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진년 새해를 맞이하고 보니 ‘은둔의 별’ 권훈칠(1948-2004)이 타계한 지도 어느덧 스무 해가 되었다. 56세의 나이면 작가로서 작업이 만개하는 때이건만 위암 판정을 받은 지 불과 몇 달 만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작가다. 특이하게도 위 외벽에 생긴 암이라 진단에 혼선이 생기면서 손쓸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한다.
필자는 작가와 대면할 기회는 없었지만 사후 발행된 추모 평론집 ‘그린다는 사실, 그 자체가 나의 즐거움이다’(2009·AM아트) 집필에 참여한 인연으로 작품들과 여러 자료들을 접할 기회를 얻은 바 있다. 아카데믹한 역사기록화에서부터 서정적인 수채화·민화·추상·만다라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방대한 작품들을 마주하면서 경이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불꽃 같은 예술혼으로 우리 미술계에 소중한 자산을 남기고 떠난 권훈칠, 그의 작품세계를 음미하며 회고하고자 한다.
권훈칠 작가는 유족이나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참 과묵하고 신중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많은 작업을 하면서도 작품 발표에 대해서도 신중에 신중을 기하다 보니 타계 1년 전, 55세에 첫 개인전을 가졌다. 다른 작가들 같았으면 화단의 중진으로 최고 대우를 받으며 초대를 받을 시기였다. 발표에 조심스러웠던 것은 성격도 성격이지만, 엘리트로서 걸어온 길에 대한 부담 같은 것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서울대 미대에서도 촉망받았던 이탈리아 유학파라는 점, 특히 최고 권위의 국전에서도 약관의 나이에 국무총리상과 문공부장관상을 연이어 수상한 경력들이 어느새 그를 자신도 모르게 완벽주의자로 변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생전에 가졌던 유일한 개인전이 2003년 딱 한 번, 타계하기 불과 한 해 전의 일이었다. 당시만 해도 위암으로 그렇게 허무하게 유명을 달리할 것이라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도올갤러리에서 가진 첫 전시의 성사에 대해서도 신동은 대표의 술회가 흥미롭다. 지인으로부터 좋은 작가라고 소개를 받았는데, 막상 만났더니 화상 자체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보통의 작가들 같으면 갤러리와 좋은 유대를 가지고자 적극성을 보였을 텐데 데면데면하게 나오니 갤러리 대표로서도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작가가 애착을 가지는 수채화로만 전시를 열기로 했는데, 또 난관에 부딪혔다. 작가가 그림을 팔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한다. 갤러리 입장에서는 황당한 요구였지만 작가의 순수한 정신을 높이 사서 비매 조건으로 전시를 열게 된 것이다. 물론 그 덕에 주옥같은 수채화 대표작들 50여 점이 유족 품에 고스란히 보존될 수 있게 되었다.
작가의 성격이 잘 드러나는 것은 작품 세계에서다. 작가는 유화·수채화를 두루 그렸지만 특히 수채나 아크릴 같은 수성 안료를 선호했다. 어쩌면 오랫동안 내려온 수묵의 DNA 때문일 수도 있겠고, 느끼하거나 끈적거리는 물성보다는 맑고 투명하게 흐르는 물기를 성격적으로 더 좋아하는 것 때문일 수도 있다. 작가의 전시나 화집을 보면 두 사람의 작품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상이한 추상과 구상이 나란히 디스플레이되곤 했다. 보통 작가들이 추상과 구상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것을 쉽게 생각하지만, 그게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순간 다른 쪽의 것이 아무래도 어색해지기 마련이다. 작가는 학창 시절부터 탄탄하게 다져진 데생 기량과 학창시절 좋아했던 렘브란트의 영향 때문일까, 추상작업에도 데생의 탄탄함이 반영돼 있다. 구상을 추상처럼, 추상을 구상처럼 그렸다는 것이다.
작가를 약관의 나이에 스타덤으로 오르게 한 시그니처작(作)은 추상 양식의 ‘우의적 형식’ 연작들이다. 긴장된 기하적인 구조 속에 액체의 유동을 느끼게 하는 효과와의 조화, 그리고 청회색조의 신비감 돋는 분위기의 추상화는 일견 유럽의 앙포르멜을 우리의 문인화적 감성으로 변용시킨 느낌이다. 긴장과 이완이라는 완급 조절에서 작가가 흡사 풍경 수채를 그릴 때와도 같은 감각으로 필치를 통제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간혹 농담처럼 말하는 “추상은 구상이 여의치 않은 사람의 궁여지책”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데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그것이 추상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 밑천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러한 데생 역량은 민화풍의 양식이나 만다라 연작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90년대에 많이 그렸던 민화 형식의 ‘꽃’ 연작들이나 만년에 많이 그린 ‘만다라’ 연작들의 디테일을 보면 작가의 데생이 촘촘히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맹목적으로 꼼꼼하게만 그린 것이 아니다. 대상이 생명력·에너지를 갖도록 면밀하게 그렸다는 것이다. 민화적 양식이 자칫 상투적인 패턴으로 흐를 수도 있는 것을 작가는 눈높이를 낮춘 나이브한 자유로움이라는 특징을 통해 자신의 개성적인 생명력을 불어넣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꽃 연작을 보면 줄기로부터의 뻗어나간 3개의 꽃받침과 꽃잎의 연속과 반복 같지만, 하나하나가 차이와 개별성을 지니도록 그려 나간 작가의 정성과 열정이 더욱 감동적이다.
역시 작가의 작업들 가운데 대중들에게 가장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은 풍경 수채화이다. 미술계에 몸담고 있는 작가나 평론가들 또한 그의 수채화를 몹시도 사랑한다. 필자가 80년대 초 미국에서 미술 공부를 하다가 우연히 알게 된 앤드류 와이어스(Andrew N. Wyeth)라는 작가가 있는데, 미국에선 실험적인 현대미술의 아성을 능가하는 그의 작품들에 비상한 관심이 모이고 있다. 수채화로 신비감 넘치는 화면을 창출해 낸다는 점에서 미국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와이어스와 권훈칠은 닮은 데가 많다.
황량한 바닷가에 오랜 바람결에 기울어진 방풍림을 수채화로 그린 작품들이 많은데, 보는 사람마다 감탄사를 연발한다. 마치 식물 도감용으로 그려지는 보태닉페인팅에 필적할 정밀한 묘사력도 묘사력이지만, 그 대상들이 햇살에 호응하여 불러 주는 생명의 노래를 시각화하고 있어서다. 20주기를 맞아 수채화를 좋아하는 애호가들에게는 보급형으로, 수채화 공부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교과서로 유용한 한정판 복제본 같은 것이 보급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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