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매력은 화려함과 활력에 있다. 야간 착륙을 앞두고 비행기가 선회비행을 할 때 내려다보이는 수도권 야경은 화려함과 신비로움 그 자체다. 보석을 뿌렸다 한들 그만큼 아름답고 매혹적일 수 있을까. 도대체 언제부터 우리의 도시가 이렇게 아름다웠던 것일까. 이렇게 황홀한 비경의 속살은 곧 도시의 일상적 풍경이다. 도시에 어둠이 깔리면 형형색색의 불빛들이 나타나며 이야기들도 겹겹이 쌓여 간다. 막상 살고 있는 우리는 잘 몰랐지만, 그동안 우리가 치열하게 살면서 우리의 공간을 가꾼 결과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도시가 이렇게 찬란한 빛을 내기 시작한 모양이다.
많은 외국인들이 안전하기까지 한 대한민국의 밤을 인상적으로 보며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전원이 그리워 강화도에 전원주택을 마련해 살다가 기껏 두 해 만에 다시 도시로 가자고 보챈 아내. 어쩌니 저쩌니 해도 사람들이 북적이고 편리한 도시가 그리웠던 것 같다. 오늘날 우리 국민 대다수가 도시인이다 보니 삶 자체로나 정서적으로 도시에 친근함을 더 많이 느끼는 시대가 된 것이 아닐까.
이렇게 매혹적인, 그러면서도 갖은 애환으로 울고 웃는 도시의 끝없는 이야기들이 작가들에겐 또한 영감의 원천이 된다. 이야기의 큰 바다 같은 밤, 특히 우리 도시의 밤이 되면 시각 현상에 비상하게 반응하는 우리 화가들의 일과가 시작된다. 도시에 땅거미가 지기 시작할 때 화가 박상희(55)도 바쁜 일과에 돌입한다. 때론 도시의 판타지를 노래하는 음유시인처럼, 때론 이야기책을 읽어 주는 교사처럼 관조와 격렬한 몸짓이 교차되는 작업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는 우리 작가들 가운데 대단히 유니크한 회화 세계를 개척한 작가이다. 어둠 속 도시의 이야기들을 재현 양식으로 그리는 작가의 그림은 그린다는 기술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다. 그의 그림은 그리기와 새기기(인그레이빙)가 협업함으로써 일군 방식의 결과물들이다.
작가의 그림이 독보적인 것은 여러 겹의 시트지가 토대를 이루고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 수 있다. 여러 겹의 층만큼의 기본색이 주어지고, 다시 페인팅이 이루어지는 데다 커터 날을 이용한 인그레이빙이 가미되는 기법이다. 예리한 커터 날로 새겨 내는 인그레이빙은 흡사 목판이나 스텐실(stencil) 제판 과정과 유사하지만, 프린팅이 없이 조각적 효과를 그대로 살려 그림과 매치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기법을 통해 단순히 붓으로 묘사한 그림에서는 느낄 수 없는 깊이와 텐션이 생성되고 있어 야경으로서는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독보적인 그림이 만들어진다. 이 선들이야말로 우발적으로 뿜어대는 도시적 광선과 광채의 특징을 표현하는 데 최적의 방법이 아닐까 생각된다.
작가가 컬러 시트지(紙)를 화면에 도입하게 된 것은 대학 졸업 후 디자인 업계에서 일했던 경험이 토대가 되었다 한다. 이렇게 시트지를 이용한 작업이 무려 25년 이어져 오는 동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작품을 치열하게도 쏟아 냈다. 시트지라는 것이 일반인에게는 그리 친숙하지 않은 화학재이지만, 내구성이나 효과는 4반세기에 걸친 작업에서 확실하게 검증이 되었다. 작가의 그림들마다 화면 곳곳에 산재한 많은 선들이 재현의 질서와는 무관하게 새겨지는 추상적·우발적 선들로 지각된다. 하지만 휘황찬란한 조명들이 난무하는 화면이기에 구조적으로는 오히려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작가의 도시 야경은 도시가 필연적으로 안고 있는 상업적 환경을 있는 그대로 포착한 경우가 많다. 특히 초기작은 당연히 온갖 전광판이나 사이니지(디지털 정보 디스플레이를 이용한 옥외광고)·빌보드·네온 등 대부분 팝아트에서 주목했던 후기산업사회의 풍경이다. 이러한 풍경들을 대하는 작가의 스탠스는 중립적 혹은 중성적이다. 작가는 팝아트를 긍정하면서도 그다지 시니컬한 시각으로 접근하지는 않는다. 도시의 낯설고 쓸쓸한 풍경을 담은 낭만적 팝아트, 신사실주의 에드워드 호퍼에게서 영감은 받았을지라도 추종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빛에 대한 충실성, 그리고 다층의 레이어 단면에서 보여 주는 색분해 효과 같은 것들이 자주 등장하고 있는 데서 인상주의적 요소들이 엿보인다고 할 수 있다.
작가의 그림은 현장성과 장소성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채집한다. 동네산책·여행·쇼핑 등의 일상에서 마주하는 세계가 빛에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이야기의 핵심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대하는 작가 자신의 따뜻한 시선과 감정이다. 초기에는 자극적이고 환상적 느낌의 야경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소박하고 고즈넉한, 특히 오랜 시간성이 주는 심미적 가치에 주목하는 풍경들을 그려 낸다. 작품마다 장소가 명시돼 있다. 재현의 성공 여부를 강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장소를 작가만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저마다의 반응과 감흥을 도출해내도록 하기 위해서다. 객관성보다는 아무래도 주관성 쪽으로 기울어진 해석이 비중을 갖는 세계다.
작가의 근작은 투명 매질의 물성을 반영하고 있다. 근작을 발표한 인디프레스 갤러리 초대전에서는 필터링된 풍경을 여러 점 선보인 바 있다. 이전의 작업에서는 화면에 단단하게 고착된 레이어의 효과에 의한 재현이었다면, 근작에서는 다소 생소한 풍경이다. ‘북촌’ 연작에서 보듯이 보는 이의 눈과 화면 사이에 매질(媒質)로서의 투명 필터나 레이어를 개재시키는 방식이다. 야경이 아닌 야경, 어딘지 모르게 주관화된 혹은 인위적으로 설정된 것 같은 양상이다. 필터링에 따른 대상의 미묘한 변화는 결국 이야기의 다른 전개로 다가온다. 세계에 대한 상대주의적 인식을 역설하고 있는 듯한 문제의 신작들에 대해 더 많은 관심과 분석이 필요하다. 하지만 필자의 입장에서는 조금 분리해서 대응하고 싶은 마음이다. 지난 25년 동안의 시트지 작업들이 본격적으로 조명이 되어야 한다는 필요를 강하게 느끼고 있어서다. 오랜 세월 도시의 빛을 담아 온 작가를 이제 우리가 제대로 조명해야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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