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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수의 전지적 시점] 김기현 국힘 대표는 뭘 망설이는가
박혜수 필진페이지 + 입력 2023-12-12 06:30:57
▲ 박혜수 시인·번역작가 
 
“목표를 이루길 바래. 비록 난 잘못된 곳을 보고 있지만 내가 절망했을 때 내 영혼을 깊이 들여다본 사람이 있었다는 걸 기억할 거야….”
 
영화 ‘바텔’에서 태양왕 루이 14세의 망나니 동생이 주인공 바텔에게 하는 말이다. 2000년 칸 영화제의 개막작 ‘바텔’은 프랑스 파리 근교의 샹티이 성을 무대로 실존인물 프랑수아 바텔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영화 ‘미션’의 감독 롤랑 조페가 연출을 맡고 음악엔 엔리오 모리코네, 제라르 드빠르디유 주연으로 무려 3600만 달러를 들여 제작됐다.
 
실화를 소재로 했지만 실제 스토리는 영화와는 좀 다르다. 바텔은 루이 14세 시절 프랑스 왕족 콩데 백작의 샹티이 성 수석 요리사 겸 총집사장이었다. 그는 어느 날 루이 14세가 2000명이 넘는 인원과 함께 2박3일 일정으로 성을 방문한다는 소식에 연회 준비에 몰두한다. 당시 콩데 백작은 왕권에 대한 귀족들의 반란이었던 프롱드의 난에 연루돼 왕의 사면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입장이었다.
 
심혈을 기울인 부산한 준비 끝에 이틀을 무사히 넘긴 다음 날 새벽, 생선요리를 메인으로 식단을 짜 놓았는데 바텔이 받은 생선은 단 두 바구니. 콩데 백작의 정치적 생명이 걸린 중차대한 연회를 자신이 망치게 되었다는 죄책감으로 그는 자살을 택하고 만다. 이 일은 당시 연회에 참석했던 서간문 작가 세비녜 부인의 편지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고 훗날 자끄 라깡이 ‘정신분석의 이면’이란 세미나의 마지막 강좌에서 수치심과 죄책감에 대해 이야기하며 언급하기도 했다.
 
바텔을 자살에 이르게 한 것은 성실함과 책임감에서 비롯된 죄책감이었다. 그리고 그 바탕엔 콩데 백작에 대한 지극한 배려와 충성심이 깔려 있었다. 사람이 다른 누군가에게, 무엇인가에 충성한다는 건 때로 목숨을 내던질 정도의 엄정한 지고지순함이 요구되는 일이다. 단지 ‘거스르지 않는 것’을 충성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는 얘기다. 거스르지 않는 사람은 충신과 간신의 중간쯤에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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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바텔’에서 디저트를 만들고 있는 프랑수아 바텔(제라르 드빠르디유). 그가 만든 샹티이 크림은 오늘날 생크림이라 불리는 디저트용 크림의 기본이 되었다.
 
국민의힘 인요한 위원장이 7일 혁신위원회(혁신위)의 조기 종료를 선언했다. 그동안 혁신위는 당의 쇄신을 위해 지도부에 이런저런 요구사항을 내걸며 언론의 입에 오르내렸지만 그뿐, 돌아온 건 철저한 무시 또는 무(無)응대를 통한 거부였다. 이준석 전 당 대표에게 뜨겁고 불쾌한 된맛을 본 대통령의 입장에서도 굳이 자신을 거스르지 않는 사람들을 내칠 생각은 없는 듯하다.
 
김기현 대표는 불출마 선언을 하고 당 대표직을 유지하며 총선을 이끌 심산인 것 같다. 그런데 그걸로 국민의 마음에 ‘이제야 국힘이 제대로 돌아가는구나’ 하는 흡족함을 줄 수 있을까. 천만에, 오산이다. 그렇게 된다면 총선은 필패·대패할 것이다. 국정 운영의 동력을 잃은 대통령은 위기로 내몰릴 것이고 보수지지자들도 국힘을 포기하고 떠나게 될 것이다. 굳이 그렇게 된 다음에 대표직을 내려놓을 셈인가.
 
지금 춥고 막막한 겨울의 문턱에서 떨고 있는 국민이 바라는 건 뭘까. 김기현 대표가 출마하든 말든, 어디 출마하든 그건 관심 밖의 일이다. 땔감이 떨어져 집이 추운데 가장이 가구 배치를 바꿔 보자고 나서면 그 집 식구들은 절망하거나 가출하고 싶어질 것이다. 가장이라면 땔감을 구해 집을 따뜻하게 할 방안을 마련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이라도 국힘 지도부가 물러나고 새 구도를 짜야 하는 건 그 때문이다. 혁신을 한답시고 혹시라도 기득권 취급을 받는 다선의원들을 물리고 영남권이나 서울 강남 ·분당 지역구에 대통령실 출신들이 들어가 앉는다면 국민은 그 추태에 침을 뱉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죽을 쑤고 있는 판, 웬만하면 지지도며 앞으로의 총선에서도 국힘이 압승을 하는 게 당연할 터이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건 무엇 때문일까. 국힘이 못나서, 못나 보여서다. 사람의 심리가 묘해서 못난 놈이 나쁜 놈보다 더 싫고 더 못 미더운 법이다. 본인으로선 말할 수 없이 억울한 일일지 모르나 김기현 대표는 현재 국힘의 못남과 무능을 상징하는 존재가 돼 버렸다. 그가 물러나야 하는 건 그 때문이다.
 
그가 물러나고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 나서서 수습하고 재건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때다. 국힘이 새로운 시스템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는 걸 보일 마지막 기회다. 기껏 ‘실업급여’나 들먹이던 못난 정책위원회를 새로 꾸리고, 지도부는 비켜서 주어야 한다. 총선이 이제 넉 달 남짓 남았기 때문이다. 위기란 소리다.
 
윤심을 얻었다 했는가. 그렇다면 그에 보답하라. 그를 위해 행동해 보라. 그를 망쳐서야 되겠는가. 상대의 마음을 얻은 사람은 신의와 충절로 그에 보답해야 한다. 거기서부터가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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