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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울고 있는 한양도성과 ‘완벽귀조(完璧歸趙)’
김종우 필진페이지 + 입력 2013-01-23 12:34:41
 ▲ 김종우(자유기고가)
조선시대 실학자 유득공은 경도잡지(京都雜誌)에 이렇게 적고 있다.
 
“서울 성(城)의 주위 40리를 하루 동안에 두루 돌아다니고 성 안팎의 꽃과 버들을 다 본 사람을 제일로 쳤다. 그리하여 꼭두새벽에 오르기 시작하여 해질 무렵에 다 마친다. 그러나 산길이 험해 포기하고 돌아오는 사람도 있었다”라고.
 
또 그의 아들인 유본예는 한경지략(漢京識略)에 “봄이 되면 풍경이 볼만하여 도성(都城) 사람들의 봄놀이 장소가 되었다. 성 동쪽에는 무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도성 둘레는 대략 40리가 된다. 봄과 여름 사이에 성 안 사람들이 짝을 지어 성 둘레를 따라 한 바퀴 돌면서 성 안팎의 경치를 구경하는 것이 ‘순성(巡城)’으로 한 바퀴 돌면 하루해가 걸린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아울러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였던 매일신보(每日申報)는 “순성(巡城)은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하루 만에 마쳐야 효험이 있다. 종로의 상인들은 자기 상점의 운수를 빌기 휘해 남몰래 순성을 한 바퀴 돌기도 했다”고 기사화시키기도 했다.
 
모두(冒頭)에 이게 무슨 내용일까?
 
애독자들이 품을 궁금증에 대한 정답은 일단 뒤로 미뤄놓고 필자, 최근에 느낀 몇 가지 내용을 적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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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그리하면 많은 애독자들은 ‘아~ 그 이야기였구나’라며 다시금 읽어보지 않을까 싶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한양도성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주말, 가족과 함께 인왕산 기슭의 모 아파트에 계시는 처갓집을 찾았다. 불과 몇 주만의 만남이었지만 이런저런 사연 등등으로 행복한 이야기의 끝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이내, 필자는 장모님을 모시고 인근의 한 식당을 찾아 맛난 음식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그리고는 포만감을 해결하고자 손위처남과 함께 가깝게 자리 잡은 인왕산의 한 자투리를 등산하기로 했다. 아니 등산이라기보다는 목적지가 없는 도보 여행 또는 바람 따라 떠나는 사색 여행이니 트레킹(trekking)이란 용어가 적절하다.
 
여러 가지로 기분이 좋은 상태인지라 이미 고인이 된 우리네 대중가요 가수인 고복수와 황금심의 애절하기만 한 노래 ‘장한몽(이수일과 심순애)’을 그냥 흥얼거리면서 말이다.
 
이런 가사였던가?
 
‘대동강변 부벽루에 산보하는 이수일과 심순애의 양인이로다. 학수훈정하는 것도 오날뿐이요. 보복행진 산보함도 오날뿐이다. 수일이가 학교를 마칠 때까지. 어이하여 심순애야 못 참았더냐. 남편의 부족함이 있는 연고냐. 불여인연 금전에 탐이 나더냐…(중략)’ 학창 시절에 후미진 막걸리 집에서 선후배들과 줄곧 불렀던 노래였다는 기억이 삼삼하다. 차지(且置)하고.
 
 
 ▲ 한양도성의 현황.

인왕산 자락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너무나 눈에 익은 성벽(城壁) 들이 자꾸 시선을 끈다.
 
무슨 산성일까? 어디에서 어디로 연결되는 성벽일까? 발동되는 호기심을 참을 길 없어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보니 이렇다.
 
필자가 본 건축물의 실체는 바로 한양도성(漢陽都城, 사적 10호)이었다.
 
이른바 도읍지 외곽을 둘러싼 나성(羅城)이 아니라 도읍 그 자체를 둘러싼 성곽인 도성(都城)의 흔적이었다. 조선시대 때 한성(漢城)을 둘러쌌던 도성인 셈이다.
 
다시 알아본 즉, 1396년(태조 5년) 1월에 기공식을 올린 한양도성은 북악산(북쪽)과 낙산(동쪽), 남산(남쪽), 인왕산(서쪽)을 따라 축조된 성이다.
 
또 성이 낙성된 후에는 배수지로 5간수문(五間水門)과 2간수문 등을 만드는 한편, 성곽의 관문(關門)으로 숙청문(肅淸門, 북대문)과 흥인문(興仁門, 동대문), 숭례문(崇禮文, 남대문), 돈의문(敦義門, 서대문)의 4대문과 그 중간 중간에 4소문(혜화문, 광희문, 서소문, 창의문)을 두었다. 그러니까 모두 8문(門)인 것이다.
 
명실상부하게 우리 선조들의 피와 땀으로 이룩된 건축물이며 문화유적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 한양도성은 1396년부터 1910년까지 514년간 동아시아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도성의 역할을 수행해 온 덕택으로 지난 연말에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Tentative List)으로 등재 신청된 상황이다.
 
여기에서 잠정목록은 세계유산적가치(OUV, Outstanding Universal Value)가 있는 유산들로서 앞으로 충분한 연구와 자료 축적을 통해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도록 하기 위한 예비목록을 의미한다.
 
때문에 상기(上記)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 평상시에는 해당 국가가 문화유산 및 주변 환경을 국가차원에서 유지 관리하게 되지만, 전쟁이나 자연재해로 훼손될 위기에 처하면 유네스코가 보호에 나서게 된다. 그렇다면 한성도성은 결국 2010년 1월 이미 등재신청 잠정목록에 이름을 올린 남한산성과 함께 등재가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트레킹 도중, 필자를 가슴 아프게 만드는 광경들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무엇일까?
 
 
 ▲ 북한산성과 한양도성 및 이를 연결 보호하는 탕춘대성

한양도성이 많이 끊겨진 아니 파괴된 한양도성의 현 모습들이었다.
 
물론 지난 1975년부터 본격적인 복원을 시작해 현재 숙정문과 광희문, 혜화문 등 3개 성문을 포함한 총연장 18.6km 중 12.3km 구간의 복원을 완료했지만 말이다. 남은 성곽의 복원과 형상화는 오는 2015년에 마무리될 것으로 알려져 있더라도.
 
더욱이 이런 안타까움의 원흉이 일제라는 사실이 더더욱 분통스럽다.
 
연도별로 철거 상황을 보니 숭례문과 흥인지문의 좌우 및 오간수문 성벽(1907~08년) 철거를 비롯해 남산과 장충동 사이 남소문 터 구간 성벽(1913년), 서소문과 서소문 부근 성벽(1914년)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이뿐이 아니다. 1915년에는 돈의문 철거를 비롯해 혜화문과 광희문의 문루(1928년)와 혜화문 하부 체성 및 좌우 성벽(1938년)까지도 철거되었다. 에이~. 부끄럽고, 치욕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고사성어 중에  완벽귀조(完璧歸趙)라는 말이 있다. ‘물건을 완전(完全)하게 하여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줌’을 비유한 말이다. 유래는 다음과 같다.
 
‘전국시대 조(趙)나라의 혜문왕(惠文王)이 화씨지벽(和氏之璧)이라는 진귀한 벽옥(璧玉)을 얻었다. 그런데 진(秦)나라 소왕(昭王)이 이를 빼앗을 속셈으로 15개의 성(城)과 벽옥을 바꾸자고 제안했다.
 
이에 혜문왕은 소왕의 속셈을 짐작하였으나 제안을 거절하였다가는 강대국인 진나라의 공격을 받게 될까 우려했다. 그러자 무현(繆賢)이라는 신하가 자신의 식객으로 있는 인상여(藺相如)가 지용을 겸비하였으니 대책을 상의해보라고 건의했다.
 
혜문왕을 만난 인상여는 자신이 벽옥을 가지고 진나라로 가서 소왕이 약속을 지키면 벽옥을 내주고,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벽옥을 온전히 해 조나라로 돌아오겠다(完璧歸趙)고 말했다.
 
이후, 인상여가 진나라로 간다. 소왕에게 벽옥을 주었으나 소왕은 약속한 15개 성을 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인상여는 소왕에게 벽옥이 둘도 없는 진귀한 보물이기는 하지만 작은 흠집이 있으니 그것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이에 소왕이 그 말을 믿고 벽옥을 인상여에게 도로 내주었다. 그러자 인상여는 벽옥을 가지고 기둥 옆으로 가서는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벽옥을 기둥에 던져 부수고 자신도 머리를 부딪쳐 자결하겠다고 소리쳤다.
 
소왕은 벽옥이 손상될까 두려워하여 임시변통으로 성을 내주겠다고 약속했다. 소왕의 진의를 간파한 인상여는 5일 내로 약속을 지키면 벽옥을 돌려주겠다고 말하고는 남몰래 사람들을 시켜 벽옥을 조나라로 돌려보냈다. 이로써 벽옥은 온전한 상태로 조나라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다’
 
이 고사는 사기(史記)의 ‘인상여열전’편에 실려 있다.
 
이로부터 완벽귀조라는 성어는 ‘화씨지벽이 처음의 온전한 상태로 조나라로 돌아간 것과 마찬가지로 원래의 물건을 조금도 상하지 않게 하여 완전한 상태로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을 비유하는 의미로 사용됐다.
 
또한, 완벽(完璧)이라는 고사성어도 이 고사에서 유래되기 시작했다.
 
그렇다. 완벽귀조라는 성어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보니 눈앞에 펼쳐진, 아직 100% 복원되지 못한 한양도성의 옛 모습이 떠오른다.
 
그렇지만 이제는 냉정하게 우리 모두 문화재청과 서울시가 발표한 바 있는 ‘한양도성 보존·관리 및 활용 종합계획’이 마스터플랜대로 똑바로, 제대로 진행되길 기대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필자, 한양도성의 ‘인왕산 코스’를 돌다 보니 그래도 울컥거려진다.
 
에이, 포만감도 진정됐으니 인근의 막걸리 집에서 막걸리 한 잔을 기울여야겠다. 고복수와 황금심의 노래 ‘장한몽(이수일과 심순애)’을 수십 년 만에 다시 내뱉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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