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이란 ‘마음 비우는 것’이라는 꽤 일반화된 공식이 있다. 많은 사람이 무의식에 담아둔 말일지도 모른다. 그렇다 보니 ‘마음 비우는 것은 돈이나 이익을 비우는 것’이라는 등식도 뒤따른다. 자연스럽다. 마음 비운다는 건 자신이 쥐고 있는 생각이나 견해를 포기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쌀 한 가마니를 들고 있는 짐꾼이 그 쌀을 바닥에 부리는 것처럼 ‘마음’이나 ‘생각’이라는 쌀 가마니를 내려놓는 상황인 것이다.
그러므로 명상을 하게 되면 인간 관계에서든 돈을 버는 일에서든 손해를 감수해야 할 것 같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곧 물질을 비우는 것이 아닌가. ‘나는 마음 비웠는데 상대가 전혀 비울 생각이 없으면 어떡하지? 나만 손해잖아!’
‘명상’이 ‘건강한 삶’에 큰 도움을 준다는데, 어쩐지 미루게 되는 당신의 마음에는 위와 같은 생각이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 의외로 많다. ‘아직은 내가 그렇게 정좌 자세로 앉아서 ‘어기야 디야’ 할 만큼 한가한 사람이 아니거든! 아직은 돈 벌어야 하는데 자꾸 마음 비우다 보면 어떻게 내 것을 챙기느냐 말이지!’ 한마디로 명상은 한가하고 재정적으로 널널한 사람이나 하는 일이라는 고정 관념이다.
미국에서 명상이 가장 각광받고 있는 지역이 있다. 캘리포니아 주 실리콘밸리다. 그곳이 한가한 곳인가. 아마 그 나라에서 가장 바쁜 지역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그곳이 세계의 명상 흐름을 가장 강력하게 촉진하는 곳임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곳의 기업 건물 내에는 대개 ‘명상실’이 있다. 페이스북·구글·인텔·세일즈포스와 같은 기존 회사는 물론이고 위워크 같은 초기 벤처기업 공동 사무실에도 명상실이 설치돼 있다. 이처럼 명상실을 설치하는 이유는 뭘까. 개인과 기업의 이익이 없거나 손실이 발생하는데도 비싼 공간과 설비를 투자할 리 없다. 더군다나 명상실에서는 직원들이 하릴없이 졸고(?) 있지 않은가?
사격 연습과 명상 연습은 닮았다
바쁨과 스트레스는 비례한다. 시간과 공간의 압축이 바쁨이라면 그 압축으로 인한 신경의 긴장이 스트레스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현대인들은 늘 ‘목표’ 혹은 ‘과제’를 안고 산다. 거의 모든 직장인은 오늘 혹은 며칠 내로 ‘무슨 일을 어디까지 해야 한다’는 과업을 안고 있다. 마감 시간이 다가올수록 심리적 경직도는 수직 상승한다. 마음의 쌀 가마니 무게가 힘겨워진다. 당신은 이것을 내던지지도 못하고 반지나 팔찌처럼 가벼이 여기지도 못한다.
이런 상황에 처한 당신에게 ‘명상’을 하라니 어디 말이나 되는가. 이런 상황에서는 코앞에 닥친 일부터 해결해 가는 게 맞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을 수 있다면 어떨까? ‘지금 내 몸 어디가 경직돼 있지?’ ‘지금 내가 무슨 생각에 붙들려 있지?’ ‘이 결과가 최악이라면 나한테 무슨 문제가 생기지?’ 당신이 눈코 뜰 새 없이 돌아가는 상황에서도 이렇게 자기 질문(자신을 향해 질문)할 수 있다면 당신은 그 순간 명상을 한 것이다. 아니, 이것이 진정한 명상의 본질이다.
하지만 위와 같은 상황은 이론일 뿐 실제로 잘 실행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연습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훈련받지 않은 군인과 훈련받은 군인의 차이와 같다. 단 며칠이라도 사격 연습을 해 본 사람과 해 보지 않은 사람은 실제 상황에서 다를 수밖에 없다. 명상 또한 마찬가지다. 단 며칠 아니, 몇 시간이라도 자기만의 고요한 시간과 자기 질문을 해 본다는 것은 삶 전체를 위한 ‘결정적 경험’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미룬다. 그것은 마치 식사 후에는 15분만이라도 가볍게 걷는 게 좋은 줄 알면서도 텔레비전 드라마에 붙들려 주저앉는 모습과 유사하다. 한두 번 그렇게 하다가 이윽고 산책은 까마득히 잊는다. 그러면서 자기합리화 한다. ‘명상 같은 건 은퇴 후에 하면 되지, 뭐!’ ‘지금은 돈 벌어서 가족들 건사할 때지 마음 비우고 있을 때가 아니지!’
명상에서 ‘마음을 비우기’는 의무가 아니다. 밥을 먹다가 ‘숟가락을 놓는 행위’가 마음을 비운 일이겠는가? 자본주의의 히말라야 같은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이 돈 벌 마음을 비워서 직원들에게 명상실이라는 비싼 공간을 만들어 주겠는가. 아니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의 제 ‘마음을 본다’ ‘마음을 이해한다’ ‘마음을 수용한다’는 의미다. 그 정도 ‘잠시 멈춤’의 시간을 가져 보자는 제안이다. 그 정도만 해도 개인과 기업을 넘어 사회 전체에 엄청난 이득이 있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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