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위즈데이타
비오는 날 오후
어제 밤에도 내렸든 비가
오늘밤도 구성진 춤사위로 펄럭이며
빛을 거둬들이는 하늘 안고 떨어진다.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은
하늘도, 마음도 어둡지만
아직은
내겐 시린 눈으로 푸른 하늘 바라보며
흘릴 수 있는 눈물이 남아있기에
외롭지 않다.
그리고 가끔은
그윽한 커피 향에 취해
가슴 벅찬 눈물을 흘릴 수 있어
슬프지 않다.
그러나 젖은 몸 흠뻑 적시며
어디론지 떠나고 싶은데
간간이 들려오는 흐느낌이
내 가슴을 무겁게 짓누른다.
<深頌(심송) 안호원>
(회고) 이런 저런 창밖의 소리가 내 귀를 가렵게 하고 비가 내리면서 마음을 무겁게 한다. 잠시 비가 그친 흐린 하늘을 바라본다. 아련히 피어오른 구름들이 무심하게 흘러가는데. 어느 순간 에덴동산 같기도 하고 또 어느 순간은 지옥 같은 모습으로 흘러간다. 모두가 빗물에 씻기어가듯 우리의 미움도, 아픔도 빗물 따라 지워지는 데.... 폭우가 지나간 한강 철교위에서 우울한 내 마음을 뒤집듯 뒤집어져 흙탕물이 범람한 한강물, 폭우에 떠내려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들풀들. 문득 인간과 닮은 생각이 든다. 어차피 형체도 없고, 머물 수도 없는 것들이 허공을 붙잡으려고 허우적거린다. 그리고 그 허공을 향한 헛된 꿈을 이루기 위해 구름처럼 흘러간다. 빗물처럼 흘러가는 삶이여.
☞ 수채화
비가 내리는 오후에 비를 맞은 대지에서 느껴지는 생명의 움찔거림과 시인의 몸에서 생명의 꿈틀거림이 하나로 복사(두개가 아닌 하나, 미시역학의 동시적 존재)되어 느껴진다. 다른 세계로 통하는 양자터널이 존재하는 분위기가 비오는 날 오후에 물씬 풍긴다. 울적해지는 마음을 생명의 대지 삼아 죽 펼쳐 놓고 그 위에 생명의 찬가를 부르며 그 존엄함을 심는 시인이다.
▲ 시와 시평 ⓒ스카이데일리
오후의 빗줄기는 “빛을 거둬들이는 하늘 안고 떨어져” 밝은 하늘뿐만 아니라 마음의 어둠까지 찾아오게 만든다. 시인은 빛을 삼킨 비를 향해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은 하늘도, 마음도 어둡다”면서 어둠을 피하고 싶어 한다. 비와 빗소리를 좋아하는 시인이 울적하게 어둠을 짓게 깔고 나선 것은 생명에 대한 감사와 찬양을 위한 예비 작업이다. ‘비 내린 날 오후’는 시인에게 울적함이 아니라 소중한 배경으로 그려진다.
비 내리지 않는 날 눈이 시려 눈물이 날 만큼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는 것은 살아있음에 대한 은혜의 감사다. 시인은 “시린 눈으로 푸른 하늘 바라보는” 것만으로 “흘릴 수 있는 눈물이 남아있는 것”에 각별한 느낌이 닿아 “외롭지 않다”고 했다. 비오는 날을 병풍 삼아 맑고 푸른 하늘에 삶의 수채화를 수놓듯 놓고 있는 것일까. 시인은 이내 “그윽한 커피 향에 취할” 만큼 살아 있음의 또 다른 흔적인 추억에 감사하고, 그것으로 “가슴 벅찬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가슴(생명과 사랑)이 있기 때문에 “슬프지 않다”고 했다. 생명을 움직이는 가장 소중한 심장이 있는 가슴의 소리를 시인은 듣고 찬양하고 하면서 외롭지 않고 슬프지 않다며 기뻐한다.
그럼에도 “간간이 들려오는 흐느낌”은 생명의 기력을 빼앗는 욕심과 이기심 그리고 상처와 분노 등의 어우러짐일 것이니 그것들 이 “가슴을 무겁게 짓누른다”고 했다. 비오 날 오후에 그린 생명과 사랑의 수채화에는 이따금 이렇게 먹물이 튀겨 곤혹스럽다. 시인은 그것들까지 안고 가는 비오는 날의 오후 전경, 그런 수채화를 묵묵히 그리고 있다.
<스카이데일리 문화팀=안호원 시와 시평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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