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철, 2005년 2월 탈북
▲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재학
거의 모든 농사를 기계가 아닌 사람이 해야 하는 북한은 농번기가 되면 고양이 손도 빌려 쓸 정도로 일손이 모자란다. 특히 곡식을 심는 일은 시기가 정해져 있어 본격적인 모내기가 시작되는 5월이면 북한 전역은 ‘모내기 전투’라는 도가니 속에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매일 12시간 이상씩 논과 밭에서 힘겨운 농사일에 동원된다.
이 기간 북한은 ‘농촌지원전투’라는 미명하에 노동자, 군인, 노인 할 것 없이 동원 가능한 인력은 최대한 동원하며 최우선 순위는 항상 중고등학교 학생들과 대학생들이 차지한다.
이 기간은 거의 모든 중고등학교와 대학교들은 휴교에 들어가며 중고등학생들은 군내, 대학생들은 도내의 농촌지역에서 30일 이상씩 의무적으로 ‘농진’(농촌지원전투의 약어)에 참가해야 한다.
중고등학생들은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원시적인 방법의 고된 농사일에 시달린다. 등짐으로 모를 나르고 무릎까지 빠지는 논에서 열 시간 가까이 허리를 굽히고 모를 꽂다보면 허리를 펼 때 오는 통증으로 허리 펴기가 더 두려워 진다.
▲ 볏모 판을 만들고 씨를 뿌리는 모습(좌)과 옥수수 모를 키우기 위해 영양단지를 만드는 모습(우). 북한에서 ‘영양단지는 학생단지’로 불린다. 옥수수심기는 물론 볏모내기도 대부분 학생들이 맡아 한다. <사진=필자제공>
필자도 중고등학교 내내 ‘농진’에 참가했다. 어린 시절 봄이면 농촌에서 겪는 고통 때문에 봄이 없는 나라 학생들을 부러워하며 잠들고 아침이면 천둥번개가 치고 비바람이 부는 날씨를 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며 눈을 떴던 기억이 난다.
아침에 모이면 아무개가 이불에 오줌을 쌌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리고 이런 고통을 견디지 못해 도망가다 단속원들에게 붙잡혀 곤경을 치르는 학생들을 보는 것은 북한 학생들이 맞는 봄의 일상이다. 잠자리에서 오줌을 쌀 정도로 어린 학생들에게 봄이 가져다주는 육체적 고통은 너무나도 혹독했다.
중학생 때에는 그나마 밥이라도 먹으면서 모내기를 했다. 물론 만족할 만한 식단이나 양은 아니지만 그래도 밥과 국, 반찬 한 가지는 나왔고 한 번 정도는 돼지가 장화신고 건너갔다는 고기국도 먹었었다.
▲ 모내기에 동원된 학생들의 모습=농촌지역 학생들은 집에서 출퇴근 하면서 일하지만 도시지역 학생들은 2~3명씩 현지 농장원의 집에서 숙박하며 농사를 도와야 한다. 일이 힘들어 도망치는 학생들이 많아 주로 교통이 불편하거나 거리상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내 보낸다. <사진=필자제공>
미성년자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면서 미안했던지 중학생 농촌지원자들에게는 그나마 좀 나은 조건을 마련해 주었던 것 같다.
하지만 대학생이 되어 맞은 봄은 중학생 때 맞던 봄이 그리워 질 정도로 더 혹독했다.
대학생이 되고 불과 한 달 후 인 5월 8일 함경북도 화성군 청룡리에 농촌지원을 나갔다. 새벽 5시부터 시작되는 하루 일과는 밤 11시가 지나서야 끝났고 모내기가 끝날 때까지 이 일과는 변함이 없었다.
▲ 군인들도 주둔지역 농장에 나가 모내기를 돕는다. 가을에 곡식을 훔치다 잡힌 군인이 봄에 내가 심은걸 수확하러 왔다 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군인들은 봄에는 공식적으로 농사를 돕고 가을엔 비 공식적으로 수확을 도와 농장에서는 반갑지 만은 않은 지원자들이다. <사진=필자제공>
새벽 5시에 차가운 물속에 발을 담그고 모내기를 하다 보면 불과 5분도 안 돼 손과 발은 감각이 없어지고 좀 더 지나면 볏모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손이 얼어버린다. 모닥불을 피우고 잠깐씩 손을 녹여가며 모를 심기 시작하면 어두워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모를 심었다.
저녁식사를 마치면 횃불을 켜고 11시 넘게 다음날에 쓸 모를 뜨는 일을 한다. 이렇게 하루 평균 17~18시 간씩 일을 해야 했다. 반면에 노동량에 비해 급식은 형편없었다.
농촌지원기간 동안 식량은 현지 농장과 대학에서 지원해 주지만 양이 적어 항상 배가 고팠다. 다행스럽게도 농장에서 초봄에 논두렁에 올감자를 심어두어 잠깐씩 쉬는 시간이면 메추리 알 만큼 큰 감자를 파 논물에 씻어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강도 높은 육체노동은 악으로, 배고픔은 감자로 달래며 극복했지만 정말 참기 어려운 시련이 있었다. 참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을 준 장본인은 다름 아닌 소금이었다. 소금을 실은 열차가 오지 않아 소금공급이 끊기고 2주 가까이 소금을 못 먹게 되면서 지금까지 버텨 오던 학생들이 하나 둘 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 호미로 김매기를 하는 농장원들=학생들의 농촌지원은 볏모내기가 끝나고 강냉이 첫 김매기나 두벌 김매기까지 해야 끝난다. 하루 종일 호미질을 하다 보면 손바닥은 물집 투성이가 되고 동원이 끝나고 나면 굳은살이 박인 손은 연필을 쥐는 것이 불편할 정도다. <사진=필자제공>
소금을 못 먹은 지 1주일정도 되자 발과 다리가 부어오르고 정신이 혼미해졌고 10일이 지나면서 누워서 일어나지 못하는 학생들이 나타났다. 몸은 내 의지와 상관없는 존재가 되어 갔고 마냥 누워있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대학 측은 급기야 소금을 구해 올 수 있는 학생들을 모집했고 우리 학급에선 어랑군에서 온 친구가 소금을 구해와 급한 상황은 넘길 수 있었다.
흔히 사람들은 봄을 만물이 소생하는 생명의 계절, 희망의 계절이라고 한다. 하지만 북한의 봄은 학생들에게 오직 볏모를 심기 위해 필요한 도구로 살기를 강요하는 지옥 같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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