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유행이 한창이던 2020년 봄, 이탈리아에는 식료품 구매를 위한 외출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이동이 제한됐다. 어느 날 이탈리아인 친구 사라는 쓰레기장을 무심코 바라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며 소식을 전해 왔다. “사람이 너무 보고 싶어서 밖을 멍하니 보다가 쓰레기장에 계신 할머니를 봤는데, 그녀가 너무 반갑더라.” 눈을 마주치거나 짧은 인사도 없이 가 버려 슬펐지만 누군가 텅 빈 거리에 나와 줘서 너무나 반가웠다는 그녀의 이야기에 코로나 이전 거리 풍경이 떠올랐다.
모르는 사람들과 우연히 마주치며 다양한 군상을 마주한다는 것, 마스크를 벗고 다녔던 거리의 풍경은 다양한 삶을 만나는 아주 낮은 단계의 사회적 활동과 같았다. 나와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다는 현실을 자각하며 모르는 사람들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을 마주한 시간이자 공간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군중과 떨어져 있길 바란다고 말하지만 행동은 그 반대이다. 미국의 도시계획가 윌리엄 화이트는 1970~80년대 실제 도시 공간에서 일어나는 행위를 관찰하여 ‘작은 도시공간의 사회적 삶’이라는 책으로 정리했다. 그는 뉴욕의 작은 광장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거리와 광장에서 일어나는 일상을 몇 가지 요소를 중심으로 설명하며 사람들이 선호하는 도시 공간의 조건을 이야기한다.
특히 거리 중앙에서 삼삼오오 모여 있는 사람들에 주목했다. 그들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곳 가까이에 자리를 잡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벤치가 있다면 앉는 방향을 길을 등지는 것이 아닌, 길을 바라보고 앉는 방식을 택했다.
인기 있는 광장은 광장의 모양이나 환경의 조건과는 관계없이 앉을 수 있는 공간이 잘 조성되어 있는지가 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자연 요소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문화권에 따라 그늘과 햇볕을 선호하는 차이는 있지만 사람들은 밝은 곳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분수나 작은 폭포, 연못 등 물을 가까이할 수 있는 설계도 성공적인 야외 공간에 요구된다.
또한 화이트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회적 유대감을 조성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사람들은 낯선 이들과 함께하는 장소에서 특정한 요소를 통해 서로 배려하고 인사하며 사회적 활동을 이어 간다.
거리 예술가와 음악가들이 작은 공연을 하거나 야외 조각 등 거리의 예술적 요소가 이를 위한 촉진제로 작용한다. 그뿐 아니라 음식과 연관된 장소도 중요하다. 잘 설계된 야외 식음 공간, 또는 간이 야외 테이블로 연결되는 식음 시설은 사람들의 다양한 활동을 유발한다.
이처럼 매력적인 야외 공간은 다양한 사람들의 상호작용을 도모한다. 친구들과의 대화를 위해 쾌적한 장소로 활용되며 동시에 모르는 사람들과 마주해도 괜찮은, 그렇기 때문에 도시의 다양한 일상의 면모를 체감할 수 있는 장으로 거듭난다.
따라서 도시의 물리적 환경은 사람들의 활동을 촉진한다는 면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물리적 환경의 중요성을 이야기한 덴마크의 도시 설계자이자 건축가인 얀 겔은 우리의 활동을 필수적·선택적·사회적 활동으로 나누고 물리적 환경의 높아짐에 따른 변화를 설명했다.
도시 환경의 질과 무관하게 등교나 출퇴근, 혹은 생필품을 사러 길을 나서는 행위는 우리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활동이다. 도시환경의 질은 물리적 환경과는 크게 연관이 없다. 그러나 도시 환경이 좋을수록 산책이나 야외에서의 휴식 등 선택적인 활동의 양은 대폭 증가한다.
더불어 주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거나 짧은 대화를 건네고, 아이들이 뛰어노는 등 다양한 사회적 활동의 양도 늘어난다. 따라서 다양한 만남의 장소로서 예측 불가능하나 기꺼이 활동할 수 있는 우리의 의지와 야외 공간은 그만큼 밀접한 연관을 갖는 것이다.
도시 설계가들은 논의를 통해 도시 공간의 질을 개선하는 움직임이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지 계속해서 강조해 왔다. 실제 야외 공간의 중요한 요소를 도출한 윌리엄 화이트는 1975년 지역 사회를 위해 건강한 공공공간을 함께 고민하고 만들어 나가기 위한 비영리민간단체인 PPS(Project for Public Spaces)를 설립했다. 지역 사람들을 위해 생동감 있고 긍정적인 장소로 공공 공간을 설계해 나가기 위해 다양한 커뮤니티를 지원하며 장소만들기 사업을 이어 가고 있다.
광장이나 거리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차별 없이 열려 있는 공유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친구와의 대화, 가족과의 만남, 휴식, 놀이 등 다양한 활동이 펼쳐진다. 분수대에서 뛰노는 아이이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옆 벤치에 앉아 짧은 대화를 나누며 새 이웃을 만나는 기회의 장소이기도 하다.
우리는 좋아하는 요소만 추천해 주는 온라인 세상의 알고리즘에 익숙해져 있다. 검색한 단어와 연관된 광고와 다음 볼거리가 줄지어 우리의 클릭을 기다리고 있다. 나와 유사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추천하고 그 사람들이 보고 있는 콘텐츠를 내게 추천한다. 분명 모르는 사람이지만 알 것만 같은 낯설지 않음이 오히려 우리를 익숙한 것들 안에 가둬 낯설고 새로운 대상과의 관계를 제한시키는 듯하다.
그래서 휴대폰 밖, 집 밖을 나와 누군가를 만나는 낯선 경험은 온라인보다 오프라인의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되돌아보게 한다. 나와 완전히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기회는 오프라인 속 도시 공간이 주는 특별한 경험이 되고 있다.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여정을 문 밖을 나서며 거리를 돌아보며 공원에 앉아 다양한 삶을 관찰하는 순간에서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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