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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근로자들, 반노예 신분 ‘농민’ 전락
황철의 ‘북한 생활기’
황철 필진페이지 + 입력 2013-06-01 00:01:33
 ▲ 황철, 2005년 2월 탈북 
 ▲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재학
개성공단이 잠정폐쇄된 지 50여일이 지났다. 북한당국에 따르면 개성공단에서 근무하던 근로자들도 협동농장이나 피복공장 등으로 배치돼 일한다고 한다.
 
북한전문 매체인 데일리NK는 개성공단 근로자들 중 2/3가 협동농장으로 분산 배치됐다고 전했다. 5만3000명에 달하는 근로자수를 감안하면 3만명이 넘는 근로자들이 농장으로 배치 된 셈이다.
 
이들은 노동자에서 농민으로 신분이 바뀌게 된 것도 억울한데 남한사람들과 일했다는 이유로 반동분자 취급을 당하면서 강도 높은 사상교육과 감시까지 받고 있다. 결국 개성공단 때문에 인생이 바뀌게 된 것이다.
 
1990년대 후반 극심한 식량난을 겪으면서 생계가 막막해진 노동자들이 자진 귀농하는 사례가 있었지만 북한에서 농민은 항상 벗어나고 싶고, 기피하고 싶은 1순위에 속하는 신분으로 여겨진다.
 
그 이유는 북한당국의 봉건적 신분제도 정책으로 농민은 최하위 신분으로 분류돼 다른 신분에 비해 많은 차별과 제한을 받으며 더욱이 신분이 대물림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자가 농민이 된다는 것은 노동자신분으로 누리던 많은 ‘혜택’들을 박탈당하고 자신은 물론 자식들의 인생까지도 논두렁에 묻어야 하는, 대대손손 벗기 어려운 굴레를 썼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북한당국은 오래전부터 ‘쌀은 곧 공산주의’라는 구호를 제시하고 농촌에 공산주의 이상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열쇠가 있다며 농촌 중시정책을 시행해 왔다. 여기에 식량난을 겪으면서부터 협동농장과 농민들의 책임이 더욱 강조됐고 당국의 관리감독과 통제가 강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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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땅에 독재 권력의 감시와 통제가 없는 곳은 없지만 그 힘의 세기가 조금이라도 약한 곳에서 사는 것도 행운이라고 북한 주민들은 여긴다. 농촌은 모든 조직이 비교적 잘 작동되고 있고 농사일 대부분은 순수 인력으로 지어진다. 따라서 강한 규율과 높은 출근율을 요구하고 있기에 정말 최악의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 무더운 날씨에 등짐으로 옥수수 짚을 나르는 모습들(왼쪽), 아슬아슬하게 높게 볏단을 실은 트랙터 위에 앉은 아주머니들(오른쪽 위), 흙먼지를 뒤집어 쓴 어린 학생들(오른쪽 아래)의 모습이다. 북한에서 농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농민의 자식으로 태어난 어린이들의 일상이다. <사진=필자제공>

그래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으면 괜찮다고 위안삼아 볼 수 있지만 1년 내내 농사를 지어 받은 분배는 군량미, 애국미 등으로 대부분 강제징수 당하고 해마다 보릿고개를 걱정하면서 살아야 할 정도로 분배로는 생계조차 유지하기 어려운 것이 농민들의 현실이다.
 
부족한 식량은 새벽과 밤 시간을 이용해 산비탈을 개간한 밭에서 농사를 지어 해결해야 하는 형편이다.
 
또한 농촌을 중시한다는 당국의 정책과 달리 농민들은 사회가 주는 많은 차별과 편견을 감내해야 한다. 하루 8시간 근무에 1주일에 하루씩 휴식하는 노동자들과 달리 농민들은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씩 일해야 하고 휴식도 10일에 하루씩 할 수 있어 법정근로일수와 근로시간이 노동자에 비해 훨씬 많다.
 
하지만 농민들이 억울하다고 하소연 하는 가장 큰 차별은 강한 통제나 조직규율, 근로일수나 시간의 차이가 아니다. 농민들은 신분상 자신들이 받는 차별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부모 때문에 자식들이 받아야 하는 차별은 농민으로 살아온 부모들의 마음을 갈가리 찢어 놓기에 충분하다.
 
 ▲ 북한 농촌마을 풍경과 농사일을 돕고 있는 학생들=농민들은 가을이면 밭에 남아 있는 옥수수 뿌리나 볏짚들을 모아 땔감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전기 공급이 거의 안 돼 박물관에 가야 볼 수 있는 디딜방아나 맷돌로 정미해 먹는다. 농촌지역학생들은 방과 후 농사일을 돕는 일에 자주 동원돼 초등학교 때부터 농사일을 배우기 시작하고 졸업 때쯤이면 능숙한 농민이 될 정도다. <사진=필자제공> 

같은 농촌에 살아도 부모가 노동자냐, 농민이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삶이 주어지고 꿈이 꺾인 자식들은 부모를 원망한다. 그런 자식들을 바라보는 부모들은 속으로 피눈물을 삼키며 후회하고 원망하기도 한다.
 
남한의 부모들은 자식들이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를 바라며 엄청난 사교육비를 부담하면서도 자식 뒷바라지를 하지만 북한의 농민신분 부모들은 어떻게 하든 자식들만은 노동자 신분이 되기를 바라고 또 바라며 손톱이 닳도록 일해 자식 뒷바라지를 한다.
 
하지만 북한당국은 군 입대나 대학진학을 제외하고 농민자식들의 농장 외 사회진출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따라서 아무리 공부 잘하고 뛰어난 재능이 있다고 해도 부모가 농민이라는 이유 때문에 거의 대부분 자식들은 부모의 신분을 이어받을 수밖에 없다. 농민은 봉건적 신분제도의 대명사가 되게 된 것이다.
 
혹시 운이 좋아 사범대학이나 교원대학 등 농사와 관련되지 않은 대학에 가게 되더라도 막중한 생활비부담에 중도 포기하는 경우도 많아 돈 없고 빽 없는 일반 농민들은 아예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체념하고 살기도 한다.
 
 ▲ 중국기자가 황해남도에서 직접 담은 북한농민들의 생활모습이다. 주방에서 통강냉이 죽을 끓이는 모습(왼쪽), 가을걷이가 끝난 밭에서 떨어진 벼이삭 줍기를 하는 아주머니들(오른쪽 아래), 끝이 보이지 않는 밭고랑을 손으로 만들어 가는 어린 농민의 모습(오른쪽 위) 등이다. 하나같이 뼈만 앙상한 북한 농민의 모습들이 집단농장이라는 감옥 안에서 노동착취를 당하며 살아가는 실상이다. <사진=중국사이트/필자제공>

여자들에게는 돈 없고 빽 없어도 신분상승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북한은 남편의 신분에 따라 아내의 신분이 자동적으로 바뀌기 때문에 노동자 신분의 남자와 결혼하는 것이 농민신분을 벗어 날수 있는 농촌처녀들의 유일한 기회다.
 
때문에 딸 가진 부모들은 딸을 노동자와 결혼시켜 신분상승을 시키려고 하지만 노동자와 결혼을 하더라도 거주퇴거라는 허가서를 받기까지 수년이 걸리고 많은 뇌물을 상납해야 하거나 이마저도 아예 제한하는 등 신분상승의 길은 결코 쉽지 않다.
 
북한농촌에서는 본인이나 자식의 신분을 노동자로 바꾼 사람은 매우 똑똑하고 대단히 능력 있는 사람으로 평가된다. 이렇게 농민이라는 이유 때문에 받는 차별로 북한에서 농민이라는 두 글자는 자식에게 만큼은 물려주기 싫은 글자이고 부모의 직업란에 만큼은 쓰기 싫은 글자가 됐다.
 
이런 두 글자를 달고 살게 된 수만 명의 개성공단 근로자들의 심정이 어떠할지는 짐작하고도 남을 것 같다. 그리고 그들과 그들의 가족들은 밤이면 이불 밑에서 참고 참았던 슬픔과 분노를 조용히 쏟아내며 서로를 위로해 주는 것으로 하루를 보내고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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