을 저지르면 아내를 내 쫓을 수 있었고, ◆ 三從之義(삼종지의)- 어려서는 아버지를, 시집가서는 남편을, 남편이 죽으면 아들을 쫓음을 말한다.(삼종지탁, 삼종의탁) 이렇게 여자는 자립정신이 없는 하찮은 인간이고, ◆ 양반과 상민의 제도로서 양반은 상민을 노비로 부릴 수 있었으며 상민위에 군림했다.
 
한 일화를 소개하면 상민이 양반을 등에 업고 냇물을 건너가는데 등에 업힌 양반이 “내가 자네에게 말을 놓네” 하니까 업고 가던 상민도 “그럼 나도 놓네”라고 놓으니까 양반은 물에 주저앉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儒學(유학)은 왕권 전제주의의 바탕위에 세워진 수직적인 政治學(정치학)이다. 修身齊家治國平天下(수신제가치국평천하). 이 유학의 궁극 목표도 修身齊家(수신제가)까지는 일반인들에게 적용이 되는 말이다. 하지만 이것도 家庭(가정)의 家長(가장)에게나 적용이 되는 말이다. 治國(치국)은 覇權(패권)을 잡아야 치국을 할 수 있으므로 패권을 잡기 위해서는 선출 추대의 방식을 모르므로 오로지 물리력에 의한 쟁취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성계가 고려를 뒤엎고 근세조선을 세우는 것이 유학의 학문에서는 정당화 될 수 있었고, 삼국지의 제갈공명은 유비의 유언인 유선을 군주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고 자신이 군주가 되는 방법을 모르므로 공명이 유비의 유언을 지킬 수 없었다.
 
공자는 春秋(춘추)의 말기에 태어난 사람으로 중국의 역사에서 ‘春秋戰國(춘추전국)시대’ 하면 우리가 이를 낭만적으로 표현해 群雄割據(군웅할거)의 시대라고 하지만, 영웅호걸들의 무리들은 광활한 중국의 영토를 놓고 마치 바둑판에서 땅 따먹기 하듯이 각축장을 버리던 때였다.
 
春秋戰國(춘추전국)을 글자대로 풀이하면 ‘봄과 가을에 국가 간에 전쟁을 했다’라고 할 수 있지만 좀 더 깊은 의미는 봄과 가을 사이에 나라의 주인이 바뀐다는 뜻 일수도 있다.
 
이렇게 영웅, 호걸들은 호쾌한 나래를 펼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 밑의 백성들은 그 시대에 태어났던 것이 얼마나 불행이었겠는가. 백성들의 목숨은 파리 목숨이었을 것이고, 비참한 생활을 비켜가긴 어려웠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역사를 마치 소설책 보듯이 승자의 편에 서서 즐기고 있는데 그 당시 패자의, 다시 말하면 영웅호걸들의 도구가 돼 비참하게 죽어간 인명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에서 ‘람보(실베스타 스텔론)’는 수많은 역경을 딛고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죽이는데 그 승자 ‘람보’에만 관심을 집중해 박수갈채를 보내면서 람보의 총탄에 비참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에게는 동정을 표현하지 않는다. 즉, 그 장면을 보는 시청자는 자신이 람보가 된 것으로 착각을 하는 것이다. 이 같이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도 자신을 승자로 착각하고 역사를 즐기는 것이다.
 
우리의 홍익인간사상에서는 ‘너와 나 그’ 까지를 배려하는 정신이 아닌가.
 
그 시대 그 장면에서 비참하게 죽어간 또는 죽는 사람들이 바로 ‘너와 그’인 것이다. 또는 ‘나(我)’일 수도 있다. 이러한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오늘날 지구촌 인류는 인간의 本性(본성)이 마비돼 람보 같은 영화를 만들어 내고 그 문화에 심취된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이 우리에게 가르친 홍익정신을 되살리지 않고는 앞으로 미래의 인류는 살아남을 수 없다.
 
이러한 환경을 목도한 공자는 중국 역사에서 가장 태평성대를 누렸다는 夏(하), 殷(은), 周(주) 三代 堯(요), 舜(순), 禹(우), 湯(탕), 文武(문무), 周公(주공)의 문화를 계승해 孔子(공자; BC 551~479)에 이르러 詩經(시경), 書經(서경), 易經(역경), 禮經(예경), 春秋(춘추) 오경을 편찬했다. 공자는 鯉(리)를 낳았고 鯉는 子思(자사)를 낳았는데 子思가 中庸(중용)을 편찬했다.
 
태평성대를 이룩했다는 夏(하), 殷(은), 周(주) 삼대까지는 중국도 홍익정신에 의한 통치였던 것이다.
 
송호수 박사는 그의 저서에서 堯(요)와 舜(순) 임금이 우리의 한웅의 배달 시대부터 단군의 조선 시대까지 1500여년을 살다 가신 자부선인으로부터 수학했다고 했다.
 
“옛적에 黃帝가 있었는데 동으로 청구에 이르러 풍산을 지나다가 자부선생을 뵈옵고, ‘三皇內文’을 받아 ‘萬神’을 해소하다”라고 돼 있다. 또 태백일사에서는 이르기를 자부선생이 칠회제신의 역을 짓고 삼황내문을 천폐께 올리니 천왕이 치하하여 청궁을 지어 그곳에 살게 했더니 共工(공공)씨와 황제 헌훤 씨와 창힐 씨 등이 모두 와서 배웠다라고 했다. 공공씨나 헌훤씨나 창힐씨가 자부선생이 기거하는 동방의 삼청궁에 와서 수학했고 요와 순도 삼청궁에 와서 수학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자의 시대에는 이미 그 때의 이념과 정신은 사라지고 춘추전국시대로서 왕권전제주의로서 각축장을 벌리던 시대였음으로 그 혼탁 현상을 바로 잡기 위해 옛 조상들의 문화를 계승하고 다시 바로 세우고자 했으나 공자의 학문이 역부족이었던지 아니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시대가 되어서인지, 또한 인간의 본성을 되살리지 못하고 그의 垂直的(수직적)인 사회질서는 결국 실패한 것이다. 즉, 중국은 공자 이후로 요,순 시대를 재현하지 못했다.
 
지금의 중국은 貪慾(탐욕)을 加重(가중)시키는 사회질서가 되어 고구려가 중국의 역사였다고 하는 소위 ‘동북공정’의 탐욕으로 치닫고 있다.중국은 이 탐욕스러운 세계관으로는 만족을 취할 수 없고, 탐욕은 탐욕을 낳을 뿐이므로 終局(종국)에는 좌절과 실패만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過猶不及과유불급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이조에서 儒學(유학)의 사회질서를 구현하다가 한민족의 역사에 가장 치욕스런 일제 35년의 역사를 초래했고 그 후유증으로 우리의 정신을 잃고 사대주의 늪에서 헤매고 있다.
 
儒學(유학)은, 다시 말하면 孔子(공자)는 학문을 세운 성인으로서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왕권전제주의의 틀을 벗어날 수 없는 한계를 안고 태어난 학문이라 성공을 거둘 수 없었다.
 
‘홍익인간사상’은 이렇게 우리 ‘한’민족만이 그 정통을 이어오고 있으며, ‘한’민족에게는 홍익정신의 유전자가 흐르고 있음으로 이를 복원해 재현할 수 있다. 홍익정신이 아니고 현 지구상의 어떠한 가르침도 人類(인류)의 本性(본성)을 되살려 人類平和(인류평화)를 이룩할 가르침은 없다.
 
세계의 어느 석학이라도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의 어느 지도자라도 진정 인류평화를 걱정하고 人類愛精神(인류애정신)으로 고민을 한다면 이 필자와 같이 고민도 좋고 아니면 論爭(논쟁)도 좋다. 누구든지 필자와 맞서도 좋고 동지가 돼도 좋다.
 
우리 조상들에게는 정신문화가 학문으로는 ‘홍익인간사상’이 있고 自修鍊(자수련)으로는 仙道(선도)가 있고 信仰(신앙)으로는 巫俗(무속) 샤머니즘이 있다.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와 우리의 巫俗信仰(무속신앙)을 迷信(미신)으로 치부하고 배척 했는데, 우리의 무속신앙은 바로 崇祖思想(숭조사상)의 실천이다.
 
세계에서 이렇게 완벽하게 정신문화의 유산을 갖고 있는 민족이 있는가. 위대한 조상의 자손인 ‘한’민족은 이제 잠에서 깨어나야 하고 깨어날 시기가 도래했다.
후원하기
  • 정기 후원
  • 일반 후원
  • 무통장입금: 하나은행 158-910019-39504 스카이데일리
  • 스카이데일리는 공공성에 기반해 독자가 만들어 가는 언론을 지향합니다. 정기 또는 일반 후원시 맞춤형 뉴스, 독자에게 할당하는 지면 서비스, 동행하는 홍보, 유상증자시 참여기회 제공(법인에 한함)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0
좋아요
0
감동이에요
0
화나요
0
슬퍼요
0
댓글 : 0
방문수(PC&모바일)
오늘(실시간) 128,824 ▶
어제 140,329 ▶
최근 7일 ▶
대한민국 명사들
대면 기회를 가져보세요.
팬클럽 가기
오늘자 스카이데일리



주요 섹션 기사
주소 : 서울시 서초구 방배천로2안길 82(방배동 463-18) 청송빌딩 3,4층 | 전화 : 02-522-6595~6 | 팩스 : 02-522-6597
종합일간지 등록번호 : 서울시 가50131,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시 아01703, 등록일 : 2011년 7월 18일
발행·편집인: 민경두, 편집국장 : 주경준, 사업자 번호 : 214-88-81099 후원계좌 : 158-910019-39504(하나은행)
copyrightⓒ2011, All rights reserved. Contact : skyedaily@skyedaily.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진강
본지는 한국신문윤리위원회의 서약사로서 신문윤리강령을 준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