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마무리하는 각종 송년 모임에 달력에 일정 정리하기 바쁜 시기가 돌아왔다. 백신 접종 유무에 따라 인원 제한이 있던 과거에 비하면, 송년 모임을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 감사하기까지 하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각종 시설에 방문할 수 있게 되면서 영화관·극장가도 사람들이 붐비고 있다. 영화관의 묘미인 팝콘 없이 띄엄띄엄 서로 경계하기 바빴던 예년과는 다른 모습이다. 연말을 알리는 대형 영화의 개봉 기사와 휴가를 쓰면서까지 영화관을 방문한다는 관객의 기사가 반갑다. 각종 문화예술 행사도 한해의 마지막을 알리며 크리스마스와 송년을 이유로 다양한 곳에서 관객을 맞이하고 있다.
조명이 어우러진 밤거리를 걷던 중, 광화문 인근 거리에서 한 배너를 만났다. 각종 송년회를 맞아서 한 레스토랑에서 주최한 공연에 ‘최고의 가성비로 즐기는 공연’이라는 글씨가 크게 쓰여 있었다. 정식 공연장은 아니지만 연주자들은 부디 뒷문으로 출입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무대를 만드는 이들, 음악으로 공간을 채우는 이들에 대한 존중이 없는 레스토랑의 홍보 문구가 다소 아쉬웠다. 하지만 무대에 올라서는 이들이 아닌 관객만을 고려하는 모습이 공연장 밖에서만의 문제일까.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며 새로운 클래식 공연장이 들어섰다. 도시를 대표하는 시설로서 최고의 음향 환경을 조성했다고 하지만 무대 크기는 공연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못한 면이 아쉬움을 자아냈다. 오케스트라 대편성이 설 수 없는 면적인지라 공연 프로그램 또한 공간의 크기만큼 구성할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된다. 알프스 산맥의 소몰이에서부터 거대한 천둥,번개 소리를 담은 말러 교향곡은 무대가 협소하다는 이유로 연주될 수 없다.
또 다른 공연장은 대기 공간이 문제다. 대기실은 단순히 옷을 갈아입고 악기를 보관하기 위한 장소가 아니라 가수나 연주자가 막간의 연습과 마음가짐을 다스리며 공연의 완성도를 높이는 공간이다. 하지만 창고를 억지로 개조해 만든 분위기에서 연주자들이 어떤 준비를 할 수 있을까.
좋은 공연장의 공간은 무대뿐만 아니라 대기실까지 공연을 만드는 이와 보는 이 사이의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공연장의 불이 꺼지면 청중은 사라지고 조명과 음악과 함께 공연이 주인공이 된다. 동시에 조명 밖, 무대 뒤에 있는 사람들이 공간을 공유하며 무대를 다함께 만들어 나가고 있다. 공연은 관객과 연주자가 만나는 지점 이전에 연주자가 연주로서 공간을 채우는 과정이 먼저 이루어진다.
인상 깊었던 공연장 중 한 곳은, 일반 상가에 위치한 300석의 소공연장임에도 불구하고 대형 화물 엘리베이터를 자랑했다. 하프와 같은 대형 악기가 공연장에 들어설 수 있도록 조성 당시부터 어떤 음악이 공연될 것인가를 고민한 결과이다. 공연장 위층에는 출연진을 위한 별도의 휴식 공간이 펜트하우스처럼 마련되어 있다. 여독을 풀어야 제대로 된 연주가 가능하다는 생각으로 공연장이 조성된 이유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공연장 이외 문화예술시설에서도 공간을 조성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관람의 대상 자체를 생략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햇빛이 가득 들어오는 도서관은 따가운 햇빛과 함께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싶은 독자를 위해 안성맞춤일 것이다. 그러나 보존할 가치가 높은 도서가 놓여있다면 이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 된다. 반드시 햇빛은 차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책이 누군가에게 독서로 소비되는 대상이라는 점에만 집중한 나머지, 보존·관리되어야 하는 대상임을 잊어버리곤 한다. 한 문학관에서는 유리 창문에 햇빛을 가리기 위해 블라인드를 내렸다는 이유로 건축가와 학예사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누구의 말이 맞는지는 독자의 판단에 맡기기로 한다. 이는 결국 책에 대한 존중 의식이 없는 데에서 나오는 결과다.
미술관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등장한다. 지하에 위치한 미술관의 천창을 투명한 소재로 만들어 지상에서 걸어 다니는 사람들도 지하에 놓인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설계안이 제시되었다. 담당자들을 선호했다고 하지만 전시를 운영해 본 이들은 놀랍다는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직사광선에 노출될 수 있는 이곳에 들어서는 작품에는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전시될 작품보다, 바깥을 지나는 행인이 관람할 권리가 우선순위에 놓이면 작품이 훼손될 수 있는 미술 전시 공간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햇빛이 내리쬐는 도서관과 마찬가지로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 이외, 그 이용의 대상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는 데에서 기인한 상황이다.
일본의 한 방송에서 최악의 주택을 다루며 건축가에게 의뢰하며 고심 끝에 만들어졌지만 사람이 살기 불편한 사연 있는 집이 나온다. 한 예로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집안 모든 곳에서 볼 수 있게 만들어달라는 건축주의 주문을 그대로 실현한 집이 등장했다. 100% 투명한 재질로 만들어진 집이 나와 집주인이 사생활 관리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집에 거주할 사람에 대한 고려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아쉬움이 프로그램 전반에 그려진다.
집이라는 공간은 집에 사는 사람이 우선이라는 생각은 기본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우리는 문화예술시설에 놓여 사람의 공간에 함께하는 음악과 미술 작품, 책과 같은 다른 요소에 대해서는 간과하곤 한다. 관객만을 우선시하는 공연장·도서관·전시관이 아닌 관객이 적절한 환경에서 누려야 할 감상의 대상을 함께 생각하는 태도를 돌아봐야 하겠다. 또한 그 대상을 만드는 작가·연주자에 대한 공간적 배려가 필요하다. 예술에 대한 존중, 예술가에 대한 존중이 예술을 위한 공간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한다.
후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