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우순 의약전문 칼럼니스트(한국제약협회 보험정책실장)
판매자 가격표시제는 약국이 마음대로 일반의약품 판매 가격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이처럼 일반의약품 가격이 약국 간의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결정되면, 약값이 지속적으로 하향 조정되고 그만큼 소비자 부담이 감소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반면 ‘구입가 미만 판매 금지’ 조항은 판매자 가격표시제의 취지와는 반대로 저가 할인판매를 못하도록 제한하는 규정이다. 이 점에서 판매자 가격표시제의 근본 취지인 시장경쟁을 더욱 촉진하려면 ‘구입가 미만 판매 금지’조항을 삭제해 저가 할인판매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견 설득력을 갖는다.
규정 폐지의 폭발력 약국시장에 한정되지 않아
정부는 의약품의 시장 실패와 공적 기능을 앞세워 규제와 시장개입을 합리화 해 왔다. 이런 마당에 일반의약품 가격을 시장경쟁에 의해 조정되도록 맡기면 경쟁의 순기능이 나타나리라는 것은 위험천만한 예측이다.
가장 우려스런 대목은 ‘구입가 미만 판매행위 금지’ 조항 폐지로 시장경쟁이 일어났을 때이다. 시장경쟁의 순기능은 고사하고 부작용만 양산할 것이다. 약국시장의 특성상 대형 문전약국 몇 곳을 빼고는 대부분의 약국이 공급자인 제약회사에 구매력을 행사하기 어렵다. 구입가격 자체를 낮춰야 경쟁 약국보다 싸게 판매할 수 있는데 이를 실행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처럼 구입가격을 낮출 수 없는 상황에서 약국간 가격경쟁을 조장하면 마진을 포기하는 출혈경쟁이 야기될 뿐이다.
‘구입가 미만 판매행위 금지’ 조항은 구입가 이상에서 자유로운 가격경쟁을 촉진하되 약국간 출혈경쟁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규제 장치다. 특히 이 규제 조항의 목적은 신규 약국의 시장진입 억제나 경쟁 제한에 있지 않고 명백히 소비자 보호에 기반하고 있다.
가격경쟁은 곧 머니게임이다. 대형약국의 공세에 소형약국이 배겨날 수 없다. 가뜩이나 동네약국의 폐문과 문전약국으로의 쏠림현상이 심각한 상황이다. 약국 간 무한경쟁에서 동네약국이 배겨나지 못해 의료전달체계가 무너지면 소비자 불편만 커진다. 동네약국에서 500원에 살 수 있는 해열제나 소화제를 400원에 사기위해 멀리 있는 문전약국으로 달려갈 사람은 없다. 열이 나고 배가 아프니 그럴 상황도 못된다. 교통비 등을 감안하면 소비자에게 돌아오는 이득도 없다.
도매업소의 출혈경쟁으로 산업기반 뒤흔들 수도
‘구입가 미만 판매행위 금지’ 조항 존폐여부가 미칠 영향은 일반의약품 시장에 국한되지 않는다. 전문의약품을 취급하는 도매업소 역시 이 규정의 적용을 받기 때문이다. 전문의약품 입찰 시장은 이미 1원 낙찰이라는 경쟁의 극단, 즉 무경쟁의 상황까지 와 있다. 최저가 입찰제와 대형병원의 구매력, 정부의 저가구매 장려금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이러한 상황에서 도매업소에 적용되는 ‘구입가 미만 판매행위 금지’ 조항마저 폐지된다면 결과는 뻔하다. 1원 낙찰과 같은 비정상 입찰품목이 폭증하고, 1원에 구입해 1원에 판 도매업소의 도도매 거래나 교품 같은 또 다른 비정상 거래 역시 급증할 것이다. 이러한 시장의 왜곡으로 유통 단계가 축소되기는커녕 늘어날 것이고, 유통 경로 역시 파악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질 것이다. 유통업의 구조조정을 기대하기도 전에 경쟁도매업소가 사라질 때까지 출혈경쟁만 난무할 것이다.
이러한 폐해는 오롯이 제약산업에 전가될 것이다. 도매업소를 상대로 재판매유지행위를 할 수 없는 제약회사들은 도매업소의 적가낙찰에 대응할 무기가 아무것도 없다. 직거래가 답일 수 있으나 병원이 도매상의 저가공급 제의를 마다하고 제약회사의 직거래 요구를 받아들일 리 만무하다. 게다가 입찰시장에서는 구조적으로 직거래가 불가능하다. 도매업소가 상한금액이 100원인 의약품을 90원에 구입해 50원에 파는 행위가 비정상이 아니라 정상이라고 규정하는 순간 제약산업의 내일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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