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맞았다. 올해는 국가보훈처가 국가보훈부로 격상되고, 엄중한 안보 상황 속에서 6·25전쟁의 종전협정 70년(7월 27일)을 앞두고 있어 더욱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이 시점에 반드시 짚어봐야 할 문제가 있다. 6·25전쟁에 대한 명칭이 아직도 혼란스러운 점이다.
공식적인 명칭은 6·25전쟁이다. 교과서에 그렇게 나와 있고 국사편찬위원회 국방부 등 관련 공공기관들이 채택하고 있다. 과거에는 6·25사변 6·25동란 같은 말이 사용되다가 6·25전쟁이 국가 공식어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6·25전쟁’과 ‘한국전쟁’ 두 명칭이 혼용되고 있다.
대중이 자주 접하는 언론매체에서 어느 쪽을 많이 사용하는지 ‘빅카인즈’라는 뉴스 분석시스템에서 찾아봤다. ‘6·25전쟁’을 검색어로 입력한 결과 1990년 이후 총 7만3234건의 뉴스가 나왔다. 반면에 ‘한국전쟁’을 입력해보니 그보다 1.75배에 달하는 12만8245건이 검색됐다. 여기서는 ‘한국전쟁’이 더 큰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어느 쪽이든 의사소통만 이뤄지면 됐지 뭐가 문제냐는 시각이 있을 수 있다. 결코 그렇지 않다. 6·25전쟁은 한국 현대사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명칭을 어떻게 부르느냐는 우리 사회가 공유하는 역사인식의 반영일 수밖에 없고, 명칭에 따라 새롭게 공감대가 형성되어 간다. 이른바 ‘정명(正名)’, ‘바른 이름’이 중요한 이유다.
‘6·25전쟁’인가 ‘한국전쟁’인가를 놓고 벌어지는 줄다리기는 물밑에서 치열하게 전개되어 왔다. 이제 학계에서는 거의 ‘한국전쟁’으로 굳어졌고 좌파 성향 언론들도 ‘한국전쟁’을 고집한다. 하지만 이 명칭에는 여러 모순점이 존재한다.
한국전쟁은 국제학계에서 쓰는 명칭인 ‘Korean War’의 번역어에서 출발했다. 외부인 시각에서는 한국에서 벌어진 전쟁이니까 한국전쟁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우리가 한반도 내부에서 일어난 이 비극적인 사건을 마치 남의 나라 전쟁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무엇보다 우스꽝스럽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전쟁도 한국 등 제3국에서는 부쩍 ‘우크라이나 전쟁’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절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이 전쟁의 명칭에 대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 정도를 선호할 것이고, 최대한 양보하더라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선에서 그칠 수밖에 없다.
한국전쟁이라는 말이 연상시키는 의미에는 중대한 결함이 있다. 한국은 대한민국의 약칭이므로 한국전쟁이라고 하면 먼저 남한(대한민국) 내부에서 일어난 전쟁을 떠올리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누가 전쟁을 일으켰는지 책임이 모호해진다. 또 역사적 사실과는 정반대로 한국이 북한을 침략한 것으로 왜곡될 수도 있다. 전쟁이 남한에서 발생해 북한 지역으로 확대됐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역사적 사건의 명칭을 부여할 때 전통적으로 발생 날짜나 연도를 명기하는 방식을 택해온 것과도 어긋난다. 3·1운동, 4·19혁명, 임진왜란 같은 작명 방식이 우리에게 익숙하다. 임진왜란의 경우 한때 ‘7년 전쟁’으로 바꿨으나 어색하다는 지적에 따라 원래대로 회귀한 바 있다.
한국전쟁이라는 명칭이 ‘대세’를 장악하게 된 것은 좌파 진영이 오랫동안 여기에 매달린 결과다. 이들은 ‘6·25전쟁’에 ‘보수적 명칭’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이름에 냉전·증오·분단의 논리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남침 날짜를 넣은 것이 거슬렸던 그들이 ‘6·25전쟁’ 대신 부각시킨 것이 ‘한국전쟁’이었다.
‘이름 뒤집기’ 전략에 강력한 동력을 제공한 것은 미국의 좌파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 교수가 지은 ‘한국전쟁의 기원’이라는 책이었다. 친북·반미의 물결이 거셌던 1980년대에 나온 이 책은 6·25전쟁의 ‘기원’을 북한이 아닌, 미국의 제국주의에서 찾았다. ‘북한의 남침’에 면죄부를 준 꼴이었다. 좌파 진영에서 ‘한국전쟁’을 선호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1990년대에 구소련의 기밀문서가 공개되고 6·25전쟁이 소련·북한·중국의 사전 모의로 기획됐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나면서 이런 역사관은 허구로 귀결됐다. 가치중립적인 측면에서도 ‘6·25전쟁’이 더 설득력이 있다. 북한의 침략 사실을 드러내지 않기 위한 의도에서 선택된 ‘한국전쟁’이야말로 이념적·정치적 명칭이다. 이에 비하면 발생 시점을 담은 ‘6·25전쟁’은 전쟁을 직접 체험한 세대부터 이후 세대에 이르기까지 오래 정착되어온 보편성을 지닌다.
물론 남북통일과 화해 등 한반도 미래를 염두에 둔다면 ‘6·25전쟁’이 완벽한 명칭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미래는 정확한 사실 인식의 바탕 위에서 출발해야 힘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명칭을 굳이 피할 이유는 없다. 두 명칭을 비교하면 선택은 분명하다. ‘6·25전쟁’으로 빨리 일원화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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