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번을 잘해도, 한 번 못 하면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데뷔 29년차 박경림의 말이다. 영화 시사회나 제작발표회 무대에서 톱스타들과 호흡해 온 대표적인 MC다. 그는 올해도 ‘올해의 브랜드 대상’ MC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며 4년 연속 정상의 자리를 지켰다. 연속된 '4승'으로 충분히 성취를 확인하고 만끽할 법도 한데, 정작 그는 칭찬을 “되도록 깊게 새겨듣지 않으려 한다”라고 잘라 말했다. 좋은 평가에 취하기보다 자신이 서야 할 다음 무대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다.
역사에는 이와 정반대의 길을 걸었던 인물이 있다. ‘사기’의 항우다. 거병 후 뛰어난 군사적 천재성으로 연전연승을 거둔 그는 한나라 56만 대군을 단 3만 병력으로 대파한 팽성 전투에서 정점을 찍었다. ‘사기’에서 그는 “몸소 싸운 것이 70여 전투”였으며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압도적인 ‘70승’을 거둔 그도 해하전투에서 단 한 번 패했다. 그리고 그 패배는 그의 마지막이 됐다. 아마도 거듭된 승리가 역설적으로 패배의 리스크를 감지할 감각을 마비시키고 교만의 씨앗을 틔운 결과였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손자병법의 ‘백전불태(百戰不殆)’가 떠오른다. 손무는 ‘백전백승’을 말하지 않았다. “知彼知己 百戰不殆 (지피지기 백전불태).”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고 했다. 승리의 횟수보다 중요한 것은, 승부가 거듭되어도 위태로운 상황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적 의미로는 ‘지속 가능성’이다. 승리를 만드는 기술보다, 이긴 뒤에도 자만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는 힘이다. 항우에게는 70번의 승리가 넘쳤지만, 승리 이후를 바라보는 시선이 없었고, 그렇기에 단 한 번의 시련에 허망하게 무너졌다.
방송인 박경림의 29년을 돌아보면, 그가 보여주는 태도에서 ‘불태(不殆)’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수많은 톱스타와 호흡하고 꾸준히 성과를 내면서도, 그는 매일 자신의 부족함을 살피며 무대 뒤에서 다음 무대를 준비한다. 현재의 성공이 다음 무대의 성공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는 듯하다. 화려한 조명 뒤에서 담담하게 이어지는 그의 일상은, 이긴 뒤에도 승리의 여운에 함몰되지 않는 절제된 힘을 보여준다.
통상 잘해 왔다는 기억이 쌓일수록 “이번에도 잘되겠지”라는 막연한 확신이 굳어지고, 거듭되는 성공은 역설적으로 방심과 교만을 잉태하는 씨앗이 된다. ‘불태(不殆)’는 단순히 이기기 위한 승리 전략이 아니다. 그렇다고 패배를 염두에 둔 소극적 전략도 아니다. 이긴 뒤에도 그 승리의 여운을 온전히 지속시키는 힘이다. 승리의 환호 뒤에 숨겨진 위험을 살피는 조심성, 그것이 바로 ‘불태’의 본질이다.
성공하고 오래 살아남는 사람들의 모습은 대체로 거창하지 않다. 이미 잘하고 있어도 다음을 고민하고, 칭찬을 받아도 다시 매일의 루틴으로 돌아간다. 백전백승이 지나간 과거의 성과를 기록한 훈장이라면, 백전불태는 아직 오지 않은 승부를 맞이하는 겸손한 태도다. 승리는 손뼉 치며 끝났다는 신호가 아니다. 또 다른 승부가 시작됐다는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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