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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의 콜드브루] ‘한동훈 눈물’의 의미
여성 유권자에 대해 성찰과 고민 없는 여당
시대 흐름 주도한 영국 보수당에서 배워야
홍찬식 필진페이지 + 입력 2024-01-03 06:31:30
  
▲ 홍찬식 언론인·칼럼니스트
한동훈 국민의 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법무부장관 시절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보도된 적이 있다. 한 여성으로부터 “장관님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과 (내) 아들의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이 비슷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였다. 이 여성의 아들은 군에 입대해 급성 백혈병에 걸린 뒤 제대로 된 조치를 받지 못하고 사망했다. 이 어머니는 아들과 같은 처지의 장병들에게 국가가 배상토록 하는 관련 법안을 촉구하기 위해 한 장관에게 면담을 요청했다고 한다.
 
법무부 쪽에서 소속 장관을 위해 배포한 영상이라 ‘연출’ 의심을 잠시 가졌으나 그보다는 ‘진심 어린 눈물’로 믿고 싶었다. 그동안 한국 우파가 잊고 있었거나 무심했던 ‘보수의 가치’가 그 속에 압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보수주의는 흔히 안정을 추구하고 급진적인 개혁을 경계하는 이념을 지칭하지만 ‘가족의 가치’를 중시한다는 말로도 쉽게 설명이 된다. 선진국의 보수주의자들은 가족을 앞세우며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든든하게 지켜지는 것이 이들에겐 어떤 것보다 우선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아예 ‘가족이 먼저’라는 슬로건을 내걸기도 했다.
 
가족의 중심에 있는 ‘어머니’가 태생적으로 안정 추구적인 성향이라는 건 오랜 상식이다. 이런 배경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여성 존중’은 보수 정치인들의 기본 덕목이면서 선거 전략이기도 했다.
 
한국 우파는 이런 면에서 엇나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2022년 대선에서 국민의 힘은 20대부터 50대까지의 여성 유권자 사이에서 거의 일방적으로 더불어민주당에 밀렸다. ‘남녀 편 가르기’ 전략이나 매우 거칠었던 ‘여성부 폐지’ 공약도 일부 작용했지만, 이전부터 여성 유권자에 대한 고민과 성찰 자체가 부재했던 탓이 컸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흘린 눈물이 어떤 의미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보기에 따라 ‘어머니의 마음’에 다가서려 한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래도 뭔가 낯설고 어색하다. 이제 보수 여당의 비대위원장이 된 그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선진국의 보수주의는 달랐다. 영국에서 여성에게 첫 투표권을 부여하는 데 앞장선 정당이 보수당이었던 점도 그렇다. 영국에선 1918년부터 30세 이상의 기혼 여성에게, 1928년부터는 21세 이상 모든 여성에게 투표권이 부여되면서 국민 평등 선거권이 완성된다. 강대국 중에서는 영국이 가장 빨랐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전쟁터로 나간 남성들의 빈자리를 여성들이 훌륭히 대신해 준 것에 따른 반대급부의 성격이 컸지만 그렇다고 내부 반대가 없었던 건 아니다. 전쟁으로 많은 남성이 전사하면서 전체 인구 중에서 여성 인구가 남성보다 200만 명 이상 많아진 여초(女超) 현상이 반대 목소리를 더 키웠다. 남성이 아닌 여성에 의한 ‘정치 지배’를 당시 정치인들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보수당의 적극적인 자세는 여성들의 선거 참여가 보수당에 꼭 불리한 건 아니라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30대 이상 여성에게만 투표권을 부여했던 과도기인 1918년부터 1927년까지 3번의 선거에서도 이 사실이 확인됐다. 보수당은 여성 참정권이 시대적 요구임을 간파하고 남을 따라가기보다는 개혁을 주도하는 쪽을 택했다. 일단 방향을 정한 다음에는 여성 유권자를 설득하기 위한 교육과 선전에 공을 들였다. 영국 보수당이 현재 세계 최장수 정당으로 살아남은 비결은 바로 시대 변화에 대한 유연성이었다.
 
한국은 어떨까. 역대 선거에서 여성 유권자의 이념 성향은 남성과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기존의 연구 결과다. 물론 전체적인 추세로는 여성들이 진보 성향에 다가가고 있는 건 맞다.
 
그러나 2012년을 경계로 그 이전까지는 한국 여성 유권자의 이념 성향이 남성과 유사하거나 보다 진보적인 성향을 띠고 있었으나 2012년부터 2017년까지의 시기에는 오히려 보수화했다는 연구(이종곤 ‘여성 유권자 정치이념 변화와 원인 분석’)도 나와 있다. 박근혜 같은 유력 여성 정치인의 등장이 원인으로 분석된다. 이른바 ‘성별 호감 효과’다. 앞으로도 여성 지지층 확보에 ‘예정된 미래’는 없으며 각 정파들이 어떻게 나서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취임 연설에서 운동권 정치의 청산을 앞세우면서도 “우리는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과 달라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방향성이다. 특히 여성 문제에서 국민의 힘은 번번이 개혁 흐름을 주도할 시점을 놓쳤다. 맞벌이 부부들의 정서를 파악해 오히려 먼저 치고 나갔어야 할 무상급식 문제가 대표적이다. 바로 그것이 국민의힘이 마초적 체질이 몸에 밴 운동권 정당에게도 고전하는 이유다.
 
‘새로운 보수’로 거듭날 시점이다. 운동권에 회초리를 들려면 자기반성과 혁신이 선행되어야 한다. 비단 ‘가족의 가치’만이 아니다. 공동체 정신·권리에 앞서는 의무·원칙 존중 등 보수 본연의 가치를 체화하고 실천해야 한다. 한동훈의 눈물이 일회성에 그쳐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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