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는 좌익 세력과 좌익 경력자들이 정치권 및 정부에 까지 진출하여 합법 영역에서 좌익운동의 영향력을 국가 전반에 확산시킨 시기라고 할 수 있다.
1998년 출범한 김대중정부가 역대 정부와는 달리 전향적으로 대북 포용정책(일명 햇볕정책)과 내부에서는 좌파 포용정책을 전개한 것이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 물론 김영삼정부 때 좌익 경력자들이 제도 정치권에 인입되었지만, 김대중정부 때는 이와 차별화되어 양적·질적 면에서 좌익 세력이 블랙홀에 빨려들 듯 정부 및 제도 정치권에 대거 안착(安着)하게 된다.
특히 2000년 ‘6.15 공동선언’ 채택으로 그동안 불온시되었던 연방제가 ‘남측의 연합제와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제와의 절충’이라는 표현으로 공식화된 사실은 종북 좌익들을 크게 고무시켰다. 이제 합법 영역에서도 연방제 통일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된 것이다. 당시 종북 통일전선체의 주도격인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의 정치방침서(3년의 계획·10년의 전망)인 이른바 ‘군자산의 약속’(일명 ‘9월 테제’)이 이를 확인해 준다.
군자산의 약속이란 2001년 9월22·23일 충북 괴산군 군자산 자락에 위치한 보람수련원에서 수백 명의 운동가들이 ‘2001 민족민주전선 일꾼전진대회’란 미명하에 모여 채택한 정치 방침이다. 여기서 3년의 계획이란 3년 안에 전(全) 민중항쟁의 동력체인 통일전선체와 (좌파) 합법 정당을 건설하고, 10년의 전망이란 10년 안에 자주적 민주정부(민중 정권)를 수립하여 연방통일 조국을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김일성 출생 100주년인 2012년까지 조국통일 유훈을 관철하겠다는 북한의 적화통일 방침과 맥락을 같이 한다.
이 시기 좌익들은 김정일·노무현정부의 좌편향 정책에 편승하여 그들의 종북·사회주의 지향 활동을 민주화운동·진보개혁 운동·평화애호 운동 등으로 미화하며 여·야당 가리지 않고 제도정치권까지 진출하여 합법 영역에서 무려 3차례나 정권을 장악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할 정도로 배후에서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실제 이 시기 정부 소속의 민주운동보상심의위원회·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그리고 각 부처 산하 과거사위원회 활동 등을 통해 남파 간첩과 빨치산이 민주화운동가로 둔갑하고, 독일 거주 거물급 간첩 송두율이 해외의 양심적인 민주화운동가로 미화되는가 하면 사회주의혁명 등 반국가 이적활동을 하다가 실정법을 위반하여 법원의 확정판결을 받은 인사들이 민주화운동가로 둔갑하여 명예 회복과 더불어 거액의 보상금까지 수령하며 호의호식했던 사실에서 확인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은 2011년 적발된 왕재산간첩단의 총책 김○용과 서열 3위인 임○택이 국무총리실 소속 민주운동보상심의위원회에서 ‘민주화운동가’로 인정되었고, 상당액의 보상금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우리 정부가 국민 혈세로 간첩들에게 공작비에 보태라고 용돈을 준 격이다. 또한 2013년 RO사건(이석기 내란 선동 사건)과 2014년 통합진보당의 해산 과정에서 보듯이 주사파 세력이 합법 정당의 탈을 쓰고 헌법기관인 국회에까지 대거 진출하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북한과 연대한 종북 좌익 세력이 국가보안법 철폐와 양심수 전원석방과 대공수사기관(국정원·경찰 보안수사대·기무사·검찰 공안부 등)의 해체를 주장하는 등 공세를 펼치며 안보관련시스템의 약화 및 우리 사회의 중추 세력인 자유민주진영(보수우파 세력)의 무력화를 시도한 바 있다.
좌익 세력은 학원·노동·재야·문화·정치권 등 사회 각계각층에 침투한 비호 세력과 동조 세력의 지원 하에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한미FTA 폐기·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핵안보정상회의 반대’ 등 국책사업 저지 투쟁과 ‘국가보안법 철폐·주한미군 철수·6.15 공동선언과 10.4선언 이행·전쟁 반대와 평화 수호·대북 적대정책 철회·주적론 철회·연방통일’ 등 정권 기반의 무력화 및 종북좌익 세력의 영향력 확산을 위한 활동에 주력해 왔다. 현재 우리는 사회 전반에 ‘종북좌익 네트워크’가 합법 영역에서도 공개적으로 정의로운 세력으로 위세를 떨치는 일상 속에 살고 있다. 21세기 한국 현대사의 불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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