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또 이상한 국경일이 지나갔다. 지난 10월3일은 우리나라의 4354번째 생일이라 할 수 있는 개천절이었다. 그런 뜻깊은 경축행사에 올해도 국가원수인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다. 전두환 대통령까지는 참석했었고, 노태우 대통령 이후에는 국무총리가 대통령 경축사를 대독했고, 2011년 이후에는 그마저 국무총리 경축사로 낮아졌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경일 중에서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경축사를 하는 행사는 삼일절과 광복절뿐으로 둘 다 일본과 관련된 국경일이다. 2013년도엔 대통령의 개천절 행사 참석을 바라는 100만 범국민 서명운동을 벌여 청와대에 청원까지 넣었으나 아직도 요지부동으로 바뀌지 않고 그대로이다.
양력 개천절이 된 이유
일제의 모진 탄압에도 불구하고 대종교에서는 1909년부터 음력 10월 3일을 개천절로 제정해 매년 경축식을 거행했으며,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에서는 건국기원절(建國紀元節)로 명명하고 국경일로 제정해 경축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에도 이를 계승해 개천절을 국경일로 정했다.
그러다가 1949년에 정부 행사 심의과정에서 당시로서는 음력을 양력으로 환산하기가 어렵고 양·음력을 떠나 10월 3일이 소중하다는 취지로 양력 10월 3일을 개천절로 제정했다. 설이나 추석처럼 음력으로 정해놓고 매년 다른 양력 일자를 경축일로 하면 될 것을 굳이 양력 10월 3일을 개천절로 정한 것은 분명한 일제의 잔재였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모든 음력 명절을 양력으로 바꿨다. 우리의 설인 음력 1월 1일을 '구정(舊正)'으로 낮추고 양력 1월 1일을 신정(新正)이라 했으며, 우리의 추석 격인 오봉은 양력 8월 15일이다. 이와 같은 개념으로 제정된 것이 지금의 양력 10월 3일 개천절이었다. 이것이 어찌 일제의 잔재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단군과 상관없는 개천절
그렇다면 개천절이라는 용어는 어디서 유래되었을까? 사학계에서 정사서라고 하는 ‘삼국유사’에는 “환인(桓因)이 서자 환웅(桓雄)에게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면서 삼위태백에 내려보내 다스리게 했다. 환웅이 삼천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에 내려와 신시라 하니 이가 환웅천왕이고, 웅녀 사이에서 난 아들 단군왕검이 경인년에 평양성에 도읍하고 조선(朝鮮)이라 칭했다.”라는 기록이 있다.
‘삼성기전 상’에는 “환웅씨가 일어나 천신의 뜻을 받들어 백산과 흑수 사이에 내려와 신시(神市)에 도읍을 세우고 나라를 배달(倍達)이라 불렀다.”라는 기록과 “단군왕검이 아사달을 도읍으로 하여 나라를 열었으니 조선이라고 불렀다.”라는 기록이 있다.
‘삼성기전 하’에는 “환웅이 3천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에 있는 신단수(神檀樹) 밑에 내려오시니 이곳을 신시라 하고 이 분이 환웅천왕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모두 개천이라는 용어가 없어 개천이 환웅의 나라 세움인지 단군왕검의 나라 세움인지 불분명하다.
고려말에 문하시중을 지낸 행촌 이암 선생이 쓴 ‘단군세기’에 “개천(開天) 1565년 상월(10월) 3일에 이르러 신인왕검(神人王儉)이 단목의 터에 자리를 잡자 백성들 모두가 임금으로 추대하니 단군왕검이라 했다. 신시의 옛 법도를 되찾고 도읍을 아사달(阿斯達)에 정하고 나라를 세워 조선이라 하였다(建邦號朝鮮)”고 기록되어 있다.
단군왕검이 나라를 세운 기원전 2333년을 개천 1565년이라고 했으므로, 개천이란 환웅의 배달국 세움을 뜻하는 것이고 기원전 3898년이다. 따라서 개천절의 주체를 단군이 아닌 환웅으로 바꿔야 옳을 것이다. 환응도 상월(10월)에 나라를 세웠으니까.
단군왕검의 나라 세움을 건국이 아닌 건방(建邦)이라 기록되었으므로 음력 10월 3일을 건방절이라고 명명해야 옳을 것이다. 참고로 國은 울타리가 있는 작은 나라이고, 邦도 나라이지만 울타리가 없는 큰 나라를 뜻한다. 미연방이나 소비에트연방과 같은 의미로 보면 된다.
처음부터 지금의 개천절은 역사기록과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이렇듯 나라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생일에 대한 이름 또는 주체를 잘못 제정해놓고 나라가 잘되기를 바라는 것이야말로 로또와 같은 요행을 바래는 것과 뭐가 다르겠는가! 근본부터 제대로 잘 정리해야 할 것이다.
개천절에 열린 집회들
10월 3일 개천절날 온 국민이 합심해 경건해야 할 날에 서울 도심에서 자유통일당 등 약 3만 명 규모의 보수단체 집회가 열리면서 극심한 교통혼잡이 빚어졌다. 주최 측이 ‘문재인 구속’을 외치자 참가자들은 일제히 ‘아멘’을 외치고는 함성을 질러댔다.
개천절 연휴 첫날인 1일 열린 ‘김건희 특검·윤석열 퇴진’을 외친 촛불대행진에 3만여 명의 시민들이 모였는데, 그에 대한 세력 대결인지 ‘전군구국동지연합회’ ‘태극기 국민혁명 국민운동본부’, 박근혜 전 대통령 명예회복 등을 주장하는 ‘천만인 명예회복 운동본부’ ‘4·15부정선거 국민투쟁본부’ 등 보수단체들의 개천절 집회에도 비슷한 규모의 참가자들이 비가 오는 날씨에도 우비와 우산을 쓰고 광화문을 가득 메웠다.
나라의 생일날에 국조 단군을 기리는 경건하면서도 간단한 의식 따위는 애당초 계획에도 없었을 것이다. 보수와 진보의 이념대결이 너무도 치열한 대한민국, 이래서야 나라가 잘될 턱이 있겠는가! 다들 단군의 이념인 홍익인간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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