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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수의 新삼국사 산책
소지왕의 무덤을 찾아서
경주 외곽 금척리고분군 48호분이 유력
정재수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1-06 09:15:25
▲ 정재수 역사작가
     
경주 대릉원 일원의 노동·노서지구(옛 노동리·노서리 고분)는 자비왕·소지왕·지증왕 등 마립간계열 후반기에 조성된 무덤군이다. 이곳에는 자비왕의 무덤인 봉황대(갈천릉)와 지증왕의 무덤인 서봉황대(지증릉)는 있지만 소지왕의 무덤은 없다. 소지왕은 대릉원 일원이 아닌 다른 곳에 무덤을 썼다. 그런데 노동·노서지구의 무덤 분포를 보면 무덤 자체가 없는 배타적 공간이 따로 존재한다. 소지왕의 원래 무덤 예정지로 추정되는 곳이다.
 
‘신라사초’의 소지왕릉 기록
 
‘신라사초’가 기록한 소지왕의 무덤이다. <지증대제기>이다. ‘2년(서기 501년) 백사 신사 3월 태왕(소지왕)을 이동천궁릉에 장사지냈다(二年 白蛇 辛巳 三月 葬太王 于伊同天宮陵).’ 소지왕의 무덤은 이동천궁릉(伊同天宮陵)이다. 이동(伊同)은 장지(葬地)의 이름이며 천궁(天宮)은 서기 490년(소지왕 12년) 천궁(제1왕후)에 봉해진 지도로(지증왕)의 딸 후황(厚凰)을 지칭한다. 천궁 후황은 소지왕보다 한 해 먼저(499년) 사망해 이동(伊同)에 장사지냈다(葬天宮于伊同). 소지왕의 무덤은 이동(伊同)에 있는 왕후 천궁(후황)의 무덤에 연접해 만든 쌍무덤(표형)이다.
 
 
▲ 소지왕의 무덤 예정지. [사진=필자 제공]
  
이동은 신라6부 모량부의 집산지
 
이동(伊同)은 진한6부의 하나인 모량부(牟梁部)의 집산지이다. 시조인 촌장 구례마(仇禮馬)는 신라 개국시 이산(伊山)에 내려와 무산대수촌(茂山大樹村)을 형성했다. ‘신라사초’가 말하는 이동은 바로 이산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특히 무산대수촌은 신라 유리왕(2대) 때 모량부로 명칭이 변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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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량부(무산대수촌) 지역은 현재의 경주 서쪽에 위치한 건천읍·현곡면·서면·산내면 등이다. 건천읍에는 모량리란 지명이 지금도 남아있다. 특히 현곡면에 있는 구미산(龜尾山)은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가 득도한 곳으로 과거 신라 때에는 이산(伊山)으로 불린 산이다. 바로 모량부 시조 구례마가 내려온 이산이다.
 
경주 금척리고분
 
경주 금척리고분은 경주 대릉원에서 서쪽으로 17㎞ 지점으로 옛 모량부가 있었던 지금의 건천읍 평지에 조성된 신라 고분군이다. ‘금척(金尺)’이란 명칭은 시조 박혁거세가 하늘로부터 받은 금으로 만든 자(尺)를 40여 개의 가짜 무덤을 만들어 숨겨놓았다는 전설에서 기인한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적어도 당시 신라사회가 이 고분군을 매우 중요시 여겨 고분 보호에 힘써왔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 금척리고분과 경주대릉원. [사진=필자 제공]
  
현재 확인된 무덤은 모두 52기이다. 다만 중앙을 가로지르는 도로로 인해 고분군은 양분돼 있다. 도로를 따라 북쪽에는 22기, 남쪽에는 30기가 존재한다. 개별 무덤의 명칭은 따로 없으나 북쪽에서 남쪽으로 일련번호를 부여해 분류하고 있다. 발굴은 1952년·1976년·1981년 등 3차례 이루어졌고, 주로 북쪽과 동남쪽의 소형급 무덤을 조사했다. 금제귀고리(金製耳飾), 곡옥장식목걸이(曲玉附頸飾), 은제허리띠(銀製銙帶) 등이 출토됐다.
 
금척리고분의 무덤양식은 일부 목곽묘(木槨墓)도 있으나 대부분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에 걸쳐 조성된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이다. 학계는 이 고분군을 모량부 출신의 신라귀족 무덤군으로 보고 있다.
 
소지왕릉은 48호분이 유력
 
특히 남쪽 고분들은 북쪽 고분들에 비해 비교적 규모가 크다. 고분 내 유일하게 존재하는 쌍무덤인 48호분은 지름 39.6m의 홑무덤 2개를 붙여 만든 전체길이 57.9m의 대형급 무덤이다. 경주 대릉원의 황남대총(쌍무덤)과 비교해 다소 크기만 작을 뿐 전체적인 외형은 마치 쌍둥이처럼 똑같다.
 
특히 주변 고분들의 배치를 보면 48호분(쌍무덤)을 기준으로 북서쪽에 홑무덤인 36호분(35.9m), 38호분(37.7m), 39호분(41.1m), 42호분(43.8m), 44호분(42.9m) 등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펼쳐져 있다. 이들 역시 모두 지름 35m~45m의 대형급 무덤으로 48호분 무덤주인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일종의 딸린무덤(배총)들이다.
 
 
▲ 금척리고분의 주요 무덤. [사진=필자 제공]
  
쌍무덤 48호분은 소지왕과 소지왕의 제1왕후(천궁) 후황(厚皇)의 연접묘이다. ‘신라사초’가 ‘이동천궁릉’으로 표기한 바로 소지왕의 무덤 이동릉(소지왕릉)이다. 또한 주변의 딸린무덤은 소지왕의 왕후(최대 9명)와 후궁 그리고 직계자손의 무덤들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소지왕은 굳이 경주 대릉원의 원래 예정지를 놔두고 천궁 후황을 뒤따라 멀리 이동(伊同)에다 능을 썼을까? <지증대제기>는 다음과 같이 그 연유를 밝히고 있다. ‘태왕은 성품이 온화하고 공손하여 마치 부인과 같았다. 태후(파호)에게 효를 다했으며 즉위이후 내실을 좋아해 많은 총애를 내린 까닭에 덕을 잃는 구실이 됐다. 후황(厚皇)을 총애한 이래 다른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다. 정령(政令)이 그 의중에서 하나로 나왔다. 급기야 후황이 붕하니 비록 벽화(碧花)를 맞아들였으나 그녀에 대한 애한이 남았던지라 어렵게 지내다가 붕하니 이 역시 하늘의 정함인가(太王性溫恭若婦人 事太后至孝 及卽位 好內多寵 稍有損德目 厚凰承寵以來 不暇他愛 政令一出其意 及其崩 雖納碧花 而猶以患哀 度日而崩 其或天定).’
 
소지왕은 천궁 후황을 무척 사랑했다. 그래서 사후에까지 후황과 함께하기 위해 무덤을 같이 썼다.
 
경주 금척리고분 48호분은 소지왕과 천궁(왕후) 후황의 쌍무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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