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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이의 도시인문학
새벽 배송과 도시 공간의 조우
택배 서비스로 새 공간 출현… 공간 구성 방식 다양해져
일상을 담아내는 도시 공간과 조화로운 관계 만들어야
유영이 필진페이지 + 입력 2022-10-12 10:54:08
 
▲ 유영이 ‘다이얼로그: 전시와 도시 사이’ 저자
태풍의 영향으로 외출을 자제하라는 기상 예보가 나왔다. 여러 기업에서는 재택근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나섰고, 학교는 휴교하는 등 야외 이동을 줄이려는 다양한 시도가 이어졌다. 속보가 계속되는 뉴스를 보며 태풍에 대비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또 다른 행동이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하던 중, 새벽 배송이 떠올랐다. 당장 내일 아침, 주문해 놓은 식재료가 문 앞에 배달될 예정이었다. 누군가가 나 때문에 태풍으로 인한 바람과 폭우를 뚫고 고생한다는 생각에 당장 취소 버튼을 눌렀다. 열악한 날씨에 이동이 어려운 건 나뿐만 아니라 우리 집 문 앞을 다녀가는 단골손님, 택배 기사님께도 마찬가지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집과 집이 연결된 아파트 복도는 우리나라에서 매우 흥미로운 공간 중 하나이다. 우리 집 문밖 복도는 모두의 공간인 것 같지만 때론 나와 택배 기사님, 또 다른 이웃을 위한 공동의 관심이 필요한 장소가 된다. 자전거와 유모차를 놓는 우리 집 앞마당이자 창고처럼 쓰이다가도, 택배를 맞이할 때면 같은 공간 다른 시간대의 두 사람이 하나의 물건을 통해 교류하는 장이 되기도 한다.
 
공동 주택의 현관문과 우리집 현관문 사이에선 다양한 공적·사적 경험의 교차가 발생한다. 택배 도시 현상을 “도시의 기능이 플랫폼에 기반을 둔 사물 모빌리티에 의존하는 도시”로 정의하고 연구를 수행한 김리원 박사는 새벽 배송이 이루어지는 현관문을 흥미롭게 해석한 바 있다. 
 
활동이 주로 이루어지는 시간대와 달리 새벽이라는 시간에 공동 주택의 현관문을 열고 문 앞에 물품을 배송하는 시스템은 현관문이 단순히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을 구분하는 경계를 넘어 배송 수령자의 사적 공간 내부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온라인 공간에서 진행된 소비의 결과가 실제 수령자의 사적 공간에서 재현되는 현상으로서 가상 공간의 집이 실존적인 공간으로 이동된다는 해석을 제시한 연구자도 존재한다.
 
▲ 활발해진 택배 서비스는 새로운 도시의 풍경을 만들었다. © Brettjordan
  
이처럼 배송은 단순히 물건의 이동이 아닌, 새로운 공간의 출현과 공간을 구성하는 방식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낳는다. 기술의 발달은 생활양식을 변화시키고, 이는 우리가 실제 두 발을 딛고, 경계를 구획하여 살아가는 공간의 문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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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송뿐만 아니라 만남을 위해 우리가 인지하는 장소도 달라진다. 과거 휴대폰이 없던 시절, 번화가의 대형 서점이나 카페 등 누구나 아는 장소는 약속을 위해 만나는 첫 지점으로 활용되었다. 누구나 쉽게 인지하기 쉬워 찾아올 수 있으며, 그곳에서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적당한 규모의 시야가 확보되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서로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이러한 공통으로 인식된 장소는 또 다르게 활용되고 있다. 바로 중고 물품 거래를 위한 만남의 장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중고 장터의 직접 거래는 낯선 이와 만나는 짧은 거래를 성사하기 위해 만남이 용이한 장소를 택한다. 큰 물품의 경우는 지하 주차장, 혹은 집 바로 앞까지 거래를 위해 낯선 이의 접근을 허락하기도 한다. 중간 지점에서의 거래는 동네에서 인지하기 쉬운 장소를 활용한다. 
 
너무 혼잡하지도 않고 사람의 이동이 너무 적지도 않은, 낯선 이와의 접촉이 비교적 안전하고 수월한 장소가 선택된다. 얼굴을 모르는 택배 기사에게 허용되는 범위는 또 다른 기준이 적용되는 것이다. 새벽배송과 택배, 중고 물품 거래 등 다양한 물건의 이동이 우리 삶의 공간을 재편하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시대를 반영하는 사회적인 행동 양식과 공간의 관계를 조명하는 학문적 접근은 아직 초입의 단계다. 특히 주요한 시설이나 공간 이외의 생활양식을 통해 새롭게 등장하는 소외된 공간에 대한 연구는 더욱 활발하지 못했다.
 
이러한 가운데 1970년대 후반, 건축가 로빈 에반스가 건축 평면을 통해 16세기 이탈리아의 생활양식을 읽고자 시도한 결과가 흥미롭게 다가온다. 그는 에세이 제목 ‘평면과 문, 통로’처럼 건축 평면, 특히 복도(통로)의 의미와 구성에 대해 논한다. 추상 공간에서 구체적인 일상의 이야기에 집중하며 건축 평면을 통해 인간관계를 고찰했다.
 
특히 에반스는 라파엘의 빌라 마다마 평면을 통해 16세기 이탈리아 건축물의 특이점을 발견해 냈다. 각 방에는 1개 이상의 문이 있고, 이동만을 위해 존재하는 독립된 방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방안에 혼자 있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모두가 어우러져 항상 같이 생활했던 16세기의 일상을 건축 평면에서 읽어 냈다.
 
그 이후 시대의 복도를 탐구하며 에반스는 방과 방 사이를 잇는 단순 통로로 활용되며 서로를 분리하는 복도의 시초를 찾아낸다. 독립적인 복도가 기록에 등장한 것은 16세기 후반, 17세기 초반부터이며 당시 계급적 구분을 이유로 주인과 분리되어 이동하는 하인을 위한 공간이 독립된 통로의 시작임을 묘사하고 있다. 
 
이는 우연한 만남을 배제하는 장치로서 16세기 이탈리아의 복도와는 차이를 갖는다. 즉 시대의 생활양식은 건축적 평면에 녹아들어 우리 일상의 무대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중고 물품 거래를 위해 공통으로 인식하는 장소, 일시적으로 개방되는 우리집 현관, 서로 마주치지 않으려 시간대를 나누는 방식 등 공간을 규정하고 활용하는 다양한 방법이 지금 이 시대 일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택배 물품 수령을 위해 보조적으로 등장한 무인택배함은 사적 공간의 일시적 허용을 재편하는 방안으로 또 다른 양식의 공간을 만들었다.
 
‘사람은 도시를 만들고, 도시는 사람을 만든다’는 도시계획가 얀 겔의 말처럼, 우리는 다양한 일상을 공간에 녹이고 공간을 우리의 삶에 담아내며 관계를 맺고 있다. 일상이 짓는 도시 공간에 대한 모두의 관심, 일상을 위한 무대로 더욱 겸허한 건축의 조화가 이 시대의 양식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방안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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