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6-09-28 20:33
뉴스 > 연재기획
박혜수의 전지적 시점
‘윤핵관’은 정말 그렇게 몹쓸 존재인가
박혜수 필진페이지 + 입력 2022-09-15 14:30:40
 
▲ 박혜수 시인·번역작가
“너희 인간들은 고통을 통해서 현실을 인지하지. …너희는 포유류가 아니었어. 지구상의 모든 포유류는 본능적으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데 인간은 안 그래. 한 지역에서 번식을 하고 모든 자연 자원을 소모해 버리지. …이 지구상에 똑같은 방식을 따르는 유기체가 또 하나 있어. 바이러스지. 인간이란 존재는 질병이야.”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대사다. 매트릭스는 1991년에 제1편이 개봉된 SF 시리즈물이다. 워쇼스키 형제가 제작·감독하고 키아누 리브스가 주연을 맡았다. AI에 의해 인간이 양육되는 2199년의 미래세계를 배경으로, 가상현실과 실재를 대립시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이 영화는 최근 발표된 4편까지 시리즈로 제작되었다.
 
영화의 주인공 토머스는 낮에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밤에는 ‘네오’라는 이름의 해커로 이중생활을 한다. 영화 첫 부분에 초록색 표지의 책이 나오는데 이 책이 바로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이다. 영화의 감독을 맡은 워쇼스키 형제는 이 장면을 통해 ‘매트릭스’가 책의 주제와 결을 같이 하고 있음을 암시하고자 했다. 하지만 막상 보드리야르는 영화가 자신의 철학과는 관련이 없고 자신의 생각을 잘못 이해했다고 말했다.
 
장 보드리야르는 대중문화와 미디어, 소비사회 이론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현대철학자이자 사회학자다. 그는 모사된 가상의 이미지가 현실을 대체한다는 ‘시뮬라시옹’ 이론을 주장했다. 우리가 가짜 모사품인 ‘시뮬라크르’의 이미지와 그것이 상징하는 기호에 중독되어 살고 있다는 것이다.
 
더 이상 진짜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 속에서 가상의 거짓 현실이 정보와 매체의 무한 증식을 통해 질서를 만들어 나간다. 그 질서 속에 살아가는 대중은 온갖 정보와 메시지를 흡수하지만 그것들 뒤에 숨은 의미에는 관심이 없다. 정보와 메시지의 홍수라는 일종의 강요를 통해 대중은 생각을 멈추고 스폰지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린다…. 이것이 보드리야르가 분석한 현대사회, 우리의 모습이다.
 
광고
▲ 프랑스의 현대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장 보드리야르. 1991년 “걸프전은 일어나지 않았다”라고 주장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Wikipedia]
 
요즘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의 모습이 바로 그렇다. 예를 들어 ‘윤핵관’이라는 이미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 지난 해 12월 무렵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가 이 말을 만들어 들고 나서자 언론이 그 이미지를 열심히 퍼뜨려 주었다. 윤핵관이 실제로 무슨 행동을 어떻게 해서 나라와 국민에게 무슨 해악을 끼쳤는지 아무도 정확히는 모른다. 하지만 안 좋은 일이 생겼다 하면 거의 언제나 윤핵관이 도마에 오른다. 있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된 것이다.
 
실제로 최근 여권 지지율 위기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1위 윤석열 대통령, 2위 윤핵관, 3위 이준석 전 대표, 4위 김건희 여사, 5위 내각‧대통령실의 결과가 나왔다. 같은 질문을 여권 지지층만을 대상으로 했더니 1위 이준석 전 대표, 2위 윤핵관, 3위 윤석열 대통령, 4위 김건희 여사, 5위 내각‧대통령실로 나타났다.
 
양쪽 조사 모두 윤핵관이 2위다. 여권 지지자들조차 윤핵관이 문제라고 생각한다는 얘기다. 이것이 미디어가 심어 준 가상 이미지의 힘이다. 더구나 다섯 가지 선택지는 어느 것을 고르든 국민의힘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사람 내지 조직이다. 그러니 대중은 부지불식간에 이 다섯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것이 미디어의 힘이고 해악이다.
 
안타까운 것은 한쪽은 그걸 잘 알고 마구 이용하는데 당하는 쪽은 그저 휩쓸려 상대가 원하는대로 움직여 준다는 사실이다. 대처할 줄도 모르고 역공은 더욱더 모른다. 왜일까?
 
최근 대통령비서실의 인사 개편이 있었다. 비서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여론이 들끓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생각하는 비서실 개편의 이유와 목적이 무엇이며 앞으로 무엇이 어떻게 달라진다는 건지 국민 가운데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도 알 수 없다. 개편을 한다 해 놓고 비서실장이며 수석비서관 등 주요 인물은 다 그대로 두고 중간급의 인사에만 손을 댔기 때문이다.
 
“이제 알겠나? 길을 아는 것과 길을 직접 걸어가는 것의 차이를….”
 
대통령에게 묻는다. 공정과 정의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과 그것을 구현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가. 국민을 위한 일, 그 여정에 전략과 책략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가. 미디어를 통한 가상의 이미지 만들기에 능한 상대 앞에서 힘이 되어 줄, 전략과 책략에 능한 참모를 옆에 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문제는 누구를 옆에 두든 대통령 옆에 사람이 있으면 이준석 전 대표와 야당에선 그를 신(新)윤핵관이라 할 것이고 언론에선 열심히 떠벌여 줄 것이다. 그런데 언론에 묻는다. 윤핵관은 정말 그렇게 몹쓸 존재인가. 윤석열 대통령은 다른 대통령들과 달리 옆에 사람을 두면 안 되는 것인가. 대통령이 고립되기를 바라는가. 그렇다면 무엇 때문인가.
 
“난 이것이 어떻게 끝날지 말하려는 게 아니다. 어떻게 시작할지를 말하려는 것이다….” 
 
후원하기
  • 정기 후원
  • 일반 후원
  • 무통장입금: 하나은행 158-910019-39504 스카이데일리
  • 스카이데일리는 공공성에 기반해 독자가 만들어 가는 언론을 지향합니다. 정기 또는 일반 후원시 맞춤형 뉴스, 독자에게 할당하는 지면 서비스, 동행하는 홍보, 유상증자시 참여기회 제공(법인에 한함)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2
좋아요
4
감동이에요
0
화나요
3
슬퍼요
0
댓글 : 0
방문수(PC&모바일)
오늘(실시간) 129,574 ▶
어제 140,329 ▶
최근 7일 ▶
대한민국 명사들
대면 기회를 가져보세요.
팬클럽 가기
오늘자 스카이데일리



주요 섹션 기사
주소 : 서울시 서초구 방배천로2안길 82(방배동 463-18) 청송빌딩 3,4층 | 전화 : 02-522-6595~6 | 팩스 : 02-522-6597
종합일간지 등록번호 : 서울시 가50131,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시 아01703, 등록일 : 2011년 7월 18일
발행·편집인: 민경두, 편집국장 : 주경준, 사업자 번호 : 214-88-81099 후원계좌 : 158-910019-39504(하나은행)
copyrightⓒ2011, All rights reserved. Contact : skyedaily@skyedaily.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진강
본지는 한국신문윤리위원회의 서약사로서 신문윤리강령을 준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