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는 기술혁명을 통해 문명의 전환을 가져왔다. 원시 시대에는 수렵기술에 의존해 유목민 생활을 하다가 농업기술의 발달로 정착 생활이 가능한 농경 사회로 발전했다. 19세기 산업혁명 시대에는 산업기술을 기반으로 한 산업사회로 접어들었다. 20세기에는 정보기술(IT)의 발달로 정보 사회로 진입했고, 현재 제4차 산업혁명의 지식정보화 시대로 발전하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과학기술의 혁명적 발달에 기인한 산업혁명과 함께 군사혁신을 창출했다. 새로운 과학기술과 전술을 결합한 군사혁신에 성공한 나라는 전쟁에서 승리해 기존의 세력균형을 와해시켰고, 전쟁에 패배한 국가나 제국은 세력경쟁의 낙오자가 됐다.
이제 4차 산업혁명의 가속화로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새로운 인류 문명이 출현하면서 전쟁 양상과 군사 패러다임도 혁신적으로 전환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런 문명전환 시대에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을 견인하는 첨단 과학기술 잠재력을 활용해 엄중한 북한 위협을 압도적으로 극복하고, 불확실한 주변 안보 환경과 혁신적 변혁을 거듭하는 전쟁 양상에 확고하게 대비할 수 있는 유·무형의 첨단전력 체계를 발전시키는 군사혁신을 추구해야 한다.
군사혁신에서 기술결정론(technological determinism)은 기술이 가치중립적으로 발전하고, 이것이 모든 사회적 변화를 일으키는 촉매라고 생각하는 기술중심 사고방식이다. 군사혁신에서 기술의 발달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며 때로는 기술의 발달이 싸우는 개념과 조직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기술결정론적 관점은 마치 전쟁에 등장한 혁신적인 무기 체계 또는 개념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것처럼 군사혁신의 과정을 단순화시킨다.
과학기술이 군사혁신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할 수는 없으나,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인간적 요소의 중요성이 더욱 증대된다는 점에서 기술결정론적 관점은 한계가 있다. 이런 측면에서 과학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바라보는 관점 중 기술결정론의 한계를 지적하고, 기술의 사회적 형성론(social shaping of technology)에 주목해야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기술의 사회적 형성론은 기술 자체가 사회변화의 원동력이라는 기술결정론과 달리, 기술은 가치중립적으로 발전하지 않으며 사회가 기술의 발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강조한다. 기술이 특정 시기와 장소에서 선택돼 사용된 것은 당대의 사회질서를 반영했기 때문이며, 기술의 발전에 정치·경제·사회적 요인들이 개입돼 기술의 변화속도와 방향성, 기술의 형태 및 결과가 달라진다는 주장이다.
군사혁신의 성공 여부는 오직 전쟁을 통해서만 검증이 가능하므로 전쟁에서 승리하는 무기체계를 미리 예상하고 이를 개발할 수는 없다. 기술의 사회적 형성론적 관점에서 군사혁신이 발생하게 된 정치·사회·지리적 배경에 주목하고 기술발달과의 상관관계에 주목해 특정 국가가 군사혁신에 성공하게 된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
기술의 사회적 형성론이 군사혁신을 바라보는 관점의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점은 MG.녹스와 W.머리의 연구에서 잘 드러난다. 군사혁신의 역사를 살펴볼 때 기술 그 자체만으로 군사혁신을 추진할 수 없었다. 군사혁신은 특정한 적을 상대로, 특정한 전장에서, 특정한 작전·전술적 과제를 목표로 진화적인 문제 해결 노력에서 성취됐다.
군사혁신은 매우 현실적인 군 문화를 바탕으로 형성된 일관성 있는 교리와 개념이 필요하며, 전략의 본성과 전쟁의 본질에 기초하고 한정돼 있다. 군사혁신은 전략의 대체물이 아니라 작전·전술적 수단이다. 전쟁의 본질인 의지의 충돌과 불확실성의 영역을 기술로 제거할 수 없으며, 기술의 도움으로 전투에 승리할지라도 기계가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 없다.
미국과 같은 군사선진국이 추구하는 군사혁신은 우리가 그대로 수용하기에 적절하지 않다. 미국과 우리는 전쟁 수행의 개념과 방식, 군의 규모와 구조, 군사력의 건설과 운용, 군사비의 규모 등 모든 면에서 다르다. 미국은 1990년대 초부터 이러한 기술 중심의 군사기술혁명 개념에 주목하면서 무기체계의 변화에 따른 작전운용 개념과 조직편성을 혁신적으로 발전시키고 상호 결합시킴으로써 군사혁신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군사혁신의 핵심은 전쟁 수행 방식이나 전투 효과성을 과거의 연장선상에서 점진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혁명적으로 변화시키는 성과에 있다. 군사혁신은 ‘군사기술의 혁신’ ‘작전운용 개념의 혁신’ ‘군사조직의 혁신’을 3대 축으로 형성된 개념이다.
오늘날 전시와 평시 구분 없이 발생하는 분쟁의 형태는 분쟁의 개념에 대한 강도에 따라 회색지대 분쟁, 비정규 전쟁, 저강도 분쟁, 전쟁이외의 군사작전(MOOTW), 제4세대 전쟁, 하이브리드 전쟁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회색지대 분쟁은 전통적인 전쟁(War)이나 전(Warfare)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 선전포고 없이 다양한 비정규 부대와 범죄조직과 수단들을 은밀히 혼합해 활용하는 하이브리드전 방식을 구사한다. 상대방으로부터 군사적 대응을 유발하기 직전의 문턱까지 이르지 않는 미묘한 경계선에서 여러 가지 전쟁 수행 수단들을 혼합하면서 교묘하고 신중하게 행동하면서 군사적 개입을 집요하게 부인하며 상대방의 판단에 혼란을 조성함으로써 모호한 상황을 연출한다.
북한이 세계 분쟁 추세에 주목하면서 전략과 전술을 변화시켜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러시아와 이슬람국가(IS)를 참고해 한반도에서 하이브리드전을 구상하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북한 대비 한·미 연합 전력의 총체적 전력 및 전쟁 수행 능력 면에서 우위를 극복하기 위해 북한은 핵개발을 추진해 왔으며, 하이브리드전을 수행할 것이 예상된다.
따라서 회색지대 분쟁을 포괄하는 하이브리드 전쟁 상황에서 우리 군은 기술의 사회적 형성론적 관점에서 군사혁신이 발생하게 된 정치·사회·지리적 배경에 관심을 갖고 기술발전과의 상관관계에 주목하면서 포괄적 군사혁신을 추구해야 한다. 장차 한반도에서 예상되는 하이브리드전 양상에 대비해 우리의 독자적인 군사사상을 정립해야 한다. 또 북한의 분란전(Insurgency Warfare) 전략에 대비하면서 단기속전의 군사전략을 개발하고, 다영역 통합 단기 속전전승의 합동작전개념을 발전시키며, 전투력의 변혁을 위해서 장병의 정신전력교육 체계 개선, 군 구조 및 전력 체계의 혁신을 이뤄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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