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어디 가는 길이야, 래빗?” 마이갓이 물었다. “숲의 중앙에 가서 할 일이 있어.” “나, 어쩌면 파샤를 떠날 것 같아.” 마이갓이 우울하게 말했다. “마이갓, 조금만 버텨줘. 나를 도우러 온 친구들과 힘을 합해 파샤를 구할 수 있어. 인간들을 몰아내고 나면 우리 숲은 다시 활기가 넘칠 거야.” 래빗이 애원했다.
“래빗, 나도 그러고 싶지만 이미 많은 친척들이 파샤를 떠났어. 인간이 나무만 베는 게 아니야. 우리들도 눈에 띠면 사정 없이 죽이지. 우리들의 멋진 깃털을 모자 장식으로 쓰거든. 인간은 새를 잡아서 통으로 모자 위에 얹기도 해.
겨우 인간의 눈을 피해 살아남는다고 해도 나무들이 사라진 이 숲에는 먹을 것도 없어지고 있어.” “마이갓, 그래도 조금만 더 있어줘. 원래 너희 종족은 강인하고 용감하잖아. 아빠한테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 너의 조상은 인간에게 잡혀서도 결코 무릎을 꿇지 않았다고.” “그건 맞아, 나의 할아버지도 인간에게 사로잡히셨지만 장엄하게 돌아가셨지. 인간이 주는 먹이를 먹지 않았고 인간의 집을 탈출하려고 시멘트벽을 뚫기도 하셨어. 그들에게 복종하지 않으려고 며칠을 굶다가 돌아가셨다고 해. 그 집에 살던 쥐가 들려주었어.”
“마이갓, 너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힘이 느껴져. 파샤를 지키는 새로 남아 있어 줘.” 래빗이 다시금 부탁했다. “래빗, 나도 네 모습을 보면 힘이 난단다. 지금 우리 모두는 너에게 희망을 걸고 있어. 너는 이 숲의 공주님이잖아?” 마이갓이 부드럽게 대답했다. “마이갓, 그럼 있어주는 거지? 우린 길을 떠나야 해. 여기 남아서 래빗을 응원해 줘!” 미미가 말했다.
미미와 일행은 마이갓과 작별하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그 사이 해가 많이 떠올라 숲이 밝아졌다. “여기야, 이쪽으로!” 레드가 일행을 인도했다. 그들은 숲의 중앙 평평한 곳에 멈추었다. “래빗, 여기가 좋을 것 같아요.” 레드가 말했다. 그곳은 키 작은 풀만 자라고 나무가 없는 곳이었다. 숲의 중앙, 숲에서 가장 높은 곳이기도 했다. 미미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전망이 탁 트여서 다른 숲도 보였다. “여기 괜찮은데, 레드?” 레드가 삽으로 땅을 팠다. 좀 깊이 땅을 파고는 조심스럽게 은잔을 묻었다.
다들 힘을 합해 흙으로 덮고는 둥그렇게 모였다. 알프 요정이 대지의 신에게 올리는 기도를 했다. “대지의 여신이여! 당신의 품에 은잔을 심었습니다. 우리는 이 잔이 무슨 식물인지 분명히 알지 못합니다. 이 잔은 이 곳 파샤숲의 물푸레나무 족장이 끝까지 지켜낸 비밀의 식물입니다. 이곳은 인간의 욕심과 만행으로 파헤쳐지고 베어졌습니다.
그는 숲을 지키고자 자신의 하나 남은 딸을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시켰습니다. 인간의 팔과 손을 가진 래빗이 당신의 품에서 이 잔을 꺼내어 안전하게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제 이 식물을 당신의 품에 맡깁니다. 대지의 여신이시여, 이 잔에 생명을 넣어 키워주시고 파샤를 살려주십시오!”
알프 요정의 맑은 음성에 일행은 함께 간절한 마음을 담았다. 알프의 기도가 끝나기 무섭게 하늘에서 번쩍하는 빛이 은잔이 묻힌 땅으로 꽂혔다. 다들 화들짝 놀랐다. “알프 요정님, 대지의 신이 하늘에 신호를 보냈어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 게 맞지요?” 래빗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래빗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너무 세지도 너무 약하지도 않게. 주위의 풀들이 비를 맞으며 작은 몸을 흔들며 춤을 추었다. “미미, 이렇게 기분 좋은 아침은 오랜만이야!” 발 밑의 클로버가 미미에게 방긋 웃어 주었다. 미미는 클로버를 살포시 쓰다듬어 주었다.
[글: 최문형 / 그림: 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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