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 루프(Time Loop)는 드라마·영화에서 무의식(꿈)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실제 현실이 되어 악을 물리치거나 암시적인 복선(伏線)의 이미지·기억·사건과 장면들이 특정 시공간으로 반복 재생되어 극적인 긴장감을 높이는 기법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작가는 이러한 극작 기법으로 과거·현재를 연결하거나 특정 시간과 장면을 연속적으로 배치함으로써 미래의 사건들이 꿈으로 재생되어 현실이 되기도 하고, 인간의 욕망에 감추어진 선악의 비밀들이 현실처럼 전개되어 파멸로 몰리기도 한다. 타임루프는 극적 서스펜스 효과를 내는 극적 기법이기도 하다. 인간이 무의식세계로 경험할 수 있는 예지몽(豫知夢)처럼 말이다.
이러한 사례는 우리 주변 현실에서도 경험담을 들을 수 있다. 꿈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꿈처럼 느껴지는 신비한 경험처럼,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초월적인 인간처럼 말이다. 극적인 긴장감을 자극하는 연극이 있다면 흥미로울 것 같은데 극단 산수유의 연극 ‘당신은 아들을 모른다’(김나영 작, 류주연 연출)가 타임 루프 기법을 극적 장치로 활용해서 한 가정의 엄마와 아들의 이야기를 흥미로운 무대로 배치해 내고 있다.
제목에서도 눈치를 챘듯 성장한 아들의 내면을 모르는 엄마의 이야기이다. 아들을 알아가는 엄마의 이야기가 단순하게 전개되지 않는다는 점이 특별한 연극이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평범한 아이일 것만 같았던 아들의 비밀과 이야기들이 영화 장면의 시퀸스처럼 꿈으로 연속해서 경험하고 실제 현실에서 아들을 알아갈 수 있다면 좋을 수도 있겠다.
미안하게도 꿈이 재생되는 악몽에서 아들이 고의로 교통사고를 내고 초등학생 여아 두 명과 학부모·초등학생을 죽인 살인자가 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 사건에 니체의 ‘위버멘쉬’ 개념이 섞어지고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홀든처럼 되고 싶어 하는 아들이었다면 극적 설정은 매우 흥미로워지는 플롯으로 바꾸게 된다. 무대는 단란해 보이는 평범한 가정집을 비추고 있다.
응접실처럼 보이는 탁자와 무대 전면 좌우측으로는 진우 방과 엄마의 방이 전면으로 분리되고 있다. 그 뒤와 주변은 세탁실로 설정되는 공간에서 극중 인물이 이동하는 것이 벽면 뒤로 보이는 구조다. 진우가 즐겨 입고 다니는 검은색 셔츠는 죽음을 초월해 보이는 수도사처럼 보인다. 전면 구조는 하얀색으로 좌우 공간 벽면은 검정 스크린으로 처리해 마치 평범한 가정처럼 보이면서도 현실과 꿈이 교차하고 공존하는 삶과 죽음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내면서도 단란한 가정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연극에서 사건을 암시하거나 진우와 대화를 시도하는 장면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타임루프 기법으로 파편적으로 진행되면서도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꿈과 현실이 교차하면서도 현실은 엄마의 꿈처럼, 꿈의 이미지는 현실로 연극은 전개된다.
연극 ‘당신은 아들을 모른다’는 사유의 오류들이 극중인물 아들(진우)를 통해 극단적 경향으로 나타난다. 니체의 위버멘쉬 개념이 확증 편향적 정신적 분열성으로 나타나고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과 연결되어 아들 진우의 성장 내면에서 거칠게 자라고 있었던 존재의 부정·고독과 소외·존재의 결핍을 바라보며 아들과의 대화를 시도한다.
마치 현실에서 알 수 없었던 아들의 성장통과 내면들을 타임 루프 기법을 통해 꿈으로 대화를 나누고 그것이 현실이 되는 것처럼 들어난다, 진우는 형이 읽었던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소설을 탐독하고 주인공 홀든 콜필드처럼 가족과 학교 환경에서 분열된 내면성을 보인다.
정신적인 존재였던 형(유현우)은 어린 시절부터 성 정체성에 대한 혼돈과 존재로의 삶을 가족으로부터 회복하지 못하고 분리되어 있다. 학교·집단·가족·동료 커뮤니티로부터 정체성의 결핍과 존재의 모순으로부터 자아는 격리되고 가족과 타인을 통해 보호받을 수 없었던 형의 존재는 마치 소설의 홀든처럼 인간과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극단적인 환멸과 증오·파괴로 나타나고 인간과 사회는 파멸로 재창조되어야 할 대상이 된다.
1951년도에 발표된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은 존 F 케네디 암살자인 리 하비 오스왈드 등 미국의 특정 사건을 일으킨 암살자의 바이블로 읽혀졌던 것처럼 주인공 홀든 콜필드와 진우의 내면은 동일시되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꿈과 현실의 경계를 타임 루프 기법과 극적인 장치로 숨겨 놓으면서도 연극적인 환상을 깨지 않는 것이 이작품의 묘미다. 극적인 반전과 긴장감을 섬세함으로 장면을 이어 붙이는 류주연 연출이 돋보이고 미옥으로 분한 이선주의 연기는 아들을 향한 절박한 절규로 이 시대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엄마의 마음으로 읽히게 만드는 연극이다.
코로나19로 위축되었던 전국 연극 현장이 거리 두기 제한이 풀리면서 연극 무대가 활력을 찾아가고 있다. 주말에 가족과 연극 한편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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