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26-09-28 20:30
뉴스 > 연재기획
[이재언의 문화방담] ‘아홉 번째 하늘’을 품은 백령도의 하늘
서해 섬 백령도를 12년간 호소력 있게 그려온 작가 최정숙
온 우주를 품은 하늬바람 하늘의 호연지기를 담은 신작들 연이어 발표
부모님 집터를 문화공간으로 꾸미는 계획은 또 하나의 동기부여
이재언 필진페이지 + 입력 2023-09-01 06:31:30
▲ 이재언 미술평론가
약 한 달 전인 7월27일은 정전된 지 어언 70년이 되는 날이었다. 여러 가지 제의나 논의 같은 게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조용히 그냥 지나간 느낌이다. 남북 양쪽이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공방전으로 지쳐 휴전 합의에 서명했을  당시 대치와 분단이 이렇게 고착화될 것이라 누가 예상했을까. 
정전과 관련해 문득 생각나는 작가가 있다. 서양화가 최정숙(68), 그의 송도 작업실 문을 두드렸다.
 
작가와 부군(이흥우박사)이 함께 설립한 ‘(사)해반문화’가 올해 7월 백령도에서 문화재청 후원으로 대규모 문화행사(생생문화제)를 개최한 바 있다. 이 행사의 일환으로 백령도 사랑을 담은 볼륨이 큰 드로잉북을 출간하기도 했다. 13년째 백령도를 집중적으로 그리다 보니 그는 어느새 ‘백령도 화가’가 되었다. 의식적으로 그리한 것도 아닐 테고, 그리는 게 업인지라 그리기에 몰입해 있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 ‘백령도 화가’가 된 것이다.
 
▲ 태초의 바다, 120x176cm, 판넬에 사진, 2006.
 
▲ 작은 우주들, 75x175cm, 혼합재료, 2010.
  
물론 작가는 백령도와 깊은 인연이 있다. 어렸을 때 살았고, 부모님 고향이자 오랜 공직생활을 한 곳으로 즐겨 드나들었던 곳이다. 마침 유산으로 남겨진 제법 괜찮은 집터를 어떻게 의미 있게 활용할까를 형제들과 고민하던 때 절호의 계기가 찾아왔다. 2011년 백령도에서 펼쳐진 ‘서해평화프로젝트’다. 여기에 참여하게 된 작가는 참여 자체가 감격스러웠다 한다. 분단 전 살았던 지척의 장산곶 마루를 바라보며 눈물짓곤 했던 부모님의 백령도, 그리고 하늬바람을 안은 바다의 감회가 그 어느 때보다 새로웠다 한다. 그곳은 영혼의 고향 같은 곳이다. 백령도에서 평화를 염원하는 것은 개인적 인연도 중요한 배경이지만 분단이라는 모순에 처한 이 민족 현실의 대명제가 더 주된 동기가 되었을 것이다. 백령도의 가치를 논할 때 자연환경과 지정학적·역사적 배경 등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다. 요컨대 그곳에 다녀오면 누구라도 평화를 갈망하는 사도가 될 수밖에 없다.
 
▲ 아버지의 바다, 120x66cm, 유화, 2011.
 
▲ 아버지의 바다 116.7x91cm, 유화, 2012.
 
작가는 그런 계기와 심경으로 백령도에 몰입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12년 동안 그린 것이 무려 300여 점에 이른다. 이번 여름 출간한 드로잉집 ‘태고의 지구, 백령도에서 우주를 보다’에 실린 드로잉 작품들을 보면 그가 백령도를 얼마나 따뜻하고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그 섬에 얼마나 깊이 매료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책장을 연달아 넘기면 마치 파노라마를 활동사진으로 보는 것 같이 방대한 분량과 다채로운 감각의 컨텐츠들이 줄지어 나타난다. 드로잉은 보통 페인팅에 비해 다소 가볍고 단조롭다 보니 드로잉의 가치를 간과하는 일이 많다. 드로잉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일까. 한 점의 드로잉은 보통 페인팅 대여섯 점의 연작을 낳는 청사진 혹은 지침서로서의 역할을 한다. 사생(寫生) 자체에 그러한 잠재태가 농축돼 있기 때문이다.   
 
광고
최정숙 작가의 페인팅을 보면 자신의 내면이 화면에 고스란히 이입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분히 모네를 연상시키는 인상주의적인 색조와 중간혼합, 그리고 표현주의적인 힘찬 필치와 마티엘 등이 협업하여 섬과 바다를 그리고 있다. 하나같이 환상 내지는 꿈결 속 풍경이다. 사곶·곡도·두무진·연봉바위…. 하늬바람과 바다가 휘감고 있는 절경들에 닿는 햇빛과 달빛·별빛의 오묘한 조화를 담느라 얼마나 분주했을지 짐작이 간다. 세간에 널리 알려진 명승지만이 아니다. 조그만 바위나 들꽃 한 송이조차도 애정으로 바라보는 대상들이다. 그야말로 한 점 바람이나 한 줌 모래조차도 영감을 주는 세계로 그려지고 있다.
 
▲ 별 내리는 섬-백령, 100x40cm, 유화, 2013.
 
▲ 별 내리는 섬, 97x194cm, 유화, 2017.
 
특히 별밤 풍경은 각별하다. 성운이 바다 위로 쏟아지는 바다의 밤하늘이 주는 감동을 담아낸 그림들이 근작들 가운데 많다. 그러고 보니 작가는 백령도에 몰입하기 직전까지 우주를 주제로 작업을 많이 했던 것이 생각난다. 퍼즐 블록과 격자 구조 내에 작은 원형 유니트들이 성좌를 이루는 추상작업으로, 우주 안에 무수히 많은 우주가 또 존재하는 상대주의적 구조를 이루고 있는 것들이다. 튕기고 뿌리는 잭슨 폴록의 추상적 드리핑이 여기서는 엄연한 재현의 양식이 된다. 작가의 화면은 추상의 극단으로 가면서도 가장 사실적인 재현이 되기도 하는 접점을 이루고 있다.
 
▲ 두무진, 33X77cm, 유화, 2018.
 
▲ 하늬-어머니 시집 오던 날, 162X130cmX3ea, 유화, 2019.
 
▲ 진촌 동고몰, 종이에 드로잉, 2014.
  
다시금 우주를 소환하는 장이 바로 백령도이다. 과거 블록이나 기하구조에 차곡차곡 정돈해 두었던 우주 유니트들이 바다의 밤하늘에 점으로 산화하여 무한 방출되고 있다. 작가의 가슴은 하늬바람 부는 바다를 품었고 바다의 하늘은 온 우주를 품었으니 이 순환에서 오는 기운을 우리는 호연지기(浩然之氣)라 부를 수 있다. 그의 그림들 앞에 서면 울컥하는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 지금의 긴장이 가시지 않은 모순의 상황과 극한의 대비를 이루는 숭고한 장관이기에 더욱 그렇다. 바다의 표면으로 쏟아지는 오로라 같은 성운을 마주할 때 알퐁스 도데의 ‘별’을 읽었을 때의 애틋했던 감정으로 돌아갈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곳의 공기가 그렇게 목가적이지는 않고 심경 또한 단순하지가 않다. 애틋함보다는 숭고하고 경건한 감정이 더 어울린다.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천국 문 앞의 마지막 ‘아홉 번째 하늘’(원동천·Cielo cristallino o Primo mobile)과도 같은 바로 그 환희의 하늘을 북녘의 동포들도 느꼈으면 하는 소망을 가득 담고 있으니 말이다. 
 
▲ 필자와 대담 중인 최정숙 작가.
작가가 조심스럽게 준비하는 또 하나의 프로젝트가 있다. 부모님이 살았던 집터를 문화공간으로 가꾸는 계획이다. 망향의 한을 안고 돌아가신 부모님의 발자취를 추억하면서 주민들과 함께 향유하는 문화공간을 조성하는 일이다. 작가는 7월에 있었던 백령도 문화행사에서 섬주민들이 자기 일처럼 적극 동참한 데 힘입어 모종의 책임감까지 갖게 되었다 한다. 작가가 백령도를 그리는 것은 단순히 자연경관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장황한 마니페스토나 선언 같은 것이 아니라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원형적 정서에 어필하고 가슴으로 공감하도록 하는 호소력을 담기 위해 작가의 가슴과 눈과 손과 발은 오늘도 분주하고 치열하다. 
 
후원하기
  • 정기 후원
  • 일반 후원
  • 무통장입금: 하나은행 158-910019-39504 스카이데일리
  • 스카이데일리는 공공성에 기반해 독자가 만들어 가는 언론을 지향합니다. 정기 또는 일반 후원시 맞춤형 뉴스, 독자에게 할당하는 지면 서비스, 동행하는 홍보, 유상증자시 참여기회 제공(법인에 한함)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1
좋아요
1
감동이에요
2
화나요
0
슬퍼요
0
댓글 : 0
방문수(PC&모바일)
오늘(실시간) 128,785 ▶
어제 140,329 ▶
최근 7일 ▶
대한민국 명사들
대면 기회를 가져보세요.
팬클럽 가기
오늘자 스카이데일리



주요 섹션 기사
주소 : 서울시 서초구 방배천로2안길 82(방배동 463-18) 청송빌딩 3,4층 | 전화 : 02-522-6595~6 | 팩스 : 02-522-6597
종합일간지 등록번호 : 서울시 가50131,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시 아01703, 등록일 : 2011년 7월 18일
발행·편집인: 민경두, 편집국장 : 주경준, 사업자 번호 : 214-88-81099 후원계좌 : 158-910019-39504(하나은행)
copyrightⓒ2011, All rights reserved. Contact : skyedaily@skyedaily.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진강
본지는 한국신문윤리위원회의 서약사로서 신문윤리강령을 준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