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중고생 69%가 6·25를 '북침'이라 답한 여론조사가 큰 논란이 됐다. 그러나 설문을 바꿔 '누가 쳐들어왔냐'고 묻자 거의 모두가 북한이라 답했다. 정상이다. '북침'은, 북쪽에서 부는 바람이 '북풍'인 것처럼 방향의 출처로 유추한 오답이었다. '남침'은 기성세대에겐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익숙한 표현이지만, 젊은 세대의 직관과는 어긋나는 면이 있다.
76년 전 오늘 북괴는 남침했다. 당시 북한 인민군 주력은 마오쩌둥의 팔로군과 함께 일제·국민당군과 싸웠던 조선족 베테랑들이었다. 인민군 21개 연대 중 10개가 이들을 주축으로 꾸려졌다. 전쟁 사흘 만인 6월28일 중앙청을 점령한 4사단 18연대도 만주 출신자들이었다. 이들은 낙동강 방어선까지 국군을 몰아붙인 핵심 전력이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북진해 통일이 눈앞에 보였을 때, 중공군이 압록강을 건너 쳐들어왔다. '1·4 후퇴'로 서울이 재함락됐다. 연인원 최대 300만 명이 투입된 중공군이 사실상 주적이었다. 휴전 협상 전 백마고지 등 모든 고지전 상대도 인민군이 아닌 중공군이었다. 6·25 중공군 전사자는 14만 8600명(미군 3만 3686명)이다.
중국은 한국전 파병에 대해 사과한 적 없다. 그 반대다. 10년 전 중국에서 개봉한 영화 '나의 전쟁(我的戰爭)' 예고편은 서울을 찾은 중국 노인들이 "과거 붉은 기를 들고 한성에 왔었다"며 참전 구호 '항미원조 보가위국(抗美援朝 保家衛國: 미국에 맞서 북한을 돕고 가정과 나라를 지킨다)'을 외치는 장면으로 끝난다. 만약 일본인들이 대학살극을 벌였던 난징에서, "과거 욱일기를 들고 난징에 왔었다"며 '덴노헤이카 반자이(天皇陛下萬歲 : 천황폐하만세)'를 외치는 장면을 찍었다면 중국인들은 어땠을까.
6·25 후에도 중국은 초한전(超限戰), 즉 외교·경제·정보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마오쩌둥이 '마법의 무기'라 칭한 통일전선공작, 즉 중국의 대외 영향력 확대 공작 중이다. 시진핑 집권 후 통일전선 관련 예산을 100억 달러(약 15조 원)로 늘리고 요원도 4만 명 보강했다. 세계 각국에 통전관이 파견돼 있고 주한중국대사관에도 있다.
이들의 흔적은 곳곳에 있다. 2018년 중앙선관위는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민주주의와 리더십' 제하 시리즈 첫 케이스로 중국 통일전선공작 업무 총책 왕후닝을 소개했다. 헌법기관인 선관위가 중국 공산당 간부를 소개한 것은 결코 상식적이지 않다. 그것이 작금의 선관위 파동과 무관할까. 또 송파나루에 위치했던 중식당 '동방명주'는 중국 통전부 산하 해외화교센터(OCSC) 소속인데, 이곳에 여야 중견 정치인들이 풀 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했다.
오죽하면 미 상하 양원 군사위가 각각 자국 국방장관에게 한국 내 중국 공산당의 악의적 영향력을 평가, 보고하라는 과제를 줬을까. 6·25는 휴전됐어도 중공의 공략은 현재 진행형이다. 일본과 독일이 자국 정보기관을 강화하는 사이, 초한전·통전 공작에 맞서야 할 우리 국정원은 오히려 형해화했다. 6·25 발발 76주년, 총성 없는 전쟁에 우리는 무방비 아닌가, 긴급 점검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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