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이전의 미국은 다른 나라들과 항구적 동맹관계를 맺는 것을 기피해 왔으나, 냉전을 겪으면서 세계적 차원의 반공 동맹체제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아시아에서 미국은 다자 동맹체제가 아니라 ‘허브 앤드 스포크(hub and spokes)’라고 불리는 일련의 미국 중심의 양자 동맹관계를 한국, 일본, 필리핀 등과 맺었다. 미국의 동맹체제는 봉쇄전략의 성공적 실행을 위한 필수적 하부구조로서 60년 넘게 평화의 기제로 기능했다.
1953년 10월1일 체결된 한·미 상호방위조약은 한국의 평화와 안전, 그리고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했고, 동북아의 안정적인 안보질서 유지에 이바지했다. 일본의 평화와 안전은 1960년 1월19일에 체결된 ‘미국과 일본 간의 상호협력 및 안전보장조약’에 따라 미국과의 안보체제를 기조로 확보돼 왔다.
1951년 9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및 미·일 안전보장조약이 체결됐고 연장선상에서 한·일 회담이 추진돼 1965년 6월22일 한·일 기본조약을 포함해 청구권·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어업협정·재일교포의 법적 지위와 대우에 관한 협정, 문화재·문화협력에 관한 협정 등 4개가 정식으로 조인됐다. 한·일 기본조약에서 일본은 대한민국 정부가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 정부임을 인정해, 이로써 한·미·일 안보협력체계가 형성됐고 한·미·일 안보협력의 기틀이 마련됐다.
2010년 중국은 경제력에서 일본을 앞지르고 군사력·경제력에서 미국 다음으로 강력한 국가로 떠올라, 냉전과는 전혀 성격을 달리하는 미·중 패권경쟁이 시작됐다. 중국은 유라시아 대륙으로 뻗어나가고 남중국해와 동중국해로 영향력을 확대해나가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을 구사한다. 미국은 미·일 동맹과 한·일 동맹을 강화시켜 중국의 패권 추구를 막기 위해 동북아 지역 세력균형의 조정자(balancer)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2017년 한국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인도·태평양 전략(Indo-Pacific Strategy)’을 제시했다.
세계적 차원에서 세 번째 패권경쟁인 미·중 패권경쟁이 본격화되면서 한국은 이전보다 더욱 심각한 안보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미·일 방위협력지침을 개정해 미·일 동맹관계를 새롭게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도 양국 정상간 상호 방문 및 교류를 확대하고, ‘새 시대 전면적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 선언(2019년6월5일)’을 통해 밀월관계를 형성함으로써 ‘미·일 대 중·러’의 갈등 구조가 동북아의 신냉전 질서를 유발하고 있다.
중국은 세계 최고 중무장 ‘중단거리 핵 및 재래식 미사일(INCF)’을 보유했다. 최대 1800여기의 INCF 중 40~80여기가 핵탄두로 무장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 중 600여기는 한국의 심장을 겨누고 있다. 중국은 2015년 국방백서에서 ‘적극적 방어’라는 국방전략 개념을 제시하며 제한적 선제공격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한반도에서 남북 간 대형 군사적 충돌이 발생해 중국이 북한을 지원하기로 결정할 경우 미사일이 활용될 수 있다. 다양한 사거리의 미사일은 한·미 공군 및 공군 기지를 파괴해 무력화시키고 한반도 증원전력의 핵심인 항공모함이 동·서해안으로 진입을 막을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2016년9월9일 5차 핵실험(10kt 내외)에서 “표준화·규격화됨으로써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된 보다 타격력 높은 각종 핵탄두를 마음먹은 대로 필요한 만큼 생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2017년9월3일 6차 핵실험(50∼100kt 내외) 후 중대발표를 통해 “대륙간탄도로켓(ICBM) 장착용 수소탄 실험에 완전 성공했다”고 천명했다.
북한은 2017년 화성 12·14형 미사일 발사에 이어 11월29일 대륙간탄도미사일인 화성 15형 시험발사 후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북한은 핵전략의 1차적 목표를 자신의 체제 생존에 위협이 되는 요소들을 억제·격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한반도 적화통일’이라는 총체전략을 고려할 때 방어적 성격에만 국한할 것으로 단정하기 어렵다.
미·북 정상회담이 개최됨에 따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비핵화협상 의견교환 및 북중 친선 관계 확인 차 2018년3월부터 2019년1월까지 네 차례나 시진핑 중국 주석을 방문했다. 2019년6월 시진핑 주석이 북한을 공식 답방함으로써 그동안 소원했던 북중 관계가 정상화됐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회담이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019년4월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전통적인 우호 관계 복원에 나섰으며,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에 맞선 전략적 공조를 강화하는 보폭을 확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그간 베일에 싸였던 중국과 러시아 간 전략적 협력관계의 실체가 드러났다. 이에 따라 냉전 시대의 대립 구도가 그대로 재현된 중·러 진영과 미·일·유럽 진영 사이의 ‘신냉전 체제’가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 전개는 냉전 시대에 동북아에서 전개된 북·중·러 공산진영 삼각체제와 이에 대항하는 한·미·일 자유진영 삼각체제 사이의 대립구도가 그대로 부활할 개연성을 예고한다. 1991년 소련의 붕괴로 야기된 냉전 체제 종식 이래 30년 세월을 돌고 돌아 역사는 결국 원위치로 되돌아오고 있다.
한국과 미국은 한·미 상호방위조약부터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까지 맺으며 명실상부한 안보동맹을 구축해 왔다. 미국과 일본 사이에도 1951년 체결해 1960년 개정된 ‘미·일 안전보장조약’과 ‘미·일 지위협정’이 안보동맹의 뿌리다.
한·일 사이의 동맹은 미국의 한·미·일 삼각동맹 구상에 함께 묶여 있었을 뿐 동맹의 실체가 불분명했으나, 2016년에 체결된 한일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가 한·일 간 연결고리 역할을 해왔다. 1945년 광복 이후 1965년 한·일 기본조약 체결로 양국 관계는 정상화 됐으나, 국가안보 측면에서 지소미아는 군사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한·일이 맺은 유일한 군사협정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2014년12월 한·미·일 3국 국방 당국이 체결한 3자 공유 약정인 ‘한·미·일 정보공유약정(TISA·티사)’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지소미아가 종료되더라도 한·미 동맹과 한·미·일 삼각동맹의 군사정보 교환에 심대한 타격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지소미아가 국제법적 구속력을 갖고 있어 교환되는 정보는 반드시 보호돼야 하나, 티사는 선별적 공유가 가능하고 반드시 미국을 거쳐야 하는 불편함이 있으며 정보유통의 신속성이 떨어지고 정보수준이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2014년 티사의 체결 목적도 당시 북한의 핵 및 미사일 실험 등 점증하는 북한의 위협에 공동으로 대응하자는 취지였다. 티사 체결 이후 한·미, 미·일 간에 공유되는 군사정보를 한·미·일이 교환할 수 있게 됐지만 한계가 있었다. 그동안 지소미아를 통해 한·일 간 정보 교류가 직접 이뤄졌는데, 지소미아가 파기되면 이제는 미국을 통해야 정보 공유가 가능하게 된다. 지소미아 파기는 제2의 애치슨 라인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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